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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십년은 얼마만큼의 세월일까?
십년이면 강산도 변한다고 하니. 두 번쯤 변한 세월이겠다.
신생아의 몸무게가 평균 3.4킬로그램. 그 아이가 사내아이라면 76킬로그램까지 자랐을 세월이다. 키는 얼마만큼 자랐을까? 태어나면 키가 대략 50센티미터 정도인데 스무 살이 되면 175센티 정도가 된다고 하니 참 긴 세월이긴 하다. 엄마 젖 빨던 아이가 연애한다고 부모 속 썩일 나이가 스무 살이다.
대구환경운동연합이 그 만큼의 나이를 먹었다.
스무 해를 기쁘게 마무리 할 수 있었던 것은 뭐니 뭐니 해도 가야산국립공원골프장 싸움이 완전히 끝난 것이다. 환경운동에 첫발을 내딛은 내가 만난 매우 특별한 싸움이었다. 이 싸움의 끝을 꼭 보고 싶었다.
적어도 이것만은 완전히 끝내고 싶었다는 것이 나의 열망이었고, 그 바람은 현실이 되었다.
2011년은 대구환경운동연합과 고스란히 세월을 함께한 가야산국립공원골프장 승리가 가장 큰 기쁨이고 성과였다. 넘치는 축하와 인사는 나를 늘 쑥스럽게 했다. 그런 인사를 혼자 고스란히 받는 것이 부끄럽고 미안했다. ‘제가 뭐 한 것이 있나요’라는 것이 나의 답이었다.
몇 년 전부터 심각하게 진로에 대해 고민을 하면서 그 때만 해도 해결되지 않은 ‘가야산국립공원골프장’ 문제는 나에게 늘 숙제로 남았다. 자식을 두고 떠나지 못하는 심정처럼 나를 망설이게 했다. 그 때 생각했던 것이 나의 신상에 변화가 있더라도 이 일은 마무리해야 한다는 생각을 가졌다. 아마 그것이 다 인지도 모르겠다. 포기하지 않았다는 것.
내가 자주 듣는 얘기는 ‘성실하다’. ‘책임감 있다’는 말이다. 의심할 필요도 없이 그건 나를 구성하는 하나의 이미지가 되었다. 그런데 점점 의문이 생기기 시작했다. 나는 왜 연연해하는 걸까. 성실한 사람으로 책임감 있는 사람으로 인식되기를 원했던 걸까. 남한테 욕먹거나 훈계 받는 걸 죽어라 싫어하는 나는 늘 역할에 충실하려 했다. 최선을 다 하면서 조직의 활동가로 긴 세월을 살아왔다. 나에겐 언제나 ‘역할’만 존재했던 것 같았다. 그 때문에 얼마나 많은 이들에게 ‘해야 하는 것’을 강요 했고, ‘하지 않는 것’을 비난했을까 하는 생각을 하면 부끄러워 질 때가 한 두 번이 아니다.
그동안 시민운동은 질적으로 양적으로 승승장구했다. 여론을 생산하고 주도해 나가면서 사회의 이슈에 민감했다. 많은 이들이 지지하고 동참하면서 그 세는 점점 커지고 강력해 지는 것 같기도 했다. 우리사회에서 시민운동의 역할에 대해서 누구도 부정을 하지는 못할 것이다. 정신없이 달려온 세월이었다.
그러나 수도 없이 많이 생긴 시민단체의 수만큼 우리 사회는 ‘가치’와 ‘사람’이 중심이 되는 사회가 되는지 솔직히 좀 혼돈스럽다. 그동안 대한민국의 시민운동은 전업활동가들의 헌신적인 노력과 노고에 절대적으로 의존해 왔다. 그들이 내걸었던 ‘가치’는 언제나 정의로웠고 당연한 것이었으니까. 하지만 시간이 흐를수록 그들의 소통방식은 일반 대중들과 거리가 멀어졌다. 나 또한 예외가 아니었고, 즐거움과 유쾌함으로 소통하고 교감하기에 너무 무거워져 있었다.
가야산국립공원골프장 싸움이 20년 동안이나 생명력을 유지할 수 있었던 것은 바로 소통과 신뢰의 결과물이 아닐까. 아날로그적인 시대에 아날로그적인 소통방식이 통했던 것이다.
그러나 요즘은 환경의 가치를 대중적으로 공유하기가 점점 어려워지는 것 같다. ‘생태’는 너무 먼 얘기 같고, ‘개발’은 너무 눈앞에 있기 때문이다. 더구나 태어나면서 많은 이기와 편리가 ‘원래’부터 있었던 디지털세대와 함께 공유해 나간다는 것이 여간 힘들지 않은 것 같다. 하지만 이가 빠진 동그라미 한쪽을 찾아 헤매듯 끝없이 찾아 헤매는 수밖에 별도리가 없지 않겠나.
한해가 마무리 되는 요즘, 뉴스와 신문은 온통 심란한 기사들로 가득하다. 사건 사고가 있을 때 마다 각종 분석과 해석들이 마치 봇물 터지듯 쏟아진다. 이런 엄중한 세상 속에 나는 꿈꿔본다.
인생의 반환점, 깃털처럼 가볍게 살아 보자고.
그럴 수 있는 용기를 가져보자고.
[2011 송년] ②
공정옥 / 대구환경운동연합 사무처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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