율도국에서 보는 '일제고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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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윤상 칼럼] "성적이 나쁠수록 지원과 우대 필요하다"


안녕하십니까? 저는 활빈당 홍길동 할아버지가 세우신 율도국의 국민입니다. 조선, 아니 한국은 율도국의 뿌리이기도 하지만, 짧은 기간에 산업화와 민주화를 이룩했다고 해서 제가 특별히 관심을 가지는 나라입니다. 그런데 율도국의 상식으로는 이해하기 어려운 일이 많아 당황스럽습니다.

일제고사와 경쟁, 그 자체가 나쁜 것은 아닌데...

요즘 벌어지고 있는 일제고사 논란도 그렇습니다. MB 정부 들어 몇 차례 일제고사를 실시해 왔고 지난 13일과 14일에는 전국 초등 6학년, 중학 3학년, 고등 2학년을 대상으로 국가수준 학업성취도 평가를 실시했다고 합니다. 역시 이번에도 거센 비판이 있었고 이에 대해 정부가 강경하게 대응하고 있네요.

율도국에서는 상상하기 어려운 일입니다. 율도국민은 학업 성취도는 당연히 평가해야 하고 일제고사도 그 하나의 방법이라고 여깁니다. 또 줄세우기 경쟁, 소모적 경쟁, 불공정한 경쟁이 아니라면 경쟁도 인간의 잠재력을 이끌어내는 데 도움이 될 수 있다고들 생각합니다.

의아해하는 율도국 학생들에게 제가 이렇게 설명해 보았습니다. “한국에서는 일제고사 성적이 나쁘면 그 지역이나 학교가 불이익을 받을 수 있습니다.” 그랬더니 학생들은 더 놀라는 겁니다.

성적이 나쁘면 오히려 지원과 우대를

율도국에서는 일제고사 성적에 별 신경을 안 씁니다. 아니, 오히려 다른 지역이나 학교보다 성적이 약간 나빴으면 하고 바라는 면도 있습니다. 성적이 나쁘면 정부에서는 교육여건에 일차적 책임이 있다고 보아 예산과 인력을 더 많이 지원합니다. 또 한국에서는 대학과 사회에서 사실상 고교등급제, 대학등급제를 실시하고 있지만, 율도국에서는 성적이 나쁜 지역과 학교 출신에 대해서는 각급 시험에서 오히려 가산점을 부여합니다.

율도국에서는 이런 지원과 우대를 당연하게 여깁니다. 율도국은 적서차별을 겪은 홍길동 할아버지가 기회균등을 위해 세우신 나라입니다. 신분에 따른 차별이 부당하듯이 교육여건 때문에 학력이 낮다면 오히려 보상해야 한다는 것이 율도국민의 확고한 생각입니다. 물론, 교육여건이 같은데도 성적이 나쁜 학교나 개인에 대해서는 다른 원인을 찾아 대책을 마련합니다.

또 일제고사에 대비하여 예ㆍ체능 시간에 일제고사 과목을 가르치는 학교도 많다고 하니까 이곳 학생들은 도무지 이해를 못합니다. “예ㆍ체능은 평가하지 않나요?” “초등학교와 중학교는 국영수사과 다섯 과목을 보고 고등학교에서는 국영수 세 과목을 봅니다.” “다른 과목은 중요하지 않다는 건가요? 그럼 왜 가르치나요?” “.....”

시험은 자기 진단의 기회

율도국에서 학업 성취도 평가 대상은 당연히 모든 과목입니다. 그러나 과목별로 학생의 일부만 뽑아 시험을 치르게 하므로 한국의 일제고사와는 다릅니다. 대상 학생 외에도 희망자는 무슨 과목이든 응시할 수 있는데, 학생 상당수가 자발적으로 응시합니다. 시험을 자신의 소질과 성취를 진단하는 기회로 삼을 수 있고 석차로 줄 세우는 일도 없기 때문입니다.

저는 한국 정부가 학생에게 일제고사 선택권을 준 교사를 쫓아내고 일제고사 불응 학생에 대한 처리 지침까지 내려 보낸다는 말은 차마 못했습니다. 학생들이 남한도 북한과 다르지 않다고 상심할까 걱정이 되어서요. 그렇지 않아도 최근 한국에서는 반대파를 숙청하고 기본권을 탄압한다고 하여 한국을 이상한 나라라고 생각하는데 말입니다.

한국이 짧은 시간에 민주화를 이룩한 나라 맞나요? 끌끌, 우리 율도국 사람이 자녀들에게 한국을 자랑할 수 있도록 해 주세요. 우리는 뿌리가 같잖아요.






[김윤상 칼럼 31]
김윤상 / 경북대 행정학부 교수. 평화뉴스 칼럼니스트 yskim@knu.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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