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을 무시하는 정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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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재성 칼럼] "고집과 오기, 수첩은 그만 버리고 초심으로 돌아가라"


박근혜 정부가 출발한지 한 달이 지났다. 그 사이 많은 일들이 있었다. 당연 압권은 장·차관을 비롯한 고위 공직 후보자 청문회였다. 검증과정에서 무려 7명이나 되는 공직후보자가 낙마했다. 낙마하진 않았으나 다른 후보자들 역시 도덕적 흠결이 심각했다. 모두 다 부적격자라해도 무방할 정도였다. 그러다보니 검증절차 과정에서는 비루하리만치 버티기를 고집하는 후보자도 있었다. 국민들의 반응은 싸늘했다. 대통령의 국민신뢰도는 급전직하했다. 지금은 40%대도 무너질 지경에 이르렀다. 여당 내에서는 내부이탈을 넘어 균열조짐까지 보이고 있다.

급기야 대통령의 대국민 사과요구까지 제기되었다. 권력의 위기와 몰락은 반드시 내부에서 일어나기 마련이다. 마침내 지난 30일 청와대는 국민을 빌어 내부완화용 장치를 선택했다. 장·차관 등 고위 공직자 후보자들의 잇단 낙마와 관련한 대국민 사과문 발표였다. 허태열 청와대 비서실장의 사과문을 김행 대변인이 대독하는 형식을 취했다. “새 정부 인사와 관련해 국민 여러분께 심려를 끼친 점에 대해서 인사위원장으로서 매우 송구스럽게 생각한다. 앞으로 인사 검증 체계를 강화해 만전을 기하도록 하겠다”는 비서실장의 17초짜리 두 문장이었다.

진정성도 반성도 전혀 느껴지지 않는 사과문이었다. 야당은 “진심 없는 사과”라고 강하게 비판하며 발끈했다. 특히 박지원 민주당 의원은 “비서실장의 대국민 사과의 대변인 대독 발표는 국민을 졸로 보는 나쁜 사과”라고 꼬집었다. 맞다. 국민을 졸로 보고 있다. 고집과 오기가 하늘을 찌른다. 국민의 뜻은 안중에도 없다. 내 마음대로 가겠다는 의지만 읽힌다.

중용의 제20장 “애공문정장(哀公問政章)”은 노나라의 군주 애공이 공자에게 ‘정치란 무엇인가’를 묻고 공자가 답변을 하는 장면으로 구성되어 있다. 공자의 정치관이 뚜렷하게 나타나는 장이다. 봉건시대의 낡은 것이라 하기에는 여전히 유효한 주장이 남아 있다. 정치라는 것은 ‘일단 사람을 확보하기만 하면 빠르게 자라나는 갈대와 같은 것’이라는 공자의 말이다. 말하자면 정치를 한다는 것은 제대로 된 사람을 얻는 것에 있다는 말이다. 해서 사람의 마음을 얻지 못하는 자는 정치를 해서는 안 된다. 사람의 마음을 얻는 것이 곧 천하를 얻는 것이다. 민주주의의 싹이 고스란히 녹아들어 있다면 억지일까.

사람의 마음을 얻으려면 군주는 어떻게 해야 하는가? 군주는 제대로 된 사람을 얻으려면 자신의 몸에 바른 덕성이 배이도록 해야 한다. 공자의 어법으로 이해하면, 몸을 닦는다는 것은 도(道)를 구현하는 것이고, 도를 닦는다는 것은 인(仁)을 실현하는 것이다. 이 인은 다름 아닌 사람의 근본바탕의 감정이다. 공자는 “사람이 배우기를 좋아하는 것은 지(知)에 가깝고, 힘써 행하는 것은 인(仁)에 가까우며, 부끄러움을 아는 것은 용(勇)”에 가깝다고 했다. 지, 인, 용, 이 세 가지를 알면 내 몸을 어떻게 닦을 것인지를 알게 된다. 자기 몸을 어떻게 닦을 것인가를 알면 타인을 어떻게 다스릴 것인가도 알게 된다. 타인을 어떻게 다스릴 것인가를 알게 되면 천하국가를 어떻게 다스릴 것인가를 알게 되는 것이다.

오래전에 공자가 했던 말처럼, 지금 우리가 진정으로 요구하는 지도자는 열심히 배우고, 정당하게 행하면서 겸손한 태도로 국민을 위한 정치를 하는 사람이다. 진지하게 공부하지 않고, 정당성을 가장한 행동을 앞세워 오만불손한 태도를 보이는 것은 국민을 철저하게 무시하는 사람, 즉. 몸을 닦지 않은 사람의 정치이다. 이제 이런 정치는 지양되어야 한다. 국민들은 지난 5년간 일방통행의 정치를 겪었고 충분히 힘들었다. 고작 남은 것이라곤 정치의 퇴보와 사람의 고통 그리고 사회의 전면화된 갈등상황 밖에 없다. 그런데 그 길을 또 더 강한 방식으로 고집해야 하는가.

겨우 한 달 지났는데 피로감이 10년처럼 느껴진다면 그 정치는 이미 정상이 아니다. 비정상의 정상화가 시급한 이유다. 아직 늦지 않았다. 지금이라도 자기 몸을 어떻게 닦아야 할지 공부할 일이다. 면장질도 뭘 알아야 한다는 옛말이 있다. 수첩은 그만 버리고 공부할 일이다. 알게 되면 타인도 보일 것이고 국민도 보일 것이다. 오기로 무장한 사과문 낭독보다는 초심으로 돌아가 국민을 위한 정치가 어떤 것인지 그것부터 깨닫는 일이 우선이다.






[이재성 칼럼 42]
이재성 / 계명대 교양교육대학 교수. 평화뉴스 칼럼니스트. ssyi@kmu.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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