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을 읽는 것=산을 유람하는 것'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고서 일생' 박창호① / 고향 떠난 '3대 독자', 좌판 열고 노점으로 책을 팔다


대구 칠성동.
대구에서 손꼽히는 재래시장인 칠성시장이 자리 잡고 있는 곳입니다. 하지만 일제 강점기를 막 벗어난 1945년 무렵 칠성동의 모습은 어땠을까요. 덩그러니 자리 잡은 철도원들의 기관고가 대표적인 건물일 정도로 황량한 변두리의 모습 그대로였습니다. 철길을 따라 지금의 시민운동장 쪽으로 가면 시골에서 팔려고 군데군데 쌓아놓은 장작더미를 쉽게 볼 수 있었습니다.

그 뿐만이 아니었습니다. 철길너머 기관고 근처엔 ‘토막민’들이 터를 잡았습니다. 농촌이나 도시에서 몰려온 빈민들이 얼기설기 엮은 움집 같은 토막집에 살았는데 이들을 토막민이라고 불렀습니다. 움집에서 새어나오는 불빛과 울음소리를 듣고는 귀신이 사는 집이라고 이야기할 정도로 비참했다고 합니다. 말하자면 1920년대부터 생긴 토막민은 이후 판자촌인 해방촌이나 달동네로 이어진 셈입니다.

해방 이듬해, 그런 칠성동에 스무 살 먹은 한 젊은이가 이삿짐 보따리를 풀었습니다. 바로 박창호 님입니다.

박창호(83)님
박창호(83)님

그는 왜 칠성동에 오게 된 것일까요. 1927년에 태어난 그는 일본 혹카이도에서 학창시절을 보냈습니다. 5년제인 구제(舊制)중학교를 졸업하고 1년을 재수해 전문학교 1학년에 다니다 해방을 맞았습니다. 해방이 되자 10월에 일본을 출발해 한 달 만에 부모와 함께 고향인 경남 밀양으로 돌아옵니다.

그가 일찍이 남의 땅에서 지내게 된 것은 돈을 벌기위해 일본으로 건너간 부모님을 따라 나선 때문이었습니다. 그의 부모님은 노동으로 터전을 일구고 니이가타에서 식당을 경영해 짭짜름한 재미를 봤습니다. 이 때 번 돈으로 해방 이후 밀양에 적지 않은 논밭을 살 수 있었습니다. 하지만 거의 일본사람으로 살아온 그가 농촌마을인 밀양에서 할 수 있는 일은 거의 없었습니다.

농촌에서는 농사를 짓는 일이 무엇보다 중요합니다. 하지만 그는 농사라곤 지어본 일이 없었습니다. 그에게 농사는 힘들기도 하고 낯설기도 한 남의 일이었습니다. 더구나 ‘3대 독자’라는 이목때문인지 고향생활에 적응하는데도 어려움을 겪었습니다. 그래서 그는 대구로 가자고 마음을 먹습니다.

그의 대구행은 일본에서 먼저 귀국한 자형의 영향 때문입니다. 일본에서 명치대학을 나온 자형은 당시 대구에서 경찰학교 교관생활을 하며 칠성동에 살고 있었습니다. 이 때문에 그 또한 칠성동에 자리를 풀게 된 것입니다. 그는 대구에 와서 주로 일본책을 뒤적거리며 시간을 보내는 등 단번에 일을 찾지는 못했습니다.

박창호(83)님
박창호(83)님

그러다 그는 자형이 일본에서 가져온 책에 관심을 갖게 됩니다. 책꽂이에 있는 많은 책 가운데 법학 관련 책을 필요한 사람들에게 한두 권씩 내다팔게 됩니다. 요즘식으로 말하면 당사자끼리 사고파는 직거래를 한 것입니다. 그는 흔치 않는 학력과 전문적인 지식을 쌓은 터라 일본책을 파는데 남다른 수완을 보였습니다. 필요한 경우 번역의 도움까지 마다하지 않았습니다.

급기야 그는 길거리 서점에 진출합니다. 지금의 중앙로 문화서점 앞에서 나무문짝을 빌려 좌판을 열고 노점으로 책을 파는 일을 하게 된 것입니다. 이때까지도 고서 파는 일이 평생 직업이 되리라고는 그 역시 생각하지 않았습니다. 당장 일이 없고 무엇보다 책이 좋았습니다.

‘책을 읽는 것은 산을 유람하는 것과 같다.’(讀書如遊山)
고서 파는 일을 시작하면서 그는 퇴계 이황의 ‘독서여유산’이란 시를 좋아하게 됩니다. 산을 찾고, 정상을 오르는 발걸음처럼 세상의 진리를 찾는 독서의 참뜻을 말 한 듯하지요. 퇴계가 고개를 돌려 지금 세상을 보면, 책을 읽는 것은 ‘남과 자신을 속이는 일’(自欺欺人)에 익숙해지는 것과 같다는 말로 바꿀지도 모릅니다.



[박창원의 인(人) 21]
다섯번째 연재 '고서 일생' 박창호①
글.사진 / 평화뉴스 박창원 객원기자


'곡주사 이모'와 '하회마을 뱃사공', 노동운동가 '장명숙 세실리아',
그리고, '장승쟁이 김종흥'에 이은 <박창원의 인(人)> 다섯번째 연재입니다.
대구 칠성동에서 노점을 시작으로 평생 고서를 팔아 온 '고서 일생' 박창호(83)님.
오며 가며 한번쯤 들렀거나 박창호님과 사연 있으신 독자들의 글도 함께 싣고자 합니다.
- 사연 보내실 곳 : 평화뉴스 pnnews@pn.or.kr / 053-421-6151

저작권자 © 평화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개의 댓글
0 / 400
댓글 정렬
BEST댓글
BEST 댓글 답글과 추천수를 합산하여 자동으로 노출됩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수정
댓글 수정은 작성 후 1분내에만 가능합니다.
/ 400
내 댓글 모음
당신이 좋아할 만한 기사
지금 주목 받고 있어요
모바일버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