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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기의 대학, 어디로 갈 것인가
[이재성 칼럼] "우상과 빈곤, 대학이 광장을 만나야 하는 이유"
2011년 03월 13일 (일) 17:18:33 평화뉴스 pnnews@pn.or.kr

최근 지식의 위기와 대학의 몰락을 말하는 사람들이 많다. 현대사회에서 대학이란 도대체 무엇인가? 이러한 질문은 대학의 역사를 떠나서는 쉽게 답변할 수 없다. 그렇다면 역사에서 드러나는 대학이란 무엇인가? 우리는 대학이 서구 중세의 유산이라는 것을 부정하지 않는다. 그 유산은 대학의 학제에서 수업의 방식과 학위 제도, 그리고 논문 제도에 고스란히 남아 있다. 하지만 이런 가시적인 유산보다도 더 중요한 것은 정신적 유산이다. 그것은 바로 대학이 진리(Veritas)를 추구한다는데 있다. 이때의 진리는 주어진 지혜의 당위성을 추구하는 사유의 과정을 전제한다.

대학의 진리추구와 이를 통한 지식창출은 세상 권력과의 거리를 요구한다. 대학의 자율과 자치는 그 거리를 유지하기 위해 필수적인 장치이다. 그래서 대학의 사명과 본질은 ‘세상과의 비판적인 거리’라는 조건하에서 가능하게 되는 것이다. 정신적 간격이라고도 할 수 있는 이 거리는 자본주의에 포획된 오늘날의 대학에서 찾아보기 힘들다. 현대의 대학은 자본주의 외부에서 이해될 수 없기 때문이다.

호화판 입학식과 '품질관리'

최근 서울의 한 대학이 2년째 수천만원을 들여 유명 가수 등을 초청하는 입학식 행사를 마련했다고 한다. 그러자 재학생들이 “학교 재정 낭비”라며 학교 쪽을 비판하는 사태가 벌어졌고, 학교 쪽에서는 큰돈을 들여 행사를 준비했지만 정작 입학식장에는 2000여명의 입학생 가운데 4분의 1 수준인 500여명과 학부모 500여명만이 참석하는 해프닝이 있었다.

이 대학의 총학생회는 입학식 일주일 전부터 새내기들을 대상으로 입학식 참가 거부운동을 벌였고, 입학식에 앞서 “재정이 부족하다고 올해 등록금을 2.8%나 올려놓고 수천만원짜리 호화 입학식을 여는 것은 비상식적인 일”이라며 “명분 없는 등록금 인상을 즉각 철회하라”는 기자회견을 열기도 했다. 매년 반복되는 사태이지만, 서울 지역에서는 이 대학뿐만 아니라 다른 많은 대학들도 호화 오리엔테이션을 개최했다는 비판을 받고 있다.

   
▲ <한겨레> 2011년 3월 1일자 9면(사회)

대학이 신입생을 위해 자율적으로 개최하는 행사까지 시비곡직을 따지느냐고 하면 할 말은 없다. 그렇지만 오늘날의 대학이 자본주의의 외부에서 이해될 수 없으며, 자본주의 사회에서 대학은 기업의 모습을 띠고 있고, 시장이라는 개념 속에서 정체성을 찾도록 요구받고 있다면 사정은 달라진다. 대학이 기업화되었다는 것은 끝없는 생산을 추구한다는 것뿐만 아니라 생산과정을 사기업의 방식으로 관리한다는 것이다. 말하자면 대학에서의 교육과 배움의 과정을 인격과 깨달음의 차원에서 이해하기 보다는 기술적 차원에서 질적으로 양적으로 철저하게 관리하겠다는 것 아닌가. 그렇다면 대학기업에서 교수는 생산관리직 종사자가, 학생은 교육의 소비자가 되는 것이다. 소비자들을 만족시키기 위해 교육의 내용은 품질관리의 대상이 된다. 호화판 입학식 역시 품질관리의 대상 이외에 아무것도 아니다. 대학의 주체는 더 이상 교수와 학생, 그리고 그 사이의 지적인 교류가 아니다.

대학교육이 품질관리, 즉 기술과 직업교육 중심으로 이루어져야 한다는 주장에 일리가 없는 것은 아니다. 교육을 통해 다양한 계층의 학생들에게 자본주의 시장체제 내에서의 경제활동 기회를 확산시키자는 의도가 그럴 듯해 보이기도 한다. 하지만 그런 의도적인 기술과 직업중심의 교육은 기술자와 전문인을 양성해 낼지언정 자신의 삶과 현재의 역사를 공동체의 기억과 과거의 지혜를 통해 성찰하고 비판하며 내일을 예측하는 지식을 만들어내는 데는 허약할 수밖에 없다. 성찰하고 분석하며 예측할 수 있는 지식인보다 기술적 전문인을 요구하는 사회는 비판보다는 체제 순응을 강조하게 되며, 거기서 민주주의는 저항 의식이 사라진 상태로서 가진 자들의 유희공간으로 고착화 되고 만다.

몰락해가는 인문학과 대학의 빈곤

대학 학문의 전문화가 이루어졌던 19세기에 이미 많은 철학자들은 대학에서 학문이 어떻게 기능화 되었는지를 비판하고 있다. 셸링은 대학이 산업연수원으로 전락하고 있다면서 지식의 전문화를 문제 삼았고, 쇼펜하우어는 대학에서 자유롭게 진리를 추구하는 철학은 불가능하다고 주장했으며, 니체도 대학과 철학은 함께 할 수 없다고 생각했다. 심지어 20세기 철학자 하이데거도 기술과 정보가 판을 치는 대학에서 생명력 있는 철학을 가르칠 수 없다고 한탄하지 않았던가.

바로 이 지점이 대학이 시장에서 인간으로 시선을 돌려야 하는 이유다. 인간으로 돌아온다는 말은 대학에서 몰락해가는 인문학을 통해 대학의 빈곤을 회복해야 한다는 말이다. 인문학은 인간에 대한 깊이 있는 이해를 목적으로 하고, 인간의 문제를 총체적으로 다루는 것을 지향한다. 더 정확히 말하면, 인문학은 인간이 짊어진 삶과 역사의 무게를 다루는 학문이다. 고통을 감내하고 불의에 저항하며 미래를 고민하는 인간의 모습은 결코 유전자 분석으로 환원되지 않는다. 역사의 종언을 주장하며 역사 이후를 아무리 강조하더라도 인간은 여전히 문제로 남는다.

이 시대 인간의 조건과 인간 문제의 철학적 의미를 추구하는 인문학 본연의 자세를 어떻게 실현해야 하고 또 그것이 대학에 어떤 영향을 미칠 수 있을지는 분명하지 않다. 그럼에도 대학의 사명이 있다면, 그것은 사유에 대한 무한한 신뢰, 사유의 필요성과 가능성에 대한 믿음을 확장하는 것이 될 것이다. 이것은 곧 인간에 대한 신뢰이다. 대학은 인간의 문제를 대학 정신의 핵심으로 받아들여야 한다. 대학은 지식과 과학의 추구만으로는 해결될 수 없는 인간의 현상을 인문학의 영원한 의심의 대상으로 인정해야 한다.

이 시대 대학의 우상...참다운 대학은 가능할까

대학은 이제 스스로 물어야 한다. 기업자본주의의 한 축으로 지식을 생산하고 판매하는 백화점으로 성장할 것인지 아니면 비판과 성찰의 공간으로, 지식을 통해 진리를 추구하고, 그 진리의 덕목으로 인간을 형성하는 사명을 수행할 것인지 고민해야 한다. 대학이 '자유한다'는 것은 시대와 비판적 거리를 유지한다는 것이다. 기업 정신이 인류의 숭고한 정신 유산인 냥 행세하는, 또 그렇게 믿기를 강요하는 시대에 대학은 그 정신의 역사와 한계를 담론화해야 한다.

대학의 지향점이 학문과 인간에 대한 이상과 비판 정신에서 벗어나 자본주의의 생산력 향상의 전초 기지로 변해 버린 이 시대에 화려한 건물의 건축을 성장과 발전이라고 생각하지 않는 대학, 주식이나 부동산 투자를 통한 자산증식을 대학의 일이 아니라고 말할 수 있는 대학, 학생들의 지적인 성장과 인격 형성을 가장 중요한 교육의 목표라고 생각하는 대학, 수치 통계와 여론 조작을 통해 대학을 평가하는 행태를 거부하는 대학, 사실과 가치만을 말하지 않고 진리를 추구하려는 의지가 강한 대학, 그리고 결코 가난을 두려워하지 않는 참다운 대학은 가능할까.

발터 벤야민은 자본주의를 우리가 지금까지 전혀 볼 수 없었던, 삶을 새롭게 하는 것이 아니라 파멸에 이르게 하는, 초유의 종교라고 하지 않았던가. 때문에 자본주의의 핵심 가치인 자본과 시장과 경쟁이라는 이 시대 대학의 우상으로부터 거리를 둘 때 바로 그 거리에서 이 시대 대학의 위기는 치유될 수 있을 것이다. 배움을 통해 삶을 돌아보고, 시대를 직시하고 정의를 외치는 사람들이 모여드는 곳, 그곳은 자본의 시장이 아닌 소크라테스의 ‘아고라’일 것이다. 대학이 광장을 만나야 하는 이유다.

   





[이재성 칼럼 26]
이재성 / 계명대 교양교육대학 교수. 평화뉴스 칼럼니스트. ssyi@kmu.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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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종화
(180.XXX.XXX.68)
2011-05-07 21:01:10
청년실업 300만명 시대 함께 해결해 보고자 하는 인재를 찾습니다.
컨설턴트로 연봉 3천만원에 도전할 인재를 찾고 있습니다.
청년들에게 희망을 줄 수 있도록 제게 기회를 한번만 주시기를 간청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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