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이비 민주주의자들의 권력 의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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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재성 칼럼] "정치로 교육을 통제하려는 어리석은 목민관들"


전통적으로 한국인의 파토스를 가장 직접적으로 건드리는 문제는 ‘대학 입시’와 ‘아파트 가격’이라는 우석훈의 말이 문득 떠오른다. 이처럼 한국인에게 교육 문제와 경제 문제는 피할 수 없는 아킬레스건이다. 한국인이라면 어느 누구도 이 두 문제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다. 모든 욕망, 권력 그리고 자본이 이것들 주변을 배회하고 있다. 하지만 둘 중의 하나를 선택하라면 필자는 교육 문제가 아닌가 싶다. 교육은 아파트 가격까지도 포획한다. 대치동의 사교육 권력은 그렇게 존재하는 것이다. 온 나라가 대학 입시에 올인해 있으니까.

최근 전국 시·도지사들의 ‘교육감 직선제 폐지’를 촉구하는 공동성명서 채택이 논란을 빚고 있는 것도 교육 문제와 무관하지 않다. 이 공동성명서는 지난 6일 오후 열린 ‘제23차 전국시도지사협의회’ 정기회의에서 나온 결과물이다. 이 자리에는 민주당 소속 송영길 인천시장, 이광재 강원도지사, 이시종 충청북도지사, 안희정 충청남도지사와 과거 민주당의 전신인 대통합민주신당에 몸담았던 김두관 경상남도지사도 있었단다. 물론 두 당 사이의 끈끈한 ‘한민 공조’까지 과시하면서. 참으로 어처구니없는 일을 벌인 것이다.

지난 8일로 취임 100일을 맞는 전국의 시·도교육감들로서는 꽤나 당혹스러운 사태가 아닐 수 없다. 입시위주의 귀족 학교 문제만이 아니라 당장 친환경 무상급식 실시, 학생인권조례 제정, 혁신학교 설치와 같은 지역 교육의 현안을 함께 고민하고 협력해야 할 여야 시·도지사들이 ‘교육감 직선제 폐지’를 주장한다는 것은 ‘교육 자치’를 말살하겠다는 것이 아니라면 무엇이란 말인가.

교육 자치는 교육의 자주성과 전문성, 정치적 중립성 보장 등을 밝힌 헌법 31조 4항에 근거한다. 1991년 제정된 ‘지방교육자치에 관한 법률’은 그 목적을 “국가 및 지방자치단체는 교육의 자주성 및 전문성과 지방교육의 특수성을 살리기 위하여”라고 하고 있다. 교육기본법 5조도 “국가 및 지방자치단체는 교육의 자주성 및 전문성을 보장하여야” 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헌법과 법률은 교육 자치를 교육의 자주성과 전문성을 지키는 것으로 파악하고, 그것을 보장할 책임을 국가와 지방자치단체에 있음을 명시하고 있다. 또한 교육의 자주성과 전문성에는 정치권력으로부터 교육의 자유를 지키는 것과 자율성을 고수하는 일이 포함된다. 
 
곽노현 서울시 교육감의 반발은 당연하다. 그는 8일 MBC 라디오 손석희의 ‘시선집중’과 전화인터뷰에서 “교육감 선거를 폐지하는 건 국민의 선택권을 빼앗아갈 뿐이다. 불협화음이나 갈등은 두려워할 것이 아니라 극복할 대상”이라고 단호하게 못 박았다.

교육감 직선제는 제한된 유권자로 인해 비리와 잡음이 끊이지 않는 간선의 폐해를 바로잡기 위해 노무현 정부 시절인 2006년에 도입됐던 것이다. 이것은 교육 수요자인 학부모들이 교육정책을 입안하는 교육 책임자를 직접 뽑자는 것으로 교육 자치를 통해 민주주의를 학습하는 중요한 제도이다. 그동안 교육감 선거에서 이러저러한 불협화음이나 갈등이 없었던 것도 아니다. 그렇다고 교육감 직선제 폐지를 주장하며 민주주의 기본인 ‘교육 자치’를 부정하는 것은 민주주의를 포기하는 것이다. 이건 마치 구더기 무서워 장 못 담그는 격이다.

기본이 흔들리면 모든 것이 와해되는 것은 불문가지다. 시·도지사들의 교육 자치에 대한 근본적인 인식 제고가 필요한 시점이다. 한때 민주주의를 외쳤던 그들의 저 민주주의에 대한 미성숙한 태도는 그 삶이 사이비였기 때문일지도 모르겠다. 사이비 민주주의자들이 민주주의를 말해선 안 되는 이유다. 지금 당장 그들에게 필요한 것은 민주주의 기본인 교육 자치에 대한 토론이다. 만일 그들이 토론이 ‘밥 먹여 주느냐’고 성과와 효율성을 앞세운다면 그들은 이미 민주주의를 영혼에서 지운 자들이다.

시·도지사 협의회는 공동성명서에서 “현재 교육 자치는 교육자 자치로 교육 수요자의 요구를 반영하지 못하고 있다”며 “진정한 교육 자치를 위해서 교육감 직선제는 폐지하고 지방교육청을 지방정부에 통합”해서 시·도교육감을 시·도의회의 동의를 받아, 시·도지사가 임명하는 임명제를 주장한다. 저들의 본심이 무엇인지 정확하게 확인할 수 있다. 그렇다. 저들은 교육을 정치를 통해 통제하겠다는 권력의 의지를 드러낸 것이다. 한마디로 민주주의를 핑계 삼은 권력에의 강력한 의지였던 것이다.

참으로 딱하고 어리석은 목민관들아, 지금이라도 교육감 직선제 폐지 주장을 당장 거두고 석고대죄하는 마음으로 민주주의의 기본학습장인 교육 자치에 대한 많은 토론을 시작해라. 헌법적 가치인 교육의 자주성과 전문성을 훼손하는 정치는 민주주의를 파괴하는 행위이다. 기본이 안 된 성과와 효율성은 언제든지 무너진다. 제발 정치 좀 제대로 할 수 없겠니?





[이재성 칼럼 22]
이재성 / 평화뉴스 칼럼니스트. 계명대 교양교육대학 교수.
대구사회연구소 연구실장 ssyi@kmu.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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