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와 함께 고향 베트남 보내주세요"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불법체류' 베트남인 자녀 여권발급 거부...베트남대사관 "악용 방지 목적"

 

13년 전 산업연수생 신분으로 한국에 온 A씨(39.여.베트남)는 같은 회사에 다니던 B씨(43.베트남)와 결혼해 4년 전 딸을 낳았다. 그러나 두 사람 모두 불법체류자 신분이었기 때문에 딸 C양(4)은 한국과 베트남, 두 나라 모두 국적을 인정받지 못했다. 게다가 남편 B씨는 지난해 출입국관리사무소의 단속에 걸려 베트남으로 강제출국 당했다.

혼자 한국에 남아 딸을 키우던 A씨는 형편이 어려워 베트남으로 돌아가려 했지만 고향에 가고 싶어도 가지 못하는 처지가 됐다. 가족관계 증명을 위해 출생증명서와 유전자검사확인서를 들고 대사관을 찾았지만, 대사관에서 서류가 부족하다며 여권을 발급을 거부했기 때문이다. 그 뒤 필요한 서류를 준비해 두 차례나 더 대사관을 방문했지만 같은 이유로 여권을 발급받지 못했다.

6년 전 유학비자로 한국에 들어온 뒤 D씨(35.베트남)씨와 결혼해 두 아이를 낳은 E씨(여.27.베트남)도 같은 이유로 5차례나 대사관을 찾았지만, 아직도 자녀들의 여권을 발급받지 못하고 있다.

불법체류자 신분의 베트남 부부 사이에서 태어난 자녀들의 여권발급 문제해결을 위한 도움을 요청하기 위해 법무부 대구출입국관리사무소를 방문한 베트남 이주여성들과 대구지역 시민사회단체 회원들 (2011.04.27) / 사진. 평화뉴스 박광일 기자
불법체류자 신분의 베트남 부부 사이에서 태어난 자녀들의 여권발급 문제해결을 위한 도움을 요청하기 위해 법무부 대구출입국관리사무소를 방문한 베트남 이주여성들과 대구지역 시민사회단체 회원들 (2011.04.27) / 사진. 평화뉴스 박광일 기자

이처럼 한국에서 만난 불법체류자 신분 베트남인들이 한국에서 태어난 자녀들이 국적을 취득하지 못해 고국에 돌아가고 싶어도 돌아가지 못하는 사례가 발생하고 있어 논란이 일고 있다.

"서류 이유 4~5차례 여권발급 거부 이해 안돼" 브로커 개입 의혹

대구외국인근로자선교센터 박순종 목사는 "여권발급을 위해 서류를 들고 대사관을 찾아도 서류 부족을 비롯한 갖가지 이유를 대며 쉽게 발급해 주지 않고 있다"고 말했다. 이어 "서류 부족 때문에 한 두 차례 더 방문하는 경우는 이해하지만 4~5번씩 찾아가도 같은 이유로 거절당하는 경우가 많다"며 "대구에서 서울까지 여권발급심사를 위해 두 아이를 데리고 가는 비용만 해도 한 번에 30만원가량 든다"고 어려움을 토로했다.

박순종 목사는 "대행업자(브로커)에게 300여만원의 비용을 지불해야만 대사관에서 여권을 발급해주고 있다"며 "그러나 어려운 형편 때문에 한국을 떠나려는 이들이 고액의 대행비를 지불하는 것은 어렵다"고 말했다. 특히 "대행업자가 준비하는 서류와 개인이 준비하는 서류가 별다른 차이점이 없다"며 "대사관과 대행업자 사이에 모종의 계약관계가 형성된 것이 아니냐"는 의혹을 제기했다.

대사관 "악용사례 많아 엄격한 기준 적용"

이에 대해 주한베트남대사관 하이 영사담당은 "타인의 명의로 출생증명서를 발급받아 자녀만 베트남으로 보내거나, 한국인과 결혼해 자녀를 낳은 뒤 고국으로 돌아가 남편에게 협박해 돈을 뜯어내는 사례가 있었다"며 "제도를 악용하는 사례가 많아 자녀들의 여권발급 심사기준을 엄격하게 적용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특히 "결혼비자로 한국에 왔을 경우 이혼증명서류 또는 전 남편의 확인서를 받아와야하는 등 여권발급을 위한 절차가 복잡하다"고 말했다. 다만 "이혼사실을 증명할 수 있는 서류와 자녀의 출생사실을 증명할 수 있는 출생증명서, 유전자검사확인서를 가져오면 여권을 발급해 줄 수 있다"고 밝혔다.

대행업자 개입 의혹에 대해 하이 영사담당은 "사실과 다르다"며 "대행업자는 서류만 대신 준비해 줄 뿐 여권발급심사는 본인이 직접 받는 것이기 때문에 절대 심사과정에 개입할 수 없다"고 말했다. 또 "결혼비자와는 달리 유학생비자나 노동비자로 들어온 경우 베트남인 사이에서 자녀가 태어난 사실을 증명할 수 있는 출생증명서와 유전자검사확인서를 가져오면 자녀의 여권을 발급해 주고 있다"고 밝혔다.

1인당 유전자검사 비용 15만원..."출생증명서로 충분하다"

이들은 또 유전자검사를 통한 친자확인에 대해서도 불만을 토로했다.
박순종 목사는 "예전에는 이주노동자들의 딱한 사정을 듣고 의사들이 타인의 명의로 출생증명서를 발급해 준 경우가 있었지만, 이 문제가 언론에 보도된 뒤 이 같은 문제는 사라졌다"며 "산모와 아기의 발 지문이 찍혀있는 출생증명서만으로도 충분히 출생사실을 증명할 수 있다"고 말했다. 특히 "유전자검사의 경우 1인당 15만원가량 비용이 든다"며 "엄마와 아빠, 두 아이를 포함해 4인 가족이 검사를 받을 경우 1번에 90만원가량 비용이 들어 경제적 형편이 어려운 이들에게 큰 부담이 된다"고 말했다.

 

한 베트남 어린이가 "빨리 저와 아기 베트남으로 보내주세요"라는 문구가 적힌 피켓을 들고 있다 / 사진. 평화뉴스 박광일 기자
한 베트남 어린이가 "빨리 저와 아기 베트남으로 보내주세요"라는 문구가 적힌 피켓을 들고 있다 / 사진. 평화뉴스 박광일 기자

이에 따라 박순종 목사와 불법체류자 신분의 베트남 이주여성 7명, 자녀 9명은 27일 오후 법무부 대구출입국관리사무소를 찾아 사태해결을 위해 도움을 요청했다. 이날 사무소를 찾은 베트남 여성들은 모두 한국에 들어온 뒤 베트남 남성과 결혼해 아이를 낳았으며, 현재 자녀와 함께 고국으로 돌아가길 원하고 있다.

이들은 대구출입국관리사무소 석태근 소장과의 면담에서 "여권발급 문제로 베트남 이주여성들이 자녀와 함께 고국에 돌아가지 못하는 문제가 발생하고 있다"며 "출입국사무소가 주한베트남대사관에 업무협조를 요청해 사태를 해결할 수 있도록 도와달라"고 부탁했다.

석태근 소장은 1시간 가량 이들의 사정을 듣고난 뒤 신상기록과 출생기록, 유전자검사확인서를 비롯한 관련 서류를 넘겨받은 뒤 "여권발급은 출입국관리소가 관여할 수 있는 부분이 아니지만, 주한베트남대사관에 업무협조를 요청해 문제를 해결할 수 있도록 노력하겠다"고 말했다.

법무부 대구출입국관리사무소 석태근 소장과 면담을 하고 있는 베트남 이주여성들과 대구지역 시민사회단체 회원들 / 사진. 평화뉴스 박광일 기자
법무부 대구출입국관리사무소 석태근 소장과 면담을 하고 있는 베트남 이주여성들과 대구지역 시민사회단체 회원들 / 사진. 평화뉴스 박광일 기자

한편, 대구외국인근로자선교센터와 베트남 이주여성들은 5월 2일 여성신문사 '푸누'를 비롯한 베트남 언론사에 기사를 제공하고, 3일 서울로 올라가 주한베트남대사관 앞에서 집회와 기자회견을 가질 예정이다.

저작권자 © 평화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개의 댓글
0 / 400
댓글 정렬
BEST댓글
BEST 댓글 답글과 추천수를 합산하여 자동으로 노출됩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수정
댓글 수정은 작성 후 1분내에만 가능합니다.
/ 400
내 댓글 모음
당신이 좋아할 만한 기사
지금 주목 받고 있어요
모바일버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