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밥심' 대신 '책심'으로 살다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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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서 일생' 박창호⑤ / "대구 고서점 1세대..떠나간 그의 흔적은..."


"고서냄새가 나면 먹던 밥도 마다하고 벌떡 일어났지요."

고서와 오래 지내다보니 고서 특유의 퀴퀴한 냄새가 그렇게 좋을 수가 없더라고 합니다. 말하자면 그는 평생을 ‘밥심’ 보다는 ‘책심’으로 산 셈입니다. 그래서인지 고서점 경영에서 은퇴하고서도 지방을 돌아다니며 책을 구입하는 이른바 ‘중개인’ 일을 계속 했습니다.

그의 집에는 아끼는 책이나 못다 판 책들이 이방 저방을 차지하고 있었습니다. 그는 필요한 책이 있으면 가져가라고 했습니다. 하지만 아끼는 고서는 안방 금고에 있다는 말만 되풀이 하고 끝내 보여주지는 않았습니다. 그가 남다른 관심을 보인 한적(漢籍)은 아니었을까요? 방안에 남아있는 책들이 지금은 치워졌는지 아니면 주인 없는 방을 아직은 지키고 있는지 궁금합니다.

그는 대구의 고서점 창업 1세대입니다. 그런 만큼 그는 지역 고서점을 훤히 들여다보고 있었습니다. 고서점 별로 어떤 특징이 있는지, 무슨 책이 있는지 손금 보듯 말했습니다. 심지어 서점 주인의 급하고 까칠한 성격이나 버릇, 자녀들의 혼사 같은 집안 사정도 많이 알고 있었습니다. 또 이원식 선생 같은 대구에서 이름난 도서 애장가들의 이야기도 빼놓지 않았습니다.

고 박창호(83)님...
고 박창호(83)님...

아마도 이는 그가 은퇴 이후에도 여전히 고서점 주위를 떠나지 않았기에 가능한 일인 듯합니다. 올 초여름 까지도 몸이 아프지 않은 날은 시청 골목 부근 고서점가를 순례했습니다. 때로는 부근 찻집으로 후배 고서점 주인을 만나러 가기도 했습니다. 또 후배의 고서점에 들르면 물품 거래 동향을 들려주기도 했습니다. 그에게 고서점과 고서적 거래는 떠날 수 없는 평생의 친구였습니다.

그는 고서를 고르는 방법은 서점 주인이나 고객이나 다를 바 없다고 강조합니다. 예컨대 한적을 살 때면 구리활자본이든, 목활자본이든, 목판본이든 책 꺼풀이 온전하고 언제 어디서 출판했는지 간기가 분명한 책을 고르라고 강조합니다. 여러 권으로 된 책은 결본은 없는지, 출판 연대, 희귀성 등을 고루 봐야 합니다. 오래된 신문 한 장 값이 십만 원을 넘는 것은 바로 이런 조건을 갖췄기 때문이지요.

그가 한창 일 할 때는 대구에 고서점이 200개에 이를 정도로 번성 했습니다. 하지만 세월이 흘러 고서점은 힘 빠진 모습으로 남겨졌습니다. 한때 그는 고서점을 지켜내기 위해 애쓴 적이 있습니다. 90년대 들어 시청골목 일대 50여 곳과 남문시장 일대 30여 곳 고서점 주인들이 조합을 출범시킨 것입니다. 그는 시청골목 일대 조합장을 맡아 고서점 지키기에 나섰습니다.

고 박창호(83)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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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합이라는 간판을 내걸지는 않았지만 이를 통해 나름대로 생존투쟁을 벌인 것입니다. 정가제 시행 움직임도 있었고 서적상 조합 측과 담판을 벌이기도 했습니다. 대형서점 대구 진입을 반대하는 운동도 벌였습니다. 이후에는 낱권 판매 대신 묶음 판매를 하거나 인터넷 판매가 고서점가에 등장합니다. 그래도 결과는 뻔했습니다.

좌판 서점으로 이 바닥에 뛰어든 그는 삼화서점에 이어 일신학원 근처에서 신흥서림을 쭉 경영했습니다. 고서점으로 단맛, 쓴맛 다 봤지만 별로 남는 게 없는 일이었다고 말합니다. 그렇지만 고서점을 경영해 2남6녀, 8남매를 공부시키고 시집 장가보냈습니다. 이 점에서 보면 분명 이문 남는 장사였음에 틀림없습니다.

그는 평생 헌책 수집 외에 취미를 가져 본적이 없다고 합니다. 그는 우리나라에도 일본의 ‘간다’ 거리처럼 세계적으로 이름난 고서점 거리가 있었으면 했습니다. 그런 꿈을 안은 채 그는 올 여름을 넘기지 못하고 세상을 떠났습니다. 이제 그를 다시 만날 수는 없습니다. 대신에 발품을 팔아 고서점가를 기웃거리다 보면 ‘밥심’ 보다 ‘책심’으로 살다간 그의 흔적은 찾을 수 있을지 모릅니다.



[박창원의 인(人) 25]
다섯번째 연재 '고서 일생' 박창호⑤
글.사진 / 평화뉴스 박창원 객원기자


'곡주사 이모'와 '하회마을 뱃사공', 노동운동가 '장명숙 세실리아',
그리고, '장승쟁이 김종흥'에 이은 <박창원의 인(人)> 다섯번째 연재입니다.
대구 칠성동에서 노점을 시작으로 평생 고서를 팔아 온 '고서 일생' 박창호(83)님.
오며 가며 한번쯤 들렀거나 박창호님과 사연 있으신 독자들의 글도 함께 싣고자 합니다.
- 사연 보내실 곳 : 평화뉴스 pnnews@pn.or.kr / 053-421-61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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