겨울 한 끼...코로나에 끊긴 무료급식, 더 애절히 이어지는 긴 '나눔'

평화뉴스 김두영 수습기자
  • 입력 2020.12.24 22: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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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대구역, 노숙인·취약계층 등 60여명 광장에서 지하철역사까지 늘어선 긴 줄...늦으면 굶기도
무료급식 48곳 중 14곳 중단, 사람 몰려 금세 동나 "어려운 시기, 나눔이 나눔으로 이어지길"


어둠이 내리기 시작한 지난 22일 오후 5시 30분. 대구 동구 신암동 동대구역 광장에 무채색의 옷을 겹겹이 입은 사람들이 하나 둘 모여 긴 줄을 이뤘다. 무료급식을 기다리는 이들이다.

지팡이를 짚은 노인부터 30대 청년까지 줄을 섰다. 벤치에서 시작된 줄은 광장 벽면을 따라 지하철 역사까지 이어졌다. 컴컴한 광장 한 쪽에 늘어선 사람들은 말없이 제자리를 지켰다.

한겨울 동대구역 광장에 길게 늘어선 무료급식 줄(2020.12.22) / 사진.평화뉴스 김두영 수습기자
한겨울 동대구역 광장에 길게 늘어선 무료급식 줄(2020.12.22) / 사진.평화뉴스 김두영 수습기자

부산과 대구를 한 달씩 오가며 지하철역 안에서 생활하는 주모(56)씨는 "최근 저녁 급식이 다 끊어져서 여기에 온다"고 말했다. 아내와 떨어져 아픈 아들을 보살피며 살고 있다는 김모(60)씨는 "여기 와서 맛있는 밥 한 끼를 따뜻하게 먹을 수 있어 감사하다"고 했다.

배식시간인 오후 7시가 다가오자 60여명이 모였다. 서로 말 없이 땅을 볼 뿐이다.  

전모씨(45)는 "경기가 좋지 않아 막일, 퀵서비스 가릴 것 없이 하는데도 일거리가 없다"면서 "여기 밥을 자주 먹으러 온다"고 했다. 청송교도소에서 지난 9월 출소한 조모씨(48)는 "밥을 주는 분들이 많은 도움을 줬다"며 "마음대로 되는 세상은 아니지만 열심히 살겠다"고 했다.

"마스크 쓰세요" 급식 줄에 선 60여명에게 봉사자가 외치고 있다(2020.12.22) / 사진.평화뉴스 김두영 수습기자
"마스크 쓰세요" 급식 줄에 선 60여명에게 봉사자가 외치고 있다(2020.12.22) / 사진.평화뉴스 김두영 수습기자

급식 봉사자들은 돌아다니며 사회적 거리두기와 마스크 착용을 권고했다. 줄이 길어지던 차에 한 노숙인이 곁으로 다가와 앉는 사람을 보고 "떨어져서 앉으소"라고 말하며 거리를 벌렸다. 음식 실은 트럭이 들어오고 봉사자들이 배식을 준비하하자 노숙인들의 시선이 봉사자에게로 쏠렸다. 국과 밥, 귤과 식혜 등 식사와 후식을 준비하는 봉사자들의 손길이 분주해졌다.

배식이 시작됐다. 돼지고기를 넣은 국물에 밥을 만 국밥이 종이그릇에 담겼다. 밥을 받아든 사람들은 벤치나 길에 앉거나 서서 말 없이 밥을 먹었다. 밥을 받는 동안 마스크 착용을 부탁하는 봉사자 목소리가 이어졌다. 혹시 급식 현장에서 감염이 확산할까봐 봉사자들, 배식자들도 마음을 조리고 있었다. 마스크 없이 오는 이들은 마스크를 받았고, 마스크가 낡았거나 망가진 이들은 새 마스크를 얻었다.

한 차례 배식이 끝난 뒤 밥을 더 먹고 싶다고 배식 트럭에 오는 이들도 있었다. "오늘 벌써 세 번이나 드시네요" 봉사자 말에 한 노숙인은 멋쩍게 웃었다. 30여분 만에 식사 80인분이 동났다. 늦게 와 밥을 먹지 못한 이들은 떡과 빵을 받고 아쉬워하며 돌아갔다.

무료급식을 배식하는 자원봉사자들 손길이 분주하다(2020.12.22) / 사진.평화뉴스 김두영 수습기자
무료급식을 배식하는 자원봉사자들 손길이 분주하다(2020.12.22) / 사진.평화뉴스 김두영 수습기자

동대구역 광장에서는 일주일 내내 무료급식이 있다. 일주일 중 'NCMN 5K운동본부'가 운영하는 목요일을 빼면 대구범어교회가 운영한다. 떡과 음료수, 국밥, 바나나, 커피를 배식한다.

봉사자 손성일(58)씨는 대구에서 코로나19가 극심하던 지난 3월 이곳에서 봉사를 했다. 당시에는 20~30명 정도가 찾아왔지만 지금은 2배 늘어 일평균 60~70명 정도 동대구역을 찾는다. 코로나 때문에 다른 급식소들이 문을 닫자 동대구역으로 하루 최대 120여명이 몰린 적도 있다.

손씨는 "배고프면 힘든 게 배가 된다"며 "노숙인의 생명줄 같은 식사를 한 끼 대접하기 위해 봉사한다"고 했다. 또 "여기서 받은 도움을 다른 이에게 나눌 수 있기를 바란다"고 소망했다.

저녁 7시 40분. 식사를 마친 이들이 떠났다. 뒤처리를 끝낸 봉사자들도 차를 타고 떠났다. 광장에는 노숙인 한 두명만 남았다. 한 노숙인은 봉사자 트럭에 손을 흔들며 "고맙다"고 말했다.

국밥을 받아 길에 앉거나 서서 식사하는 사람들(2020.12.22) / 사진.평화뉴스 김두영 수습기자
국밥을 받아 길에 앉거나 서서 식사하는 사람들(2020.12.22) / 사진.평화뉴스 김두영 수습기자

코로나 방역을 이유로 1년 가까이 문 닫았던 거리의 무료급식소들이 제때 문을 열지 못하고 있다.

코로나가 잠잠해진 지난 7월 일부 운영을 재개했지만 수도권·교회 등을 중심으로 한 3차 대유행으로 열었던 문을 다시 걸어 잠그고 있는 추세다. 때문에 급식소가 줄면서 문을 연 일부의 급식 현장에 사람들이 몰리고 있고, 그 결과 준비한 식사가 금세 동나 취약계층이 긴 줄을 기다려도 밥을 굶는 일이 일어나고 있다. 겨울 한파까지 덮쳐 거리 생활은 어렵기만 하다.

22일 대구시에 확인한 결과, 대구 8개 구·군에 있는 전체 무료급식소 48곳 중 14곳이 운영을 중단(2020년 12월 10일 기준)했다. 운영 중인 곳은 34곳 뿐이다. 30%대가 급식을 멈췄다.

실제로 이날 오전 대구의 또 다른 무료급식소에서 이 같은 모습이 확인됐다. 독거노인 무료급식을 하는 중구 전국천사무료급식소 대구지부는 운영하지 않고 있었다. 근처 중구 요셉의집은 오전 일찍 배식을 끝낸 뒤였다. 늦게 온 70대 권모씨는 서성이다가 밥을 못 먹고 돌아갔다.

다른 사람들이 떠난 광장에서 홀로 앉아 식사하는 한 노숙인(2020.12.22) / 사진.평화뉴스 김두영 수습기자
다른 사람들이 떠난 광장에서 홀로 앉아 식사하는 한 노숙인(2020.12.22) / 사진.평화뉴스 김두영 수습기자

권씨는 자세한 사정은 밝히지 않았지만 가족과 연락이 끊겨 현재 지하철역에서 생활하고 있다고 했다. 그는 "밤 12시에서 새벽 5시까지 지하철역에서 자고 일어나 지하철 종점에서 종점까지 3번을 왕복하면 점심시간이 된다"며 "코로나가 심할 때는 급식이 끊겨서 사흘간 밥을 굶기도 했다"고 말했다.

아가다(60) 요셉의집 수녀는 "코로나 전에는 도시락을 220개 준비했는데 이제 290개를 만든다"며 "그래도 모자랄 지경"이라고 말했다. 또 "사업 실패와 실직으로 인해 무료급식을 찾는 젊은이들도 많이 늘었다"면서 "심지어 대전에서 온 사람도 있었다"고 기억했다.

이어 "최근에는 아침 10시 배식을 받기 위해 새벽 4시부터 와있는 사람도 있었다"며 “도시락을 못 받으면 하루 종일 식사를 못하게 될 가능성이 있어 지금도 생각난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다들 어려운 시기지만 내가 아닌 다른 사람들에게 관심을 가졌으면 좋겠다"고 부탁했다.

한편, 요셉의집은 1989년부터 30년째 정부·지자체 지원 없이 시민들의 자발적 후원과 봉사로 운영되고 있다. 이전에는 식당에서 배식했지만 코로나 이후 주5일 오전 10시 도시락을 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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