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신 사각지대 '미등록 이주민'...대구 접종 현장 "단속 걱정마세요"

평화뉴스 김영화 기자
  • 입력 2021.09.14 16: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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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국 50만여명 / 달성군 첫 날, 공단·농촌 2백여명 몰려→1회 접종 얀센, 익명 보장, 강제추방 않기로
서툰 한국어·디지털 문맹 탓 예약율 저조·통역사 부족...의료진들 "방역·인권 차원, 차별·배제 없어야"


"하나도 안아파요. 안맞은 것 같아요"

태국에서 한국에 온지 4년 된 34살 난(여성.달성군)의 말이다. 난은 지난 12일 대구시 달성군 화원읍 성천로9 코로나19 대구광역시 달성군 예방접종센터 2층에서 코로나 백신을 맞았다. 남편 번도 이날 함께 백신을 접종했다. 이들은 미등록 이주노동자로 달성군에 있는 한 농업업체에서 일하고 있다.

얀센을 맞고 나온 대구 미등록 이주노동자 30대 태국 부부(2021.9.12) / 사진.평화뉴스 김영화 기자
얀센을 맞고 나온 대구 미등록 이주노동자 30대 태국 부부(2021.9.12) / 사진.평화뉴스 김영화 기자
대구 달성군 코로나 예방접종센터 미등록 이주민 접종 첫 날(2021.9.12) / 사진.평화뉴스 김영화 기자
대구 달성군 코로나 예방접종센터 미등록 이주민 접종 첫 날(2021.9.12) / 사진.평화뉴스 김영화 기자

남편 번은 한국어가 서툴러 난이 센터에서 통역사 역할을 했다. 스마트폰은 있지만 디지털 기술을 잘 활용하지 못해 온라인 예약은 하지 못했다. 현장에서 도움을 받아 접종 관련 설명을 듣고 당일 예약을 했다. 오후 4시가 다 돼서야 백신을 맞았고 거의 마지막으로 센터를 나왔다. 접종 후 혹시 부작용이 있을까 걱정했지만 이상 반응은 없었다. 센터에서 준 안내문을 들고 한국인 사장과 같이 돌아갔다.

번과 난은 같은 곳에서 일한다. 한국인 사장과 다행히 마음이 잘 맞아 가족처럼 지낸다. 고민은 최근 시작됐다. 한국인 사장과 같은 곳에서 일하는 한국인들은 백신을 접종을 끝냈다. 난 부부만 맞지 못했다. '미등록(불법체류자)' 신분이 드러나 단속에 걸려 강제추방되면 먹고 살길이 막막해지기 때문이다.

달성군 센터 접종 첫 날 미등록 이주민 2백여명이 접종했다.(2021.9.12) / 사진.평화뉴스 김영화 기자
달성군 센터 접종 첫 날 미등록 이주민 2백여명이 접종했다.(2021.9.12) / 사진.평화뉴스 김영화 기자
백신접종을 하고 나서 센터를 떠나는 이들((2021.9.12) / 사진.평화뉴스 김영화 기자
백신접종을 하고 나서 센터를 떠나는 이들((2021.9.12) / 사진.평화뉴스 김영화 기자

하지만 한국 정부가 미등록 이주민들에 대해서도 백신을 접종하겠다고 정책 방향을 틀면서 한국 사장이 먼저 난 부부에게 백신 접종을 권했다. 법무부도 강제추방이나 단속과 같은 조치를 하지 않기로 했고, 질병관리청은 익명성을 보장하겠다고 했다. 대구시 등 지자체도 적극 협조했다.

난은 "코로나 무섭다. 우리도 백신 주사를 맞고 싶은데 불법 (신분) 이니까 쫓겨날까 무서웠다"며 "그런데 와보니까 단속이나 출국을 안시켜서 좋다. 걱정 안하고 주사 맞으러 와도 될 것 같다"고 말했다. 

달성군 접종센터 중국어, 베트남어 등 각국 언어 접종 안내문(2021.9.12) / 사진.평화뉴스 김영화 기자
달성군 접종센터 중국어, 베트남어 등 각국 언어 접종 안내문(2021.9.12) / 사진.평화뉴스 김영화 기자
이주민 대상 영어 접종 안내문 "당일 예약자만 가능"(2021.9.12) / 사진.평화뉴스 김영화 기자
이주민 대상 영어 접종 안내문 "당일 예약자만 가능"(2021.9.12) / 사진.평화뉴스 김영화 기자

대구시는 앞서 12일 오전 9시 30분부터 오후 4시까지 농협하나로유통 달성유통센터 2층 달성군 접종센터에서 미등록 이주노동자들을 대상으로 코로나 예방 접종을 처음 실시했다. 앞서 11일은 성서예방접종센터, 같은 날 12일은 서구예방접종센터에서 이주민들을 대상으로 백신 접종을 시작했다. 이주노동자, 이주민 등 '미등록' 외국인들에 대한 대구 지역사회의 본격적인 백신 접종이 시작된 셈이다.

예상 접종 인원은 500명이었지만 첫날 달성군에서는 인근 공단과 농촌에서 200여명이 몰렸다. 오전에는 발 디딜틈 없이 접수처가 붐볐지만 오후가 되자 한산해졌다. 현장 의료지원은 대구경북인도주의실천의사협의회(대경인의협), 119, 지역 보건소, 대구시 시민건강국이 담당했다. 예약은 온·오프라인으로 받았고, 통·번역 서비스도 준비했다. 6개국 예진표와 안내문을 만들었고, 12개국 언어로 홍보자료를 배포했다.

하지만 이주민들 중 '디지털 문맹'이 많아 온라인 사전 예약율은 10분의 1 수준으로 저조했다. 베트남, 파키스탄, 네팔, 태국, 중국 등 이주민 현장 통역사가 부족해 원할한 소통에 어려움이 있었다. 이 같은 첫 날 우왕좌왕한 현장 모습에 대해서는 대구시가 앞으로 조금씩 다듬어 나간다는 계획이다.

달성군 접종센터에서 접종을 위해 대기 중인 미등록 이주민들(2021.9.12) / 사진.대경인의협
달성군 접종센터에서 접종을 위해 대기 중인 미등록 이주민들(2021.9.12) / 사진.대경인의협
김선희(의사) 기획국장과 통역사가 이주민 건강 상태를 확인 중이다.(2021.9.12) / 사진.대경인의협
김선희(의사) 기획국장과 통역사가 이주민 건강 상태를 확인 중이다.(2021.9.12) / 사진.대경인의협

목표는 완벽한 현장 통제가 아닌 방역이다. 이 정책을 놓고 일부는 반발하고 있지만, 감염병을 막기 위해서는 이민자들에게도 차별 없이 방역과 접종을 하는 게 세계적 추세다. 더군다나 국내 미등록 이주민은 추정치만 50만명에 육박한다. 신분상 열악한 환경에서 일을 하거나 거주하는 경우가 많아 방역 공백은 감염 위험을 키울 뿐이다. 때문에 정부는 신분상 이들이 자유롭게 외출할 수 없다는 점에 착안해 1회 접종으로 끝나는 얀센을 공급하고, 익명성을 보장하는 등 단속 조치도 하지 않기로 했다.

의료 봉사를 나온 김선희(의사) 대경인의협 기획국장은 "미등록 이주민이라고 해서 백신 접종에서 제외하면 지역사회가 감염 위험에 노출될 수 있다"며 "정부와 지자체가 이들을 안심시켜 백신을 맞게 적극 홍보하는 것은 방역과 인권 차원에서 필요하다. 감염병에 있어서 차별과 배제는 없어야 한다"고 말했다.

한편, 대구 1차 백신 접종률은 63.8%로 접종 대상자 240만1,110명 중 153만2,920명이다. 2차까지 백신 접종을 끝낸 접종률은 36.8%로 88만4,804명이다. 14일 0시 기준 신규 확진자는 27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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