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인이 말하는 '김영란법' "청탁거절 명분, 부족해도 시행해야"

평화뉴스 김영화 기자
  • 입력 2016.01.20 17: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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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영란 전 대법관 대구 강연 / "소수의견 있는 사회 건강...현정권하 보수적 대법원 변화 기대"


"청탁거절 명분을 위한 것이 이른바 '김영란법' 취지다. 그런데 이미 법률상 위법으로 규정된 것만 처벌하도록 법안을 만들어놨다. 그렇게되면 있으나마나한 법과 규정이 된다. 그것이 큰 문제다"


우리나라 헌정 사상 최초의 여성 대법관, 공직자·언론인·교사에 대한 부정청탁, 금품수수 방지를 위한 일명 '김영란법(부정청탁 금지 및 공직자 이해충돌방지법)'을 만든 장본인, 김영란(60.서강대 법학전문대학원 석좌교수) 전 대법관이 19일 대구범어도서관 강연에서 김영란법에 대한 아쉬움을 나타냈다.

김 전 대법관은 "누굴 처벌하는 것보다 청탁을 거절할 수 있게 하자. 돈이나 고가의 선물을 갖고 와도 '버르장머리 없다'는 말을 안듣고 '법 때문에 안됩니다'라는 청탁거절 명분을 만들기 위해 이 법안 만들었다"며 "집안 어르신이나 친한 친구, 선배가 청탁하면 거절하기 어렵다. 거절하면 나중에 인간관계 다 끊어진다. '죄송하지만 법 때문에 안된다'고 말할 수 있는 이유가 법을 통해 생긴다"고 밝혔다.

김영란 전 대법관(2016.1.19.대구범어도서관) / 사진.평화뉴스 김영화 기자
김영란 전 대법관(2016.1.19.대구범어도서관) / 사진.평화뉴스 김영화 기자

'위헌 논란'에 대해서는 "언론인을 포함시킨 것과 관련해 몇몇분이 '미국에서는 언론의 자유와 표현의 자유가 절대적이기 때문에 이 법이 위헌'이라며 반론을 제기하는데, 미국 기자들이 누구로부터 100만원 이상 접대를 받는지 묻고 싶다. 그런 접대를 받지 않기 때문에 법이 없는 것 아니냐"고 반문했다. 또 "미국에서도 기자들이 형사처벌을 받는다"면서 "형평성에 있어 문제는 없는 것으로 본다"고 했다.

국회를 통과하면서 김 전 대법관이 처음 추진한 법률안보다 처벌 수위와 대상이 줄어든 것과 관련해서는 "한 번 만들어질 때 모든 것이 제대로 되면 좋지만 이대로 시행돼도 큰일은 아니다"며 "자체로 상징성이 있기 때문에 부족해도 시행하는 것이 중요하다. 나중에 큰 힘을 발휘할 것"이라고 기대했다.

대구지방변호사회(회장 이재동)는 19일 오후 대구 수성구 범어동 범어도서관에서 '판결을 다시 생각한다, 법원은 어떻게 사회를 변화시키는가'를 주제로 김영란 전 대법관의 강연을 열었다. 이날 강연은 오후 5시부터 2시간가량 진행됐으며 법조인과 정치인 등 시민 130여명이 참석했다.

김 전 대법관의 '판결을 다시 생각한다' 대구 강연(2016.1.19) / 사진.평화뉴스 김영화 기자
김 전 대법관의 '판결을 다시 생각한다' 대구 강연(2016.1.19) / 사진.평화뉴스 김영화 기자

김 전 대법관은 2004년 대법관 임명 후 6년간 사회적약자를 위한 판결을 내리고, 법복을 벗은 뒤 변호사 개업을 하지 않겠다는 약속을 지켜 전관예우 악습을 물리친 개혁적 인사다. 교수로 돌아온 뒤에는 권익위원장을 맡아 공직자 부정부패를 막기 위한 이른바 '김영란법'을 만들었다. 공직자, 언론인, 언론사 임직원, 사립학교 임직원이 직무 관련성이나 대가성에 관계 없이 1회이상 100만원 이상 금품·향응을 제공받으면 형사처벌(3년 이하 징역, 금품 가액의 5배 이하 벌금)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그러나 법안 추진 과정에서 남편 강지원 변호사가 대선에 출마해 부인인 자신이 공직에 있는 것이 부적절하다고 직에서 사퇴해 추진 동력이 약화됐다. 법안은 2014년 3월 우여곡절 끝에 국회를 통과해 지난해 9월부터 시행되고 있다. 하지만 입법 취지와 달리 국회에 불리한 내용이 법안에서 상당 부분 빠지고, 언론인·교사가 포함된 것에 대한 문제 제기가 이뤄졌다. 대한변호사협회는 '언론의 자유 침해', '교육의 자주성 제한'을 이유로 헌법소원을 냈다. 헌법재판소는 지난해 12월 공개변론을 열었다.

이날 강연에는 대구 시민 130여명이 참석했다(2016.1.19) / 사진.평화뉴스 김영화 기자
이날 강연에는 대구 시민 130여명이 참석했다(2016.1.19) / 사진.평화뉴스 김영화 기자
 
김 전 대법관은 이날 우리 사회의 소수의견에 대한 가치와 최근 "대법원의 보수화"에 대한 우려도 나타냈다. "판사 대부분은 소수의견을 잘 읽어보지 않는다"며 "판결문이 길면 결론만 읽지 다양한 의견을 제대로 소화하지 않는다"고 지적했다. "구조적 문제도 있지만, 국어책 읽는식의 해석만 하고 판결을 하기 때문에 판사들이 무슨 자격으로 옳고 그름을 따지는가에 대한 고민을 많이 했다"고 밝혔다.

때문에 "소수의견이라도 반드시 남기는 게 의미있는 행위"라며 "누가 어떤 논리로 권력자와 재벌 편에 섰고, 또 누가 아니였는지 가릴 수 있다"고 설명했다. 이어 "모든 국민의 생각이 하나고, 한 사람 생각만 옳은 사회는 있을 수 없다"며 "다수집단이 우위를 점한 사회에서 소수의견, 소집단을 인정해야 사회가 건강해진다"며 "대법원 전원합의체 판사들이 치열하게 논쟁하는 것이 그 이유"라고 했다.
 
강의 끝 지역 변호사들의 대법원의 보수화에 대한 우려섞인 질문이 나왔다. 김 전 대법관은 "대답하기 곤란해 교묘하게 답변한다"면서 "세상이 늘 그렇듯 대법원도 사회 변화에 대해 같은 강도로 변화를 쫓을 수 없다. 법적 안정성도 중요하기 때문에 보수적 스탠스를 유지하는 것"이라고 답했다. 하지만 "지난 정권에서 굉장히 격렬한 소수의견도 나오고 그런 판결을 많이 다뤄 현정권하에서 숨고르기를 하는 게 아니겠냐"며 "숨고른 뒤 앞으로 또 변화해 나갈 것을 기대한다. 더 두고보자"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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