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밤새 주워도 몇 푼...할머니의 고단한 새벽
<새벽을 여는 사람들⑦> 폐지 줍는 노인 / "자식 손 벌리기 힘들고...병원비 더 들어"
2011년 03월 02일 (수) 18:53:38 평화뉴스 박광일 기자 pnnews@pn.or.kr

 

"총각, 젊었을 때 열심히 일해서 돈 많이 벌어놔. 늙어서 돈 없으면 힘들고 서러워" 

2일 아침 중구 동인동 주택가 골목에서 만난 한 70대 할머니는 이같이 말하며 폐지가 담긴 비닐봉투를 손수레에 옮겨 실었다. 이른 새벽부터 폐지와 재활용품을 줍는 노인들을 찾았다.

새벽 5시 30분 쯤 도착한 대구 동성로. 한 편의점에서 종이상자를 한 가득 길가에 내놓자 정모(67) 할머니가 잽싸게 주워 리어카에 실었다. 정 할머니는 "횡재했다"며 입가에 웃음을 지었다. 두툼한 점퍼와 수건, 토시와 장갑으로 온몸을 꽁꽁 싸맨 정 할머니는 어젯밤 11시부터 동성로 일대를 돌며 리어카 네 대 분량의 재활용품을 모았다. 리어카 두 대에는 폐지가 실려 있었고, 나머지 두 대에는 음료수 캔과 각종 양념 캔을 비롯한 고철과 플라스틱이 담겨 있었다.

   
▲ 3월 2일 새벽 정모(67) 할머니가 동성로에서 모은 폐지와 깡통을 리어카 안에서 분류하고 있다. 이날 할머니가 밤새 모은 재활용품은 리어카 네 대 분량이지만 2만원어치 밖에 되지 않는다 / 사진. 평화뉴스 박광일 기자

밤새도록 리어카 네 대 분량, 고작 2만원

정 할머니는 리어카 네 대를 한 장소에 세워둔 채 또 다른 한 대의 리어카를 끌고 다니며 재활용품을 모은다. 정 할머니는 폐지와 캔을 분류해 다른 리어카에 옮겨 담으며 "양이 많아 보여도 막상 고물상에 팔면 몇 푼 안 된다"고 말했다. 고물상마다 책정하는 가격은 다르지만 보통 1Kg당 폐지와 플라스틱은 130원, 양철 캔은 900원, 고철 캔은 200원가량 받는다. 가득 채운 리어카 한 대의 무게는 보통 10~30Kg정도. 종이는 접어서 차곡차곡 쌓을 수 있어 무게가 꽤 되지만, 부피가 큰 반면 무게는 가벼운 양철과 플라스틱 종류는 리어카 한 가득 채워도 10kg가량 밖에 되지 않는다.

이렇게 모은 재활용품을 팔아 정 할머니가 손에 쥐는 돈은 보통 하루 2만원가량이다. 정 할머니는 "어제가 휴일이라서 그런지 가게마다 재활용품을 많이 내놨다"며 "평일에는 이만큼 모으기가 힘들다"고 말했다. 

   
▲ 동성로에서 밤 새 모은 폐지가 가득 담긴 정 할머니의 리어카 / 사진. 평화뉴스 박광일 기자

경기가 어려워진 탓에 폐지를 줍는 경쟁자도 많아졌다.
7년째 재활용품을 모아 생계를 꾸려왔다는 정 할머니는 "예전에 비해 재활용품 줍는 사람이 많아진데다, 요즘 40~50대쯤 되는 젊은 사람들이 트럭을 이용해 싹쓸이 해간다"며 "그만큼 일찍 나와야 조금이라도 더 주울 수 있다"고 말했다. 할머니는 "저 멀리 폐지가 보여 힘들게 리어카를 끌고 가면 어디선가 트럭이 금세 나타나 잽싸게 싣고 간다"며 "젊은 사람들을 도저히 따라 갈 수가 없다"고 어려움을 토로했다.

정 할머니는 "매일 새벽 무거운 리어카를 끌고 다니느라 힘들지만, 나이 들어 할 수 있는 일이 이것 밖에 없다"고 말했다. 할머니는 "공공근로도 한번 해봤지만 일이 힘든데다 몸이 아파도 제대로 쉴 수가 없어 더 이상 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매일 밤낮이 바뀌는 바람에 적적함을 달래줄 친구도 없다. 할머니는 "먹고 살기도 힘들고 낮에는 잠자기도 바쁜데 친구가 무슨 소용이냐"며 "필요 없다"고 잘라 말했다.

돈 벌려다 병원비 더 들기도

일을 하다가 다치는 경우도 있다.
아침 6시 30분쯤 대구역 뒤편 골목에서 만난 김모(73) 할머니는 오른팔을 옆구리에 붙인 채 왼 손으로 힘겹게 폐지를 주워 손수레에 싣고 있었다. 김 할머니는 "지난 달 눈길에 미끄러져 팔을 다쳤다"며 "엊그제 깁스를 풀고 한 달 만에 처음 나왔다"고 말했다. 할머니는 "눈 내린 다음 날 폐지를 주워 고물상에 팔고 오는 길에 미끄러졌다"며 "몇 푼 안 되는 돈 벌려다 되레 병원비만 더 나왔다"고 한숨을 쉬었다.

   
▲ 아침 6시 30분쯤 대구역 뒤편에서 폐지가 실린 손수레를 끌고가는 김 할머니(왼쪽)와 아침 7시 30분쯤 동인동 주택가에서 비닐봉투에 담긴 폐지를 손수레에 싣고 있는 한 70대 할머니(오른쪽) / 사진. 평화뉴스 박광일 기자

혼자 사는데다 자식 형편까지 어려워

폐지와 재활용품을 모으는 노인들은 가족과 떨어져 혼자 사는 경우가 많았다. 게다가 자녀들의 경제 사정도 대부분 좋지 않다. 대구역 뒤편 주택에서 혼자 산다는 김 할머니는 "요즘 자식들과 같이 사는 집은 거의 없다"며 "팔을 다치는 바람에 혼자 밥을 해먹을 수가 없어 근처에 있는 친동생 집에 얹혀산다"고 말했다. 또 "자식들 형편이 좋으면 이렇게 살겠느냐"며 "돈이 없어도 손 벌릴 수가 없어 폐지를 줍는다"고 말했다.

아침 7시 30분쯤 동인동 주택가에서 만난 한 70대 할머니도 "자식들은 멀리 있고, 남편이 세상을 떠난 뒤 혼자 살고 있다"고 말했다. 이어 "젊었을 때 회사도 다니고 안 해 본 일이 없지만, 결국 낡은 아파트 한 채만 남았다"며 "용돈이라도 벌기 위해 아침마다 폐지를 모으러 나온다"고 말했다.

앞서 동성로에서 만난 정 할머니는 가족 이야기에 입을 닫았다. 기자가 가족에 대해 묻자 "말하기도 싫다"며 말을 잊지 못했다. 정 할머니는 동이 틀 무렵 "그래도 폐지 줍는 일이 하고 싶을 때 하고, 자고 싶을 때 자고, 먹고 싶을 때 먹을 수 있어 편하다"며 폐지가 가득 담긴 리어카를 끌고 인근 고물상으로 향했다.

   
▲ 새벽 6시쯤 정 할머니가 떠오르는 태양을 마주보며 리어카를 끌고 고물상으로 향하고 있다 / 사진. 평화뉴스 박광일 기자

해 뜨고 난 뒤 돌아오는 길, 동인동에서 폐지를 줍던 한 할머니의 말 한마디가 계속 머릿속에 되 뇌이며 가슴을 아리게 했다. "총각, 젊었을 때 열심히 일해서 돈 많이 벌어놔. 늙어서 돈 없으면 힘들고 서러우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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