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집 : 2020.5.28 목 15:04
> 뉴스 > 정치/경제 | 박창원의 인
   
쉰 맛의 추억 '그 나물에 그 밥'
장명숙 세실리아 ③ / 민중당 후보로 나서다
"힘 보태던 권형우.이상술.민영창.이화영...폭신한 땅 찾아간 이재오.김문수"
2010년 05월 26일 (수) 10:00:52 평화뉴스 pnnews@pn.or.kr

"아침이면 손가락 1~2개는 잘려나가 뭉뚱그려진 손을 내민 주민과 악수합니다. 저녁에는 비산동 철길 아래 하꼬방으로 불리는 막살이 집에서 죽인지 밥인지 모를 음식을 오물오물하는 노인의 모습을 봅니다" 1991년. 그는 이처럼 속 타는 주민을 만나고 판잣집을 밤낮으로 드나듭니다.

왜 그랬을까요? 그가 반쯤은 어울리고, 반쯤은 어울리지 않을 선거판에 뛰어든 때문입니다. 노동자를 위한 노동자의 제도를 만들겠다는 것이 그가 내세운 출마의 변입니다. 소신을 지키는 것은 얼마든지 환영하지만 정치만은 하지 마라"고 반대하는 아버지의 만류조차 뿌리쳤습니다. 지금은 없어진 당이지만 민중당(民衆黨) 대구시 광역의원 후보로 달동네인 서구 비산동에 출사표를 던진 것이지요.

'
 
▲ 장명숙(세실리아)
전노협의 광역의회 선거투쟁의 목표는 첫째, 노동자 투쟁과 관련하여 5월 총력투쟁의 기세를 증폭시키고 6월의 마무리 투쟁(노동운동 탄압저지 투쟁)을 정치적으로 지지 엄호하는 것 둘째, 조직적 목표로서 노동자의 정치적 의식화와 조직화에 기여하며 민주노조운동의 정치 사회적 지위를 높이는 것…' 당시 전국노동조합협의회가 그를 포함한 20명의 광역의원 출마배경을 전한 내용 입니다.

'포효 같은 연설로 불을 품다' 그의 열정적인 유세활동을 언론도 외면할 수 없었던 모양 입니다. 기득권 세력과 발맞춰 정당 취급을 하지 않으려던 보수언론이 색깔공세도 ‘잠시멈춤’을 한 것이지요. 민중당의 노동자 후보 장 세실리아는 그렇게 주민들 속으로 다가갔습니다. 그런데 돈 없이 시작한 선거운동은 어떻게 굴러 갔을까요?

"권형우, 이상술씨 등이 참모나 사무국장을 맡아 힘을 썼습니다. 민영창씨 등도 도왔습니다. 이화영씨 등 학생들도 자신의 일처럼 힘을 보탰습니다. 내 몸같이 뛰어준 사람이 한 둘이 아니었습니다" 자발적으로 모인 학생들은 사무실에서 스티로폼을 깔고 잘 정도로 희생적이었습니다. 또 노동자들은 포장마차를 통해 얻은 수익으로 선거비용을 댔습니다.

득표율 17%. 절반도 되지 않는 투표율이 아쉬웠지만 그의 현실정치 실험은 절반의 성공을 거두고 막을 내립니다. 선거를 끝내놓고 보니 득표율만 남은 게 아니었습니다. 사람이 남았습니다. 쥐꼬리였지만 돈도 남았습니다. 그는 이런 인연으로 비산 1동에서 공부방을 하고 노인들을 위한 간호 사업을 펼칩니다. 남편의 반대가 아니었다면 지금도 비산동에 살고 있었을 것이라고 합니다.

진보정당의 간판을 내걸고 닻을 올렸던 민중당은 이내 희미한 기억 속으로 사라집니다. 이듬해 국회의원 선거에서 원내 진출에 실패하고 자진해산의 길을 걷습니다. 애초 함께 했던 이재오, 김문수 등은 폭신한 땅을 찾아 보따리를 쌉니다. 대신 그는 노동자정치세력화를 내세운 민주노동당에 합류합니다. 4년 전 이연재 씨가 시장 선거에 나섰을 때 이름을 보탠 것도 그런 이유와 맞닿아 있습니다.

노동조합이 논의 과정을 거치지 않고 조직과 성격이 다른 당 중심에 자리 잡는 것, 더불어 위에서 결정하면 무조건 따라야하는 것에 동의하지 않았습니다. 민주노동당과 진보신당이 갈라질 때 어디에도 함께하지 않은 이유이기도 합니다. 그렇다고 그들과 떨어진 것은 아닙니다.

어느덧 그가 나섰던 것과 꼭 같은 지방 선거가 코앞에 다가왔습니다. 세월은 흘렀지만 20년 전과 달라지지 않은 '그들만의 리그'를 봅니다. '그 나물에 그 밥'은 맛도 없거니와 잘 쉰다는 것, 그 때나 지금이나 변하지 않았습니다. 벌써 20년째입니다.

   



[박창원의 인(人) 12]
글.사진 / 평화뉴스 박창원 객원기자


'곡주사 이모'와 '하회마을 뱃사공'에 이은 <박창원의 인(人)> 세 번째 연재입니다.
직물공장 여공에서 대구의 노동운동가로 살아 온 장명숙(세실리아)님의 이야기입니다.
장명숙님과 함께 활동하셨거나 사연 있으신 독자들의 글도 함께 싣고자 합니다.
- 사연 보내실 곳 : 평화뉴스 pnnews@pn.or.kr / 053-421-6151
독자 여러분의 많은 관심과 참여 바랍니다 - 평화뉴스

*. 이 글이 좋으시면 아래 손가락 모양의 추천 버튼을 눌러주세요.
포털 daum view(블로그뉴스)에도 실린 글입니다. 감사합니다 - 평화뉴스
이 글이 좋으시면 손가락 모양의 추천 버튼을 눌러주세요.
포털 daum view(블로그뉴스)에도 실린 글입니다. 감사합니다.
     관련기사
· "노동자 잡는 일이 예수의 소리입니까?"· 40년 전 선생님의 속말…"식모살이는 마라"
평화뉴스의 다른기사 보기  

   
전체기사의견(0)  
      자동등록방지용 코드를 입력하세요!   
 
   * 200자까지 쓰실 수 있습니다. (현재 0 byte/최대 400byte)
   * 욕설등 인신공격성 글은 삭제 합니다. [운영원칙]
전체기사의견(0)
 
본 신문에 게재된 기사, 링크에 대한 모든 법적권리와 책임은 기사작성자 평화뉴스 에게 있습니다.
* 평화뉴스는 한국신문윤리위원회 신문윤리강령과 신문윤리실천요강을 준수합니다.
* 제호 : 평화뉴스 * 편집.발행인 : 유지웅 * 창간.발행일 : 2004년 2월 28일
* 정기간행물 등록번호 : 대구 아00010 * 정기간행물 등록 연월일 : 2007년 3월 14일
(우)41266 대구시 동구 국채보상로 155길 54 (상가동 202호) | 대표전화 053-421-6151 | 팩스 0505-421-6151 | 청소년보호책임자 : 유지웅
Copyright 2008 평화뉴스. All rights reserved. 전자메일 pnnews@pn.or.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