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서점의 베스트셀러는 무엇이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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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서 일생' 박창호 ③ / "님의침묵.청록집 초판...옛 문화 소통의 장으로"


그 옛날 대구의 고서점에서는 어떤 책들이 이른바 베스트셀러에 이름을 올렸을까요? 이런저런 책들 중에서도 유달리 국문학, 고대문학 관계 책들이 인기를 끌었다고 합니다. 그러다보니 이들 책들은 고서점 주인들에게 인기 상종가였고 값도 따라서 비싼 편이었습니다. 이문이 쏠쏠한 탓에 서점주인들 역시 좋아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아마도 이는 지역에 대학이 여럿인 것과 연관성이 있어 보입니다. 고서점의 이런 책들은 대학의 국문학 연구자들에게 좋은 자료로서의 역할을 톡톡히 했던 셈입니다. 이를테면 학문의 길을 가는 이들에게 고서점도 한몫을 한 것이지요. 그 역시 생전에 이름을 대라면 댈 수 있는 국문학 서적 단골들이 대학에서 학위를 받고 출세하는 것을 지켜봤습니다.

“고서적의 인기는 누가 뭐래도 가격이 말해 줍니다.” 국문학이나 고대문학 책만이 눈길을 끌었을까요? 이들 책 못지않게 한용운, 정지용, 김지하 등의 시집도 인기 품목이었습니다. 한용운의 ‘님의 침묵’ 초판은 자그마치 3백만 원을 넘어서기도 했다고 합니다. 박두진‧박목월․조지훈의 ‘청록집’은 1948년 초판을 백만 원에 거래한 일도 있습니다. 서정주의 ‘화사집’도 잘나가는 책이었다고 합니다.

문짝을 빌려 좌판을 하던 그가 본격적으로 고서점 일에 다시 뛰어든 것은 1956년입니다. 군대를 갖다와 일자리를 찾아 나섰지만 돌고 돌아 결국은 고서적 판매로 돌아온 것입니다. 그 시절 청년기를 보낸 이들 대개가 그랬듯이 그 역시 전쟁의 상흔을 안은 채 팍팍한 시간을 보냈습니다.

고 박창호(83)님
고 박창호(83)님

그가 6.25 전쟁 통에 군에 가게 되는 과정은 당시 징집의 한 행태를 볼 수 있어 흥미롭습니다. 1951년 어느 날, 그는 노점을 하던 곳에서 머지않은 자유극장에 영화를 보러 갑니다. 그 시절 낯설지 않았던 미국 서부영화로 그는 기억했습니다. 6.25전쟁 중이었지만 필름은 돌아가고 있었던 것입니다. 이는 대구뿐만 아니라 광주 같은 도시에서도 마찬가지 상황이었습니다. 

하지만 그는 극장 출입구에서 헌병에 붙들리고 맙니다. 3대 독자인 그는 이렇게 해서 군에 입대하게 됩니다. 그는 제주도 훈련소를 거쳐 하사로 전투현장의 수색중대에 배치됐고, 금화고지 전투를 치르기도 합니다. 철의 삼각지 전투에서는 부대가 결딴나는 것도 봤습니다. 이렇듯 그는 전쟁의 참화를 몸소 겪게 됩니다.

전쟁의 상처는 그에게 직접적으로 다가왔습니다. 밀고 밀리는 전투와중에 부상을 입게 된 것입니다. 이 때문에 그는 복무기간을 얼마 남겨두지 않은 1954년 초에 의가사 제대를 합니다. 전쟁 중에 입은 부상으로 그는 국가 유공자가 됐지만 그 후유증은 평생 동안 따라다녔습니다. 따지고 보면 그가 고서적 판매 같은 일을 택할 수밖에 없었던 이유이기도 합니다.

대구의 고서점은 당시로서는 변두리에 몰려 있었습니다. 여기서 쭉 살아온 50대 후반 이상이라면 대구시청 골목, 남문시장 일대에 고서점 거리를 쉽게 떠올릴 수 있습니다. 물론 대신동 서문시장 등 그 밖의 지역에도 고서점은 있었습니다. 한약방이 줄을 이었던 남성로에도 고서점이 더러 있었습니다.

그 시절의 고서점은 단순히 책 판매에 머무르지는 않았던 것 같습니다. 옛 가치와 문화를 이어주는 소통의 장소로 나아가려고 했습니다. 대구 문화운동의 개척자로 기록되는 목우 백기만이 1951년 남성로에서 고서점을 연 것도 이런 이유와 맞닿아 있을듯합니다. 요즘 눈으로 보면 고서점은 문화권력(?)에서 영 비켜서 있지는 않았던 셈이지요.



[박창원의 인(人) 23]
다섯번째 연재 '고서 일생' 박창호③
글.사진 / 평화뉴스 박창원 객원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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