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주노동자들 돕다 실형 3년...전국에서 7천여명 탄원 "선처해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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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등록이주민 36명 출근버스 작년 8월 '출입국 단속'   
"살려달라" 호소에 운전기사 도주 돕다가 징역형    
"내게는 친구, 동료...울부짖음 외면할 수 없었다" 
'이주와 가치' 등 시민단체 "약자 돕다 생긴 일, 선처"
온라인 탄원에 시민 응원 봇물...6일 항소심 첫 공판

 

가던 길을 멈추고 강도 만난 사람을 돌본 사라마리아인을 칭찬하고자 하는 게 아닙니다. 그가 그렇게 할 수 밖에 없는 이유는 수없이 많겠지만, '그냥 지나칠 수 없어서'가 가장 큰 이유라고 생각합니다. 합리적 판단이나 이성적 사고 이전에 그렇게 할 수 밖에 없는 게 사람이라고 생각합니다.(탄원서 중)

미등록 이주노동자들을 돕다가 감옥에 간 대구 노동자를 선처해달라는 탄원서가 전국에서 쏟아졌다.

대구 성서공단 인근 작은 사무실. 지역의 이주민들을 돕는 인권단체 '이주와 가치(대표 고명숙)'다. 5일 이들 단체에 접수된 탄원서는 7천여장이다. 시민 7,405명이 탄원서를 냈다. 서울과 부산, 제주, 광주, 울산 등 지역을 가리지 않는다. 35개 시민단체도 이름을 올렸다. 

한 사람을 위한 탄원이다. 미등록 이주노동자들을 돕다가 실형 3년이 떨어진 한 40대 노동자의 사연을 이들 단체가 알리고 온라인에서 서명운동을 벌이면서 시민들 응원이 잇따랐다. 


"김영수씨, 선처해주세요"...전국에서 쏟아진 시민 7,000여명의 탄원서(2024.3.5.대구 달서구 이곡동 '이주와 가치' 사무실) / 사진.평화뉴스 김영화 기자

사연의 주인공은 김영수(가명)씨다. 영수씨는 달성군 논공읍 한 자동차부품업체에서 일하는 20여년차 노동자다. 아이들을 키우는 40대 평범한 가장으로 6년째 공장 노동자 출퇴근을 돕는 45인승 통근버스를 몰고 있다. 평범한 가장 영수씨는 지금 감옥에 있다. 지난해 8월 한 사건이 운명을 바꿔놨다. 

판결문을 보면, 영수씨는 지난해 8월 25일 오전 7시 25분쯤 같은 공장에서 일하던 미등록이주노동자 36명을 버스에 태우고 공장으로 출근하고 있었다. 하지만 대구출입국·외국인사무소(대구출입국사무소) 공무원 16명이 "불법체류자" 제보를 받고 단속을 하기 위해 출근 버스를 가로막았다. 

버스는 아수라장이 됐다. 이주노동자들은 버스 뒷쪽으로 모두 몰려갔다. 숨을 곳이 없는데도 몸을 숨겼다. 이주노동자들은 "살려달라", "구해달라", "도망가달라"고 외치며 영수씨에게 도움을 호소했다. 도울 사람은 영수씨 밖에 없었다. 영수씨는 운전대를 돌렸다. 이주노동자들을 돕기로 했다. 

이 과정에서 출입국 직원들 단속차량을 들이받아 차량 3대가 파손됐고, 공무원 11명은 무릎 염좌, 손목 타박상 등 전치 2~3주 부상을 입었다. 영수씨는 현장에서 체포됐다. '특수공무집행방해치상' 등 혐의로 기소돼 재판에 넘겨졌다. 대구지법 서부지원 제1형사부(부장판사 임동환)는 지난해 12월 징역 3년을 선고했다. 입건에서 선고까지 6개월 넘게 옥살이를 하고 있다.


김영수씨 구명 운동을 주도한 고명숙 이주와 가치 대표가 이번 일을 하게 된 이유를 설명하고 있다.(2024.3.5) / 사진.평화뉴스 김영화 기자
김영수씨 구명 운동을 주도한 고명숙 이주와 가치 대표가 이번 일을 하게 된 이유를 설명하고 있다.(2024.3.5) / 사진.평화뉴스 김영화 기자

그리고 이주와 가치 고명숙 대표가 이색 사건을 다루는 한 기사에서 영수씨의 사연을 읽고 그를 돕기로 했다. 이어 이주와 가치 일을 돕는 손나희 변호사와 함께 영수씨 접견을 갔다. 영수씨는 "타지에서 일하는 게 마치 나를 보는 것 같다는 생각에 운전대를 돌려 그들을 도왔다"며 "내게는 친구고 동생이고 동료인 그들의 울부짖음을 외면하기 어려웠다. 이성적 판단이 힘들었다"고 당시를 회상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주와 가치는 지난 2월 온라인 폼을 열어 탄원서를 접수 받았다. 그리고 한달새 7천여명의 시민들이 영수씨 사연을 보고 탄원서를 냈다. 전국 이주민 인권단체 등 시민사회도 함께했다.  대구NCC인권위원회, 대구경북목정평, 대구경북이주연대 등은 지난 2월 29일 대구 포레스트홀에서 '사회적 약자를 위한 행동으로 인해 구속된 김영수씨 석방을 위한 기도회'도 열었다.  

"사회적 약자를 위한 행동으로 인해 구속된 김영수씨 석방을 위한 기도회"(2024.2.29.포레스트홀) / 사진.이주와 가치

고 대표는 "사회적 약자를 돕다 생긴 일이데 너무 과도한 징역형이 떨어진 것 같아 안타까웠다"며 "토끼몰이식 강제 단속에 고통 받는 미등록 이주노동자들을 도운 행위는 의인에 가깝다"고 말했다. 이어 "상황이 어려울 때 그가 이주노동자들에게 손을 내민 것처럼 시민들의 온정도 쏟아져 마음이 따뜻하다"면서 "재판부가 시민들의 탄원 내용을 참고해 영수씨에게 선처를 배풀길 바란다"고 호소했다.

한편, 대구고법은 오는 6일 영수씨에 대한 항소심 첫 공판을 진행한다.  

탄원서는 지금도 접수 가능하다. ▶이 구글폼에서 진행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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