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인은 '사회의 짐'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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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윤상 칼럼] 아무도 짐이 되지 않는 좋은 세상을

10월 2일은 '노인의 날'이다. 지난 4월 통계청 인구 추계에 따르면 작년 우리나라 고령(만 65세 이상) 인구는 약 900만 명(17.5%)이다. 세계에서 고령 인구 비율이 가장 높은 유럽의 평균치(19.6%)보다는 낮지만, 50년 후에는 상황이 달라진다. 2070년에는 유럽의 고령 인구 비율은 30.8%가 되지만, 한국은 훨씬 높은 46.4%로 인구 2명 중 1명꼴이 될 전망이다.

노인은 '비생산인구'?

경제 통계에서는 15세~64세를 생산가능연령으로 보고 나머지 국민을 ‘비생산인구’라고 한다. 일정 연령이 지나면 대체로 노동 생산성이 낮아지므로, 고령화 추세는 사회 전체의 경제 활력을 떨어트릴 수 있다. 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노인 세대가 다른 세대의 짐이 된다는 결론으로 바로 이어지는 것은 아니다.

우선, ‘비생산인구’라는 표현에 대해 생각해보자. 직장에 다니는 대다수 근로자는 일정 나이가 되면 정년퇴직한다. 그러나 수명이 늘어나고 노인층의 건강이 종전보다 더 좋아진 상황에서는 정년을 연장하는 게 자연스럽다. 일자리 관련 세대 갈등이 있다면 승진・임금・근무 방식을 적절히 조정하면 된다. 일할 수 있는 건강한 사람을 퇴직시켜 놓고는 ‘비생산인구’라고 하는 것은 이상하다.

또 ‘생산’이라는 단어에 대해서도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경제학의 ‘생산’이라는 용어는 국민총생산(GNP) 또는 국내총생산(GDP)에 계상되는 활동을 의미하며, 국가의 농업・공업・서비스업 등 생산 결과를 시장가격으로 합계한 금액으로 표시한다. 그러므로 사회에 보탬이 되는 활동도 시장가격으로 평가되지 않으면 통계적으로 ‘생산’에서 제외된다.

그러나 사회에 보탬이 되는 모든 활동을 ‘생산’이라고 정의한다면 사정이 달라진다. 대표적인 예가 가사 노동이다. 가사 도우미가 보수를 받고 남의 집 가사를 도와주면 경제적 생산이지만, 자기 집에서 같은 일을 하면 그렇지 않다. 이런 노동을 ‘사회적 생산’이라고 부르기로 하자. 경제학에서는 ‘무급 노동’이라고도 한다.

퇴직한 노인도 '사회적 생산'은 한다

사회적 생산의 대가는 시장에서가 아니라 정책으로 결정된다. 최근의 예를 들어보자. 서울시는 조부모 등 4촌 이내 가까운 친인척에게 아이를 맡기는 가정에 월 30만 원(2명 45만 원, 3명 60만 원)의 돌봄 수당을 지원하기로 했다. 대상은 36개월 이하 영아를 둔 기준중위소득 150% 이하 가구로, 지원 기간은 최대 12개월이다. 내년에 1만 6천 명을 시작으로 2026년까지 4만 9천 명을 지원할 계획이라고 한다. 이 정책의 목적은 자녀 출산을 장려하는 데 있겠지만 육아가 사회에 보탬이 되는 ‘사회적 생산’이라는 인식이 그 바탕에 있음은 분명하다.
 
사진. 평화뉴스
사진. 평화뉴스

현재 노인 복지 차원에서 운영하는 공공 일자리는 거리・공원 청소, 어린이 등하교 보조 같은 간단한 일이다. 그러나 사회적 생산에 대한 국민의 인식이 높아지면 위의 서울시 사례처럼 범위가 넓어질 것이고, 그에 따라 노인 부양을 위한 젊은 세대의 부담이 줄어들게 된다.

여기에서 조금만 인식을 넓히면, 경제적・사회적 생산을 하지 않는 노인조차도 다른 계층에 부담을 주지 않는 제도를 설계할 수 있다. 국민 누구나 동등한 지분을 가지는 ‘국민 공동자산’이 있기 때문이다. 국민 공동자산을 재원으로 복지제도를 만들면 ‘자기 돈으로 자기 삶을 보장’하므로, 노인이든 아니든, 생산을 하든 하지 않든, 다른 사람의 짐이 되지 않는다. 우리 현실에서는 기이하게 들릴 수도 있지만, 알고 보면 상식에 바탕을 둔 당연한 제도이며, 오히려 국민의 ‘공동’자산을 일부 국민이 독차지하는 현재의 제도가 이상하게 느껴질 것이다. (자세한 내용은 필자의 다른 칼럼을 참고해 주시기 바랍니다. [참고 칼럼] "생계비 사회보장"(<평화뉴스> 2020년 5월 4일 게재)

노인 세대의 '꼰대 의식'

그러나 경제 외의 측면도 중요하다. 최근에 관심을 끈 사건이 있었다. 더불어민주당 혁신위원회의 김은경 위원장이 7월 30일에 열린 청년좌담회에서, 노인과 젊은이의 투표권에 차등을 두자는 말에도 일리가 있다고 언급하였다. 그러자 노인 폄훼 논란이 생겼고 이에 대해 사과하기 위해 8월 3일 대한노인회를 찾았다.

이 자리에서 대한노인회 김호일 회장은 “정신 차려.”라고 외치면서 김은경 위원장의 사진을 손으로 때렸다. 노인회에서 이의를 제기할 만하지만, 방식이 부적절했다. 경로효친 의식이 강했던 과거에는 연장자가 아랫사람을 좀 심하게 나무라도 별문제가 안 되었다. 그러나 이제는 세상이 달라졌다. 남녀평등의 속도에 못지않게 노소평등이 진행 중이다.

노인 세대는 우리나라가 경제발전과 민주화 양 면에서 선진국 대열에 들어선 것은 노인 세대의 덕택이라고 자만하기도 한다. 그러나 젊은 세대는 헬조선, 부동산 공화국, 입시 지옥, 환경 오염, 기후 위기 등 엄청난 문제를 젊은 세대에 물려준 책임을 노인 세대에 물을 것이다. 김호일 회장처럼 노인이 낡은 ‘꼰대 의식’에 머물러 있으면 사회의 짐이 된다.

'사회의 짐'에서 '사회의 힘'으로

지금까지 보았듯이, 제대로 된 사회제도에서는 노인이, 적어도 경제적으로는, ‘사회의 짐’이 되지 않는다. 또 노인이 자신을 내세우기보다 타인을 배려하고 사회에 보탬이 되려는 자세로 산다면 오히려 ‘사회의 힘’이 될 수 있다. 시 한 구절을 인용하면서 마무리하려고 한다. (경북대 김규원 명예교수의 시집 『다 같은 사람인 줄 알았어요』 중 “손자의 세상”에서.)

이미 나이 칠십 언저리에 들어선 우리,
아침마다 눈 뜰 수 있다고 감사할 일은 아니지.
그 뜬 눈으로 세상을 바르게 볼 수 있어야 고맙지.
좋은 세상 손자가 살 수 있게 해야 사람 도리지.



 
 
 





[김윤상 칼럼 132]
김윤상 / 자유업 학자, 경북대 명예교수. 평화뉴스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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