어린이날, 이주노동자 가정에겐 먼 나라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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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속 차별 양육, 삼중고"... 키우기 힘들어 아이만 고국에 보내기도

 

"한국에 13년 동안 살면서 어린이날을 챙겨본 적이 한 번도 없어요"

세 식구가 먹고 살기도 빠듯한 쑤언(34.여.달성군)씨 가족에게 어린이날은 먼 나라 이야기일 뿐이다.

13년 전 한국에 들어와 동갑내기 남편과 결혼한 쑤언씨는 3년 전 7살 난 첫 딸을 고향 베트남으로 보냈다. 두 부부가 맞벌이를 하느라 아이를 키우는 게 힘들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첫 아이를 베트남에 보낸 뒤 1년 쯤 지났을 무렵 둘째 아이를 갖게 됐고, 결국 다니던 회사를 그만두게 됐다. 갓 돌이 지난 아들을 키우고 있는 쑤언씨는 "남편 혼자서 벌어오는 월급으로 집세와 각종 공과금, 식비, 분유 값을 비롯한 생활비를 내고 나면 남는 게 없다"고 말했다.

어린이날을 하루 앞둔 4일 오후, 서구 비산동의 한 놀이터에서 한 이주노동자 여성이 자녀가 탄 그네를 밀어주고 있다 / 사진. 평화뉴스 박광일 기자
어린이날을 하루 앞둔 4일 오후, 서구 비산동의 한 놀이터에서 한 이주노동자 여성이 자녀가 탄 그네를 밀어주고 있다 / 사진. 평화뉴스 박광일 기자

이처럼 한국에서 태어난 이주노동자들은 어린이날이 돼도 자녀들을 챙길 여유가 없다. 당장 형편이 빠듯하기 때문이다. 쑤언씨는 "어린이날에도 남편이 출근을 하기 때문에 아이와 단 둘이 나들이 가기도 힘들고, 사실 어린이날을 챙길 형편이 되지 않는다"며 "첫째 딸을 베트남에 보내기 전에도 어린이날에 가족끼리 나들이를 가본 적이 단 한 번도 없다"고 말했다.

월 30만원 가량 어린이집 보육료, 의료비 부담

맞벌이를 위해서는 자녀를 어린이집이나 탁아소에 맡겨야 하지만 비용이 부담이 돼 선뜻 맡기기가 힘들다. 한국인과 결혼해 이루어진 다문화가정은 저소득층일 경우 보육료가 지원돼 저렴한 비용으로 어린이집에 아이를 맡길 수 있지만, 한국 국적이 없는 이주노동자 가정에게는 아무런 지원이 없어 보육료 전액을 다 지불해야 한다. 맞벌이를 한다고 해도 월 30만원가량 되는 보육료를 선뜻 지불하기는 어려운 실정이다. 게다가 매일 잔업을 포함해 12시간 이상 일하는 데다 주말에도 출근하는 경우가 많아 제대로 아이를 돌보기 힘들다.

어려움은 이 뿐만이 아니다. 미등록 이주노동자의 경우 본인뿐만 아니라 자녀들에게도 의료보험이 적용되지 않아 의료비도 만만치 않게 들어가기 때문이다. 국립 대구의료원에서 미등록 이주노동자들에게 무료진료 혜택을 주고 있지만, 약값은 100% 본인 부담이다. 다른 병원의 경우 진료비와 약값 모두 지불해야 한다. 지난 2008년 베트남에서 한국에 온 응웬 티 흐엉(34.여.달성군)씨는 "아이가 감기에 걸려 조금 전 병원을 다녀왔는데 병원비와 약값을 포함해 5만원이 들었다"고 말했다.

아이 혼자만, 혹은 엄마와 아이 둘만 고국으로

이처럼 양육비 부담 때문에 자녀만 고국으로 보내거나 남편은 한국에 남은 채 아내와 자녀가 고국으로 떠나는 경우가 많다. 가정해체로 이어지는 것이다. 지난 1997년 베트남에서 한국에 온 윈 티 탄(37.여.달서구)씨는 2년 뒤 남편만 한국에 둔 채 딸 윈 홍민(4)양과 베트남에 돌아가기로 결심했다. 지난 2002년부터 허리디스크를 앓는 바람에 회사를 그만둔 뒤 일을 하지 못하고 있는데다 이제 자녀 교육을 신경 쓸 때가 됐기 때문이다. 탄씨는 "허리가 아파 일을 하지 못하는 데다 아이 양육비가 부담이 돼 한국에서 사는 게 힘들다"며 "학교는 베트남에서 다니는 게 아이에게도 좋겠다는 생각에 입학 시기에 맞춰 딸과 함께 돌아갈 생각"이라고 말했다.

서구 비산동의 한 놀이터를 찾은 이주노동자 가정의 엄마와 아이 모습. 엄마가 아이의 손에 묻은 음료수를 닦아주고 있다 / 사진. 평화뉴스 박광일 기자
서구 비산동의 한 놀이터를 찾은 이주노동자 가정의 엄마와 아이 모습. 엄마가 아이의 손에 묻은 음료수를 닦아주고 있다 / 사진. 평화뉴스 박광일 기자

자녀 양육문제로 이주노동자 가정이 해체되는 것에 대해 대구이주노동자선교센터 박순종 목사는 "지난 2003년 이주민선교센터가 문을 연 뒤 지금까지 얼추 50여명의 자녀들이 부모를 한국에 남겨둔 채 홀로 고국으로 떠났다"며 "전국에 드러나지 않은 사례까지 합치면 그 수가 엄청날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한국에서 자녀를 낳은 이주노동자의 경우 미등록 이주노동자가 대부분"이라며 "불법 신분인데다 양육의 어려움 때문에 이산가족을 택하는 경우가 많아 안타깝다"고 말했다.

"단속.차별.양육 삼중고, 언제든 깨질 수 있는 행복"

박순종 목사
박순종 목사
박순종 목사는 "어려운 여건 속에서도 부모와 자녀가 함께 하는 것이 이들에게는 가장 큰 행복이지만, 당장 오늘 저녁이나 내일 단속에 걸려 금세 행복이 산산조각 날 수 있다"며 "단속과 차별의 스트레스에 자녀 양육의 어려움까지 더해 삼중고를 겪고 있다"고 말했다.

특히 "중국과 대만을 비롯한 국가에서 온 이주노동자들은 미등록 이주노동자라도 자녀와 함께 고국에 돌아가고 싶을 때 언제든지 갈 수 있지만, 베트남 이주노동자들은 가고 싶어도 갈 수 없는 처지"라며 "주한베트남대사관에서 자녀들의 여권을 발급해주지 않아 스스로 한국을 떠나는 것도 힘든 실정"이라고 말했다.

이런 어려운 여건 속에서도 작게나마 자녀를 위해 어린이날을 챙기겠다는 의견도 있었다.
윈 티 탄씨는 "베트남에서는 6월 1일이 어린이날"이라며 "한국처럼 아이들에게 선물도 주고, 나들이도 간다"고 말했다. 이어 "어린이날을 맞아 다른 이주노동자 주부들과 함께 아이들을 데리고 성서 E마트 옆 장미공원에 놀러갈 계획"이라며 "모처럼 바람도 쐬고 맛있는 것도 먹고 돌아올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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