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철수가 없었다면…
‘더도 덜도 말고 한가위만 같아라’고 했던 넉넉함의 대명사 추석. 하지만 물가고, 가계 빚, 등록금 빚 등 MB 실정으로 어둡기만 한 가운데 추석을 맞아야 했던 서민들 가정에 ‘안철수’가 없었다면? 독자․시청자들에게 ‘추석 이야기 거리’를 팔아 대목을 봐야 하는 언론사에 ‘안철수’가 없었다면?
안철수는 추석을 맞은 가정마다 희망을 꿈꾸게 했고, ‘안철수’를 팔 수 있었던 언론사는 특수를 누렸다. 그러나 언론사의 ‘안철수’ 팔기를 꼼꼼히 들여다보면 상당수 언론사들은 그들을 위해 ‘재주를 피워준’ 곰쯤으로 취급했고, 폄하했고, 경계의 대상으로 띄워 지역주의의 담을 더 높이 쌓는 계기로 삼았다. ‘안철수’가 던진 희망의 메시지를 보며 한국의 미래를 계획하려는 추석 민심의 열망을 차단하려 했다.
9월 초 서울 시장 출마 의사를 밝혔고 그 과정에서 같은 뜻을 가진 박원순 희망제작소 상임이사와 단일화 논의를 통해 박 상임이사에게 양보, 불출마를 선언(9월 6일)함으로써 안철수 서울대 융합대학원장은 전 국민의 관심을 한층 더 모았다. 감동을 준 것이다. 나눔과 책임을 다하는 안철수의 ‘대도(大道)’ 인생이 특히 국민 위에 군림해온 정계의 ‘꼼수 꾼’들과는 너무나 대조적이었기 때문이다. 언론은 이 점을 주목했다. 언론은 이를 ‘여론조사’로 계량하려 했지만 문제점도 동시에, 그리고 많이 드러냈다.
잇딴 여론조사, 무엇을 노렸나?
여기서 정작 관심을 기울여야 할 대목은 주요 언론매체들이 잇따라 실시, 발표한 ‘여론조사 결과보도’의 의도와 배경이다. 무엇을 노리고 있는가를 살펴볼 필요가 있다. 언론사가 여론조사를 왜 실시했고, 어떻게 포장해 팔고 있는가를 살펴보면 그 윤곽이 떠오른다.
무엇보다 안철수 원장이 일관되게 던져온 메시지를 언론은 일회용으로 만들어 희석시켰다. 안철수의 메시지는 ‘당연히 그래야하고 그래서 그 길로 가야하고 그 때 우리는 좀 더 행복해질 수 있다’는 희망의 메시지를 던짐으로써 할 말이 있어도 말할 수 없는 힘의 구도 속에 갇힌 수많은 대중들에게 꿈을 꿀 수 있게 했다. 안철수의 메시지는 안철수와 대중이 MB가 외통수를 치는 이 시점에서 조금 느리지만 MB와는 다른 방향으로 미래를 향해 나아가는 행진이었다.
언론사, ‘여론조사’에서 ‘감동’ 빼고 ‘대결’ 심어
그러나 언론사들은 안철수의 메시지에 반짝 주목했을 뿐 이내 ‘판로’를 개척했다. ‘가상대결 여론조사’를 실시해 국민들에게 짜릿함을 안겨주자는 계산이었다. 안철수의 위상을 진단해 우리 사회 발전의 동력으로 삼아야 한다는 국민적 여망을 언론사들은 ‘여론조사’로 포장했고, 그에 따라 안철수의 메시지 대신 여론조사에 나타난 숫자의 많고 적음에만 국민이 관심을 가지도록 메시지화 했다. 희망이 보이지 않는 가운데 추석을 맞은 대중들에게 ‘여론조사’는 흥미 있는 화제임에 틀림없었다. 그러나 온기와 감동을 제거한 여론조사 결과 보도는 추석 대중들에게 경쟁만 드러냈다. 대결의식을 심은 것이다. 그 점에서 기득권 언론에게 추석은 ‘언론 정치판’이었다.
부정적 이미지 덧칠하기…뒤틀린 속내 드러내
일부 언론사의 안철수 보도 실상은 더 황당했다. 기득권 주요 매체들은 안철수가 박원순 변호사와 단일화를 이루고 불출마를 선언한 직후부터 안철수를 ‘적’으로 주목하고 부정적 이미지를 뒤집어씌우기 시작했다.
‘회견장 미리 빌려놓고 ‘극적 단일화’ 연출?’(동아일보, 9월 7일, 2면), ‘안철수 ‘다른 꿈’ 꾸다’ ‘충정로 S오피스텔 13층 비밀회동 … 50분 만에 담판 끝’(중앙일보, 9월 7일 1, 3면) 보도는 안 그런 척 하면서 독자들에게 안철수-박원순을 음험한 뒷거래 ‘꾼’들이란 이미지로 덧칠하려 했다. 중앙일보는 심지어 한나라당 전략기획본부장의 말을 인용해 ‘새 정치에 대한 국민들의 열망을 안 원장이 보쌈해서 야당 2중대에 안겨다줬다’고 해 안철수에 대한 중앙일보의 심사가 어떤지를 드러냈다.
'박근혜 구하기' 총대
이들 기득권 매체들의 안철수 보도는 국민들의 안철수의 지지가 어느 편으로, 즉 한나라당 표에 미칠 영향에 말뚝을 박아버렸지 국민들이 왜 안철수에 열광하는지, 왜 안철수와 공감하는지에 대해서는 별로 배려하지 않았다.
'한나라 텃밭 PK지각변동… 안철수 42.5% 박근혜 37.7%’(동아일보 9월 8일 1, 3면) 보도는 ‘서울시장 보선-내년 대선 여론조사’로 문패를 붙여놓은 페이지에서 ‘대선가상대결’ ‘대선후보 선호도’ ‘서울시장 후보 선호도’란 그래픽으로 가상대결 여론조사를 지역별, 연령대별, 정당별로 미주알고주알 다뤘다. 한국일보도 같은 날 1, 3면에서 비슷한 내용을 그래픽을 동원해 현란하게 다뤘다. 전국을 6개 지역별로 나눠, 5개 연령대별로 나눠 그래픽으로 조사결과를 부각했다.
중앙일보는 ‘안철수 블랙홀’에 ‘한나라 지지자 7%만 이동’했다고 강조했다(10일 1, 2, 3면). '안철수 태풍‘이 몰아치는데 한나라당은 뭘 하고 있느냐는 독려, 안철수 뭉개기를 메시지로 강조했다. ’安 때문에…속도내는 朴…판이 달라졌다’ ‘말 아끼던 박근혜 “현장 많이 가겠다”’로 박근혜 띄우기를 노골적으로 강조함으로써 올 해 추석을 ‘정치추석’으로 규정한 조선일보는 박근혜 구하기에 총대를 메었음을 보여줬다(10일 1, 3면). 동아일보 역시 ‘신발끈 다시 매는 박근혜’(9일 3면)를 강조했다. 이런 보도의 속성을 잘 알고 있는 기득권 매체들은 국민의 가슴에서 ‘감동’을 제거하고 ‘대결’을 심은 것이다.
MBC, 여론조사보도 맹점 지적
기득권 매체들의 안철수 보도의 또 하나의 특징은 독자들을 대상으로 추석여론을 좌지우지하는 ‘추석 대목’을 보면서도 ‘가상대결’ 여론조사 설계도를 제대로 제시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그 결과 여론조사가 과연 대표성이 있는지, 쏠림 현상은 없는지 독자들이 알지 못하게 했다. 여론조사보도의 설계상 이런 식의 여론조사보도가 가지는 맹점은 여론조사 결과를 보도한 어느 신문도 다루지 않았다(타 기관 조사 결과를 다룬 한겨레, 경향 제외).
그런 면에서 보면 MBC의 ‘박근혜-안철수 경합’(9일, 뉴스데스크) 보도는 ‘여론조사’라는 이름으로 각 신문․방송이 다룬 양자대결, 다자대결 구도에 나타난 선호도 결과가 사실은 보수적인 경향을 나타내는 ‘집 전화 응답’을 다룬 것임을 밝히고, 누구나 이용하는 휴대전화를 이용한 MBC의 여론조사결과에 대표성 있음을 강조했다. MBC의 다음 보도는 여타 신문․방송이 놓치거나 감춘 사실-여론 조사의 기술적 잣대-을 간명하게 밝힘으로써 난무한 ‘여론조사’ 보도의 문제점을 가늠하게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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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고로 안철수 현상을 MBC, SBS가 주요 뉴스로 관심있게 보도한 것과는 달리 KBS는 정치판 스케치 정도로 다뤘을 뿐 본격 보도는 외면했다. 왜 그랬을까?
영남․매일, 총선공천 '물고 물리는 이야기'만
그러면 대구의 신문보도 경향은 어떤가.
안철수 원장의 ‘콘서트’가 부각되던 9월 초순 ‘‘안철수 출마설’…호재? 악재? 與 술렁’ 보도로 보도의 말뚝을 이미 한나라당 쪽에 박아버린 영남일보(3일 8면)는 추석 대목을 봐야 했던 10일에는 1, 2, 3면을 통틀어 ‘뉴리더’ 소개-내년 4.11총선 기상도 대구․경북-에 열을 올렸다. 그러면서도 제목은 ‘추석TK민심 ‘뉴리더’를 갈구하나’ ‘“대선 위해 살신성인” 친박계 의원 불출마 여부 주목’ ‘“한나라 표밭 장담 못해”…이상득 의원 공천도 핫 이슈’로 달았다. 내용도 ‘박근혜가 대구사람’이라거나 ‘친박을 중심으로 공천이 이뤄져선 안 된다는 주장이 있다’거나 ‘한나라당이 사실상 박근혜 당이 됐다’고 하는 따위였다.
총선 인물 소개 기사(영남일보의 판단이지만) 내용이나 그런 기사로 독자들의 추석 화제를 장악하려는 보도 태도는 한 마디로 진부하다. 총론도 없는 데 각론만 무성하다. 국민은 변화를 이루며 저만치 앞서 가고 있는데 영남일보는 ‘박근혜를 위한 희생양’ 타령(9일 1면, ‘安風, TK에 ‘세대교체’ 화두 던지다’)을 하며 우물 안에서 맴돈다.
‘세대교체’도 이 보도에 따르면 기득권 세력 간의 바통터치, 물고 물리는 이야기에 불과하다. 그래서 ‘선수(選數)나 나이를 보지 말자’고 한쪽에서는 반발한다. 영남일보의 보도 태도의 문제점은 ‘변해야 한다’면서 자신은 전혀 변하지 않는데 있다.
이런 점에서 영남일보의 ‘4.11총선 기상도’ 보도는 ‘뉴리더 갈구’는 말일 뿐 지역주의-소지역주의의 구조가 얼마나 공고한지 그 재생산 과정을 여실히 보여줬다.
매일신문의 ‘미리 보는 총선 대구 경북엔 어떤 인물 나올까’(10일 6면) 식의 ‘총선 김칫국 마시기’ 보도도 영남일보와 ‘도토리 키 재기’였다.
'세대교체' 화두…‘변화’ 열망 읽게 해
그런 가운데도 관찰력이 있는 독자라면 일련의 안철수 보도에서 시대흐름을 가늠할 수 있는, 작지만 알맹이 있는 보도도 적지 않았다. 신문마다, 방송마다, 그래픽마다 장식한 박근혜 얼굴에서 환한 모습은 볼 수 없었다. ‘병 걸리셨나요?’라고 했다는 그의 언행을 다룬 보도는 ‘궁정의 공주’ 박근혜의 속성을 바로 보게 했다. 무엇보다 ‘세대교체’, ‘대도’, ‘새 인물 찾는 민심’이 행간에서 강조됐다. 안철수가 그 중심에서 20대~40대 무당파와 함께 가고 있다는 것도. 이것은 정치허무주의에 대한 백신이라고 해도 좋을 것이다.
'안철수 희망'에 '기득권 지키기' 역풍
안철수가 어느 편에 설 것인가에 노심초사했던 언론, 그 언론이 국민에게 희망인지 절망인지를 국민들은 읽고 있다.
[평화뉴스 - 미디어 창 151]
여은경 / 대구경북민주언론시민협의회 사무처장. 전 대구일보 사회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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