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벽 5시부터 고물 100kg 주워도 일당 6천원...대구, 여든 '폐지 노인들'의 하루

평화뉴스 정준민 기자
  • 입력 2024.01.05 19: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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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년째 폐지 줍는 87세 할아버지 '투잡'에도 월 59만원
78세 할아버지 밤낮 없이 리어카 "두부 한모·담뱃값이라도"
첫 전국 실태조사 / 노인 4만여명 시급 1,226원 '절대 빈곤'
민·관 49곳 일자리연계 수입지원...대구 0곳, 계획도 없어


대구 중구 동인동 앞 한 빌라 5일 오전 인적이 드문 골목길에 리어카를 끈으로 묶은 자전거가 세워져 있었다. 리어카 안에는 폐지와 캔, 플라스틱 등 각종 고물이 잔뜩 실려 있었다.

20년째 폐지 줍는 87세 할아버지..."알루미늄 캔 비싸, 너나 없이 주워가려 해"

■ 여든을 훌쩍 넘은 나이로 폐지를 줍는 김모(87.북구 칠성동) 할아버지다. 

김 할아버지는 20년째 폐지와 고철을 주워 고물상에 팔고 있다. 그는 북구 칠성동에 살고 있다. 매일 칠성동 동네에서 시작해 중구 동인동까지 건너와 폐지를 주워서 고물상에 판다.

이날도 할아버지는 알루미늄과 철로 된 캔을 찌그러뜨린 뒤 분류하고 있었다. 그는 "예전에는 알루미늄 캔이 값을 많이 쳐줬고, 10개 중 1~2개밖에 나오지 않아 너나 할 것 없이 주워가려 했다"고 말했다.
 
김모 할아버지가 폐지를 주워 리어카에 실은 뒤 자전거를 끌고 있다.(2024.1.5) / 사진. 평화뉴스 정준민 기자
김모 할아버지가 폐지를 주워 리어카에 실은 뒤 자전거를 끌고 있다.(2024.1.5) / 사진. 평화뉴스 정준민 기자

오전엔 '노인 일자리 사업', 오후엔 '폐지'...투잡 전체 월수입 59만원 

할아버지는 '투잡러(일자리를 두개 가진 사람을 부르는 말)'다. 대구 중구청 '노인 일자리 사업'에 참여해 오전 9시부터 오후 12시까지 일한다. 그리고 오후에는 폐지를 줍기 위해 거리로 나선다.

이렇게 해서 버는 수입은 적다. 일자리 사업으로 월 29만원, 노령연금 25만원을 받는다. 그리고 폐지 수집으로 월 5만원 정도를 번다. 60만원 안되는 돈으로 한달을 버텨야 한다. 그는 "몸을 안 움직이면 힘들다"면서 "고생이라고 생각하면 이 일도 못 한다"고 말했다.

고철 캔을 다 분류한 뒤 봉투에 넣고 폐지를 리어카로 옮겼다. 폐지는 1kg당 60원, 고철은 kg당 700원 정도다. 하지만 "이렇게 모아도 하루 4,000원 정도밖에 못 번다"면서 "지금은 폐지, 플라스틱을 포함해 고철도 가격이 많이 떨어졌다. 다른 것은 다 오르는데 고물 값만 떨어진다"고 한탄했다. 리어카에 모든 짐을 실은 뒤 "다른 곳에서 폐지가 있다고 연락이 와서 가 봐야 한다"며 발걸음을 재촉했다.
 
폐지를 가득 실은 리어카(2024.1.5) / 사진. 평화뉴스 정준민 기자
폐지를 가득 실은 리어카(2024.1.5) / 사진. 평화뉴스 정준민 기자

새벽 5시부터 8시간째, 100kg 팔아 일당 6,000원..."두부 한모, 담뱃값이라도" 

오후 1시쯤 동인동 한 빌라 앞에 사람 키만 한 높이의 폐지가 리어카에 실렸다.

■팔순을 앞둔 김모(중구 동인동) 할아버지다. 

새벽 5시부터 나와 8시간 동안 동인동, 삼덕동 일대에 있는 폐지를 주우러 다닌 김모(78.중구 동인동) 할아버지는 "이제는 힘에 부쳐 11시 반만 되면 폐지수집을 안 했는데, 오늘은 조금 늦어졌다"며 "저녁에도 폐지나 캔을 버리는 사람이 있어 돌아야 한다"고 말했다.

곧 팔순을 맞는 할아버지는 공장 일부터 시작해 농산물 장사, 구청 주차관리원까지 안 해본 일이 없다. 하루에 폐지 100kg을 주워 고물상에 전달하면 6,000원을 받는다. 국민연금, 노령연금 등을 받지만 매달 나가는 병원비, 생활비가 부담스럽다. 그는 "70세 넘으면 사람들이 안 써준다"며 "두부 한모 사고, 담뱃값이라도 벌려면 할 수 없이 이 일이라도 해야 한다"고 설명했다.
 
이기일 보건복지부 제1차관이 폐지수집 노인 실태조사 결과를 발표하고 있다. (2023.12.28) / 사진. 보건복지부
이기일 보건복지부 제1차관이 폐지수집 노인 실태조사 결과를 발표하고 있다. (2023.12.28) / 사진. 보건복지부

'절대 빈곤'...폐지 노인 4만여명 시급 1,226원, 법정 최저임금의 9분의 1수준 

두명의 대구지역 폐지 노인의 '절대 빈곤' 모습은 다른 지역에서도 비슷한 것으로 나타났다.

보건복지부(장관 조규홍)가 지난달 발표한 '2023년 폐지수집 노인 실태조사' 결과를 보면, 전국 폐지 수집 노인 추산 수치는 4만2,000명이다. 평균 연령은 76세고 절반 인상인 57.8%가 75세 이상이다. 2인 가구 56.7%, 1인 가구 36.4%다. 혼자사는 노인보다 두명이 사는 경우가 더 많았다.

조사 방식은 전국 고물상 4,282곳 중 105곳을 표본 추출한 뒤 이곳에 폐지를 납품하는 노인의 수를 확인해 전국 단위 규모를 추산했다. 폐지수집 노인 1,035명에 대한 대면조사도 진행했다.
 
"파지 60원, 스텐 1000원"...고물상에 붙은 가격표(2024.1.5) / 사진. 평화뉴스 정준민 기자
"파지 60원, 스텐 1000원"...고물상에 붙은 가격표(2024.1.5) / 사진. 평화뉴스 정준민 기자

첫 실태조사가 보여주는 폐지 노인들의 노동 현실은 열악했다. 노동 시간 하루 평균 5.4시간, 주 6일 팔아 월 15만9,000원을 번다. 하루 폐지 수집 평균 수입은 6,225원이다. 시급으로 환산하면 시간당 1,226원으로 지난해 법정 최저임금(9,620원)의 9분의 1 수준이다. 주된 소득원은 기초연금으로 절반가량을 차지했다. 폐지수집 활동 15%, 공적연금 13.9%, 기초생활보장 급여 9.6% 순이다.

폐지를 줍는 이유는 생계비 53.8%, 용돈 29.3% 등 경제적 어려움 탓이 컸다. 이들의 월평균 개인소득은 74만2,000원, 가구 소득은 113만5,000원으로 전체 노인의 월평균 개인소득 129만8,000원(2020년 노인실태조사)의 57%에 불과했다.

민.관 49곳 '자원재활용' 수입 일부 지원...정부도 '노인 일자리' 연계

막대한 노동량에 견줘 너무 적은 수입 탓에 지자체들과 민간단체 등 49곳이 노인들의 수입을 일부 지원해준다. '노인 일자리 사업' 내 폐지수집 자원 재활용사업단을 운영해 실제 평균 수입의 2배가 넘는 월 38만원을 지원하는 곳도 있다. 자원 재순환 차원에서 '공익'에 기여한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한국노인인력개발원의 2022년 조사에 따르면, 전국 지자체 가운데 서울 서대문구, 마포구, 영등포구, 송파구, 경기 양주시, 충남 천안시, 공주시, 청양군 등 8곳이 공공형으로 폐지수집 활동 관련 사업을 운영한다. 민간에서도 서울 11곳, 부산·인천·강원 1곳, 광주 4곳, 경기 6곳, 충북 3곳, 충남 5곳, 경북 9곳 모두 41곳이 비슷한 사업을 펼치고 있다.

정부도 올해부터 지원을 계획하고 있다. 앞서 복지부는 올해 1월부터 지자체와 전수조사를 실시해 ▲노인 일자리 사업 연계 ▲노인맞춤돌봄서비스 연계 등을 시행할 계획이라고 발표했다.

대구는? 지자체.민관 0곳..."생계 곤란 어르신 지원 제외하고 별도 사업 없어"

반면 대구지역에는 0곳이다. 대구시, 9개 구.군, 민간단체 등 민.관 어떤 곳에서도 비슷한 사업을 하는 곳이 없다. 유사한 계획을 세우고 있는 지자체도 없었다.  

성현숙 대구시 어르신복지과장은 "생계가 곤란한 어르신을 대상으로 하는 경제적 지원은 기초연금, 노인 일자리 사업 등을 제외하고 별도로 시행 중인 것은 없다"면서 "지난해 말 복지부에서 폐지수집 노인 전수조사를 발표한 상황이라 조사 방식 등에 대해 이야기하기는 이른 것 같다"고 밝혔다. 이어 "복지부 사업 방향과 참여자 욕구 등을 고려해 관련 사업 시행을 검토하겠다"고 답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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