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숨이 턱, 땀이 주르륵"...대구 35도 폭염, 1평 쪽방촌 사람들은

평화뉴스 정준민 기자
  • 입력 2023.07.31 20: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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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1일 전국 '폭염특보'에도...에어컨 없어 선풍기에 의존
에어컨 있어도 전기 용량 제한으로 오래 틀지 못해
대구시, 쪽방에 에어컨 설치 사업, 8월 초까지 96대 계획
주인 동의·전기료 부담·안전성 문제...설치 쉽지 않아


숨이 턱턱 막히고, 땀이 주르륵 흘러내린다. 

체온을 넘나드는 35도의 폭염이 달군 1평 남짓한 대구 쪽방촌의 모습이다. 
 
31일 오후 2시, 전국에 폭염특보가 내려진 가운데 낮 최고기온이 35도까지 올라 대구는 올해도 어김없이 '대프리카(대구+아프리카 합성어)'가 됐다. 북구 칠성동 일대 '쪽방촌'에서는 인기척 없이 선풍기가 돌아가는 소리만 울려대고 있었다. 7년째 쪽방에서 거주하고 있는 김모씨(58.남)는 "선풍기도 너무 오래 쓰면 열이 나기 때문에 켰다 껐다를 반복해야 한다"고 고충을 토로했다.

1평 남짓한 크기에 옷가지, 텔레비전, 어지럽게 놓인 생활용품들이 가득했다. 공간이 너무 좁아 에어컨을 설치할 수도 없었다. 더위를 버티기 위해서는 열을 최대한 줄여야 했다. 그가 선택한 방법은 불을 끄고, 속옷과 러닝셔츠만 걸친 채로 자그마한 탁상용 선풍기에 의존하는 것이었다. 밤에는 행정복지센터에서 제공하는 임시 거주공간에서 시원하게 잠을 잘 수도 있지만, 몸이 불편한 데다 잠자리가 바뀌면 부담스러워 가지 않는다고 했다.
 
북구 칠성동 한 여인숙에 거주하는 조모(57)씨가 에어컨이 설치되기 이전에 있었던 고충을 토로하고 있다.(2023.7.31) / 사진. 평화뉴스 정준민 기자
북구 칠성동 한 여인숙에 거주하는 조모(57)씨가 에어컨이 설치되기 이전에 있었던 고충을 토로하고 있다.(2023.7.31) / 사진. 평화뉴스 정준민 기자

칠성동 소재 다른 여관에서는 조모씨(57.남)가 오이와 무, 설탕 등을 사 들고 왔다. 그는 "너무 더워서 오이랑 무를 무쳐 먹으려고 사러 왔는데, 너무 비싸다"고 한탄했다. 5년째 이곳에서 살고 있다는 그는 고물상을 운영하다가 다리를 수술한 후 직업을 구하지 못하고 있었다.

1평도 안 되는 방 안은 찜질방에 들어온 듯 뜨거웠다. 땀이 주르륵 흐른다. 여관 2층 복도 끝에 에어컨이 돌아가고 있었지만, 그의 방은 반대편에 있어 시원한 느낌을 받지 못했다. 그는 "너무 더우면 다리 밑 그늘에서 2~3시간가량 있다가 온다"면서 "지금은 복도 끝에 에어컨이라도 생겨 좀 낫다. 하지만 에어컨이 생기기 전에는 쪽방 안이나 밖이나 같았다"고 회상했다.
 
"에어컨, 있어도 1시간밖에 못 틀어요" 호소하는 오모(78)씨 (2023.7.31. 중구 북성로) / 사진. 평화뉴스 정준민 기자
"에어컨, 있어도 1시간밖에 못 틀어요" 호소하는 오모(78)씨 (2023.7.31. 중구 북성로) / 사진. 평화뉴스 정준민 기자

햇볕이 가장 뜨겁게 내리쬐던 오후 12시경에는 대구 중구 북성로 일대 쪽방촌을 찾았다. 19명이 거주하는 A여인숙 앞에서 쪼그린 채 담배를 물고 있던 오모씨(78.남)는 "너무 더워서 오늘 밖으로 나가지 않으려 했다가 답답해서 나왔다"고 밝혔다. 그는 백화점 내에서 양장점을 운영하다가 장사가 되지 않아 퇴출당했고, 이후 쪽방에서 9년째 거주하게 됐다고 했다.

그는 3년 전 방 안에 에어컨을 달았다. 하지만 건물이 너무 오래돼 에어컨이 있는 3개 방에서 동시에 틀면 누전차단기가 내려가 함부로 쓰지 못한다고 말했다. 또 전기요금도 조금씩은 부담해야 한다고 밝혔다. 이어 "방이 좁고 에어컨이 전기 용량을 많이 차지해 1시간 정도밖에 틀어놓지 못한다"면서 "오후 3~4시경에는 에어컨을 틀지 못하면 숨이 턱 막힌다. 특히 지붕에서 2층 방으로 전도되는 열 때문에 말도 안 나올 정도로 덥다"고 하소연했다.
 
대구시 중구 북성로 소재 쪽방. 복도를 따라 방이 다닥다닥 밀집돼 있다(2023.7.31) / 사진. 평화뉴스 정준민 기자
대구시 중구 북성로 소재 쪽방. 복도를 따라 방이 다닥다닥 밀집돼 있다(2023.7.31) / 사진. 평화뉴스 정준민 기자
쪽방 거주민들이 이용하는 샤워실 앞. 7명이 공동으로 이용한다.(2023.7.31) / 사진. 평화뉴스 정준민 기자
쪽방 거주민들이 이용하는 샤워실 앞. 7명이 공동으로 이용한다.(2023.7.31) / 사진. 평화뉴스 정준민 기자

대구시(시장 홍준표)는 올해 처음으로 쪽방 거주민들의 '여름나기'를 위해 밀집지역을 중심으로 에어컨 설치 사업을 시작했다. 하지만 쪽방 주인들에게 가해지는 전기세 부담이나 노후화된 건물의 안전성 문제로 인해 설치 요청이 들어와도 함부로 설치하기는 힘든 실정이다.

장민철 대구쪽방상담소 소장은 "쪽방 거주민들이 결코 저렴하지 않은 월세를 내는데도, 공간 자체가 가지고 있는 취약성 때문에 힘들어지는 시기들이 매년 반복되고 있다"면서 "에어컨을 설치하는 문제도 집주인 설득, 안전성을 모두 고려해야 하기 때문에 쉽지 않다"고 말했다.

대구시는 쪽방 거주민들의 폭염 피해를 예방하기 위해 지난 7월 6일부터 '2023년 하절기 취약계층 보호대책'으로 쪽방 에어컨 설치를 시작했다. 당초 쪽방이 밀집한 4개 지역에 22개 동, 77대 설치를 계획했으나 예산이 남아 19대를 추가로 설치해 총 96대를 이번 주 내로 설치할 예정이다. 사회복지공동모금회에서 지정기부금을 받아 7·8월 전기요금도 대당 5만원 이내로 지원한다.

김외철 대구시 복지정책과장은 "시 재난관리기금을 활용해 취약계층인 노숙인·쪽방 거주민에 대해 지원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하지만 "내년에도 설치를 검토하고 있으나 전기료 지원에 대한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면서 "예산 수급이나 지원에 대한 형평성을 충분히 검토해보겠다"고 설명했다.
 
"달셋방 있음"...중구 북성로 A여인숙 앞(2023.7.31) / 사진. 평화뉴스 정준민 기자
"달셋방 있음"...중구 북성로 A여인숙 앞(2023.7.31) / 사진. 평화뉴스 정준민 기자

쪽방은 보증금 없이 일세나 월세 형태로 운영되는 거주 공간이다. 기초생활수급자나 노인 1인 가구 등이 주로 생활한다. 방은 1~2평(3.3㎡~6.6㎡) 남짓한 크기다. 샤워실, 세탁실 등 각종 부대시설은 거주민들이 공동으로 사용한다. 대구에서는 중구 대신동, 북구 칠성동, 동구 신암동, 서구 비산동 등에 밀집돼 있다.

대구시에 따르면, 대구쪽방상담소가 관리하는 쪽방 밀집지역은 2023년 6월 말 기준 4개 지역, 쪽방 66개동이다. 604명이 거주하고 있으며, 이들 중 기초생활수급자는 340명(56%), 65세 이상 노인은 321명(53%)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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