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도 안아파요. 안맞은 것 같아요"
남편 번은 한국어가 서툴러 난이 센터에서 통역사 역할을 했다. 스마트폰은 있지만 디지털 기술을 잘 활용하지 못해 온라인 예약은 하지 못했다. 현장에서 도움을 받아 접종 관련 설명을 듣고 당일 예약을 했다. 오후 4시가 다 돼서야 백신을 맞았고 거의 마지막으로 센터를 나왔다. 접종 후 혹시 부작용이 있을까 걱정했지만 이상 반응은 없었다. 센터에서 준 안내문을 들고 한국인 사장과 같이 돌아갔다.
하지만 한국 정부가 미등록 이주민들에 대해서도 백신을 접종하겠다고 정책 방향을 틀면서 한국 사장이 먼저 난 부부에게 백신 접종을 권했다. 법무부도 강제추방이나 단속과 같은 조치를 하지 않기로 했고, 질병관리청은 익명성을 보장하겠다고 했다. 대구시 등 지자체도 적극 협조했다.
대구시는 앞서 12일 오전 9시 30분부터 오후 4시까지 농협하나로유통 달성유통센터 2층 달성군 접종센터에서 미등록 이주노동자들을 대상으로 코로나 예방 접종을 처음 실시했다. 앞서 11일은 성서예방접종센터, 같은 날 12일은 서구예방접종센터에서 이주민들을 대상으로 백신 접종을 시작했다. 이주노동자, 이주민 등 '미등록' 외국인들에 대한 대구 지역사회의 본격적인 백신 접종이 시작된 셈이다.
예상 접종 인원은 500명이었지만 첫날 달성군에서는 인근 공단과 농촌에서 200여명이 몰렸다. 오전에는 발 디딜틈 없이 접수처가 붐볐지만 오후가 되자 한산해졌다. 현장 의료지원은 대구경북인도주의실천의사협의회(대경인의협), 119, 지역 보건소, 대구시 시민건강국이 담당했다. 예약은 온·오프라인으로 받았고, 통·번역 서비스도 준비했다. 6개국 예진표와 안내문을 만들었고, 12개국 언어로 홍보자료를 배포했다.
하지만 이주민들 중 '디지털 문맹'이 많아 온라인 사전 예약율은 10분의 1 수준으로 저조했다. 베트남, 파키스탄, 네팔, 태국, 중국 등 이주민 현장 통역사가 부족해 원할한 소통에 어려움이 있었다. 이 같은 첫 날 우왕좌왕한 현장 모습에 대해서는 대구시가 앞으로 조금씩 다듬어 나간다는 계획이다.
목표는 완벽한 현장 통제가 아닌 방역이다. 이 정책을 놓고 일부는 반발하고 있지만, 감염병을 막기 위해서는 이민자들에게도 차별 없이 방역과 접종을 하는 게 세계적 추세다. 더군다나 국내 미등록 이주민은 추정치만 50만명에 육박한다. 신분상 열악한 환경에서 일을 하거나 거주하는 경우가 많아 방역 공백은 감염 위험을 키울 뿐이다. 때문에 정부는 신분상 이들이 자유롭게 외출할 수 없다는 점에 착안해 1회 접종으로 끝나는 얀센을 공급하고, 익명성을 보장하는 등 단속 조치도 하지 않기로 했다.
의료 봉사를 나온 김선희(의사) 대경인의협 기획국장은 "미등록 이주민이라고 해서 백신 접종에서 제외하면 지역사회가 감염 위험에 노출될 수 있다"며 "정부와 지자체가 이들을 안심시켜 백신을 맞게 적극 홍보하는 것은 방역과 인권 차원에서 필요하다. 감염병에 있어서 차별과 배제는 없어야 한다"고 말했다.
한편, 대구 1차 백신 접종률은 63.8%로 접종 대상자 240만1,110명 중 153만2,920명이다. 2차까지 백신 접종을 끝낸 접종률은 36.8%로 88만4,804명이다. 14일 0시 기준 신규 확진자는 27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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