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집 : 2020.7.9 목 23:09
> 뉴스 > 나눔과 섬김
   
뱃사공 싫어도 노 젓는 뱃사공
하회마을 뱃사공④ / "빌려 짓는 농토, 언제라도 돌려주야지요..."
2010년 04월 28일 (수) 10:32:44 평화뉴스 pnnews@pn.or.kr

“그대로 나둬야 하회마을 아니껴. 강물을 파헤치는 문제도 그렇고. 2년 뒤에는 유람선을 띄운다는 소리 못 들어 봤니껴?. 아이고, 나룻배를 타야 하회마을끼지….”

그는 이런저런 할 말이 많은 듯 했지만 술 한 모금으로 대신했습니다. 말 많은 낙동강 정비사업도 마뜩잖은데 거기에다 유람선을 띄운다는 이야기까지 들리니, 그의 심사가 뒤틀리는 건 당연해 보입니다. 큰돈은 아니지만 아이들 키우고 농사를 짓는 그에게 뱃사공은 요긴한 수익을 안겼던 게 사실이지요. 요즘은 손님이 없어 평일에도 예약 손님을 받는다며 걱정을 하나 더 얹습니다.

   
▲ 하회 나루터 뱃사공 이창학(58)님

그가 모는 나룻배를 타면 어디까지 가는 걸까요. 낙동강물이 태극처럼 아니, 사람의 발톱 모양을 하며 휘돌다 이룬 바위 낭떠러지 부용대를 돌아 나옵니다. 당초 외지로 왕래하는 교통수단이던 나룻배가 관광선으로 자리바꿈을 한 것입니다. 그는 7년 전이나 지금이나 이 뱃길을 변함없이 오갑니다. 그러고 보니 뱃길은 오래전 변한만큼이나 변하지 않았습니다.

하회마을은 어떨까요? 하회마을 역시 변하지 않은 것만큼이나 변했습니다. 타성바지들이 조상대대로 지내온 동신제 터의 삼신당 신목은 오늘도 타성바지의 신앙 중심으로 제 자리에 서 있습니다. 양진당과 충효당으로 나뉜 두 계파는 여전히 류 씨의 힘줄이 되고 있습니다.

양반들의 호사스러운 선유줄불놀이나 시회는 관광객들을 위한 볼거리 공연으로 바뀌었습니다. 용신제의 한 토막인 하회별신굿 탈놀이 역시 해마다 구경거리로 다가옵니다. 이제 별신굿의 탈놀이는 국제탈춤페스티벌로 이어지고 있습니다.

별신굿은 정월 대보름 동제 때 타성바지들이 벌인 용신제의 한 토막이었습니다. 눌리며 살던 상민, 아랫것들이 양반탈을 쓸 때면 양반과 맞담배질을 해도 너그러이 넘어갈 수 있었습니다. 아래‧위가 뚜렷한 그 시대에 숨구멍 구실을 한 셈입니다. 그 별신굿이 전수관이나 야외공연장으로 당당하게 자리를 차지한 것 또한 하회마을의 달라진 모습입니다. 뛰어난 풍광, 양반과 상민의 삶이 응축된 문화는 바로 전통이라는 이름으로 하회마을의 안팎이 되었습니다.

   
▲ 안동 '하회별신굿탈놀이' / 사진. 안동시 제공

“우리 아부지가 언젠가는 6.25전쟁 때 숲으로 피난 간 이야기를 하셨지. 다른 이야기는 안해주더라고.” 그가 전하는 아버지의 6.25 전쟁 이야기 뒤에는 생략하고 싶은 아픈 대목이 있음을 엿볼 수 있습니다. 기실 하회마을 또한 알려진 것과는 달리 여느 지역처럼 적지 않은 아픔을 겪었습니다. 하회마을 사람들은 자신들이 사는 이 마을은 전란을 모르는 곳이라고 즐겨 말합니다. 임진왜란 때도, 6․25 때도 그랬다는 것입니다.

하회마을은 그러고 싶었겠지요. 하지만 희망사항에 그쳤던 모양입니다. 6․25 때 풍산 류 씨 동족 지파 간에 좌우익으로 나뉘어 심각한 정치적 갈등의 표출이 있었다니 말입니다. 46년 전 하회마을을 샅샅이 뒤진 학술보고서 ‘동족부락의 생활구조 연구’를 낸 김택규 교수가 회고담에서 들려준 이야기입니다. 연구서에 기술할 수 없을 정도의 갈등 표출이었다면 어느 정도인지 짐작이 가고도 남습니다. 예나 지금이나 화합의 분위기가 아니라 내편네편 가르는 적대적인 상황은 무고한 희생을 몰고 왔나 봅니다.

그는 이런 하회마을에 사는 것을 팔자소관으로 생각합니다. 광산 김 씨 아내를 같은 농촌인 전라도 김제에서 맞아 ‘류 씨 배판’에서 자식 낳고 큰 변고 없이 살고 있는 것을 일컫습니다. 어찌 보면 선택의 여지가 별로 없는 하회마을에서 주어진 환경에 마음 상하지 않고 순응하는 게 타성바지인 그의 생활철학 같기도 합니다.

그는 뱃사공의 ‘뱃’ 자도 듣기 싫어하고, ‘처녀 뱃사공’이라는 노래도 좋아하지 않습니다. 그래도 그는 오늘은 노를 젓고, 되레 내일은 삿대 놓을 일을 걱정하고 있습니다.

“빌려 짓는 농토 여나무 마지기는 언제라도 주인인 류 씨들에게 돌려 주야지요….”


   




글.사진 / 평화뉴스 박창원 객원기자


'곡주사 이모'에 이어 <박창원의 인(人)> 두 번째 연재를 시작합니다.
안동 하회마을 나루터, 그 곳 뱃사공 이창학(58)님의 이야기를 이어가려고 합니다.
하회 나루터에서 나룻배를 타 보셨는지요? 나룻배 노 저어가는 뱃사공을 만난 적 있으신지요?
사연 있으신 독자들의 글도 함께 싣고자 합니다. 많은 관심과 참여 바랍니다 - 평화뉴스
- 사연 보내실 곳 : 평화뉴스 pnnews@pn.or.kr / 053-421-6151


이 글이 좋으시면 손가락 모양의 추천 버튼을 눌러주세요.
포털 daum view(블로그뉴스)에도 실린 글입니다. 감사합니다.
     관련기사
· "어이~" … 뱃사공을 부르는 그 소리· "뱃삯, '출입' 받아야 입에 풀칠이라도 하지… "
· "몽땅 사면 '부용대'는 그냥 낑가 준대"
평화뉴스의 다른기사 보기  

   
전체기사의견(0)  
      자동등록방지용 코드를 입력하세요!   
 
   * 200자까지 쓰실 수 있습니다. (현재 0 byte/최대 400byte)
   * 욕설등 인신공격성 글은 삭제 합니다. [운영원칙]
전체기사의견(0)
 
본 신문에 게재된 기사, 링크에 대한 모든 법적권리와 책임은 기사작성자 평화뉴스 에게 있습니다.
* 평화뉴스는 한국신문윤리위원회 신문윤리강령과 신문윤리실천요강을 준수합니다.
* 제호 : 평화뉴스 * 편집.발행인 : 유지웅 * 창간.발행일 : 2004년 2월 28일
* 정기간행물 등록번호 : 대구 아00010 * 정기간행물 등록 연월일 : 2007년 3월 14일
(우)41266 대구시 동구 국채보상로 155길 54 (상가동 202호) | 대표전화 053-421-6151 | 팩스 0505-421-6151 | 청소년보호책임자 : 유지웅
Copyright 2008 평화뉴스. All rights reserved. 전자메일 pnnews@pn.or.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