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송종사자들의 분노 언론변화의 기폭제 돼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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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상태 칼럼] "언론, 대세에 떠밀려서라도 흙탕물 아닌 바른 윗물로 거듭나기를"


  군사정권 때는 술집에 앉아서도 정치얘기는 소곤소곤 귀엣말로 해야 했다. 특히 유신과 긴급조치의 서슬이 퍼렇던 시절에는 아예 귀엣말도 삼가야했다. 이런저런 험담을 늘어놓는 술꾼들을 잡으러 다니는 정보원들이 있다는 소문이 파다했다. 신문과 방송은 현역군인들에 의해 검열을 받아야했다. 계엄령 하에서는 비판적인 글은 한 줄도 기자 마음대로 쓸 수 없었다. 그러다가 언론 통폐합 같은 파격적인 조치가 뒤따랐고, 모든 언론은 숨죽이는 차원을 넘어, 누가 더 잘하나하고 앞다퉈가며 용비어천가를 읊어대는 퇴행의 길을 걸었다.

 그런 악몽이 이명박 정권 초창기에 되살아나는 듯했다. 군사정권이 아닌데도 함부로 말을 하고 다닐 수 없었고, 막무가내 식 여론장악정책에 언론종사자들은 또 한 번 무력감에 빠지곤 했다. 일반 직장에서는 비판적 시각을 가진 사원들을 색출해 불이익을 주니, 입조심해야 한다는 이야기도 돌았다. 그러나 세월이 약이란 말은 역시 진리인가보다. 몇 년 만에 또 한 번의 깨달음을 주면서 세상은 원점으로 회귀하는 모습이다.

 레임덕이라는 말이 실감나는 요즘이다. 서울에서는 MBC ․ KBS ․ YTN 노조 공동파업 선포식이 열리고, 낙하산 타고 내려와 편파방송을 주도해온 아바타사장들이 인과응보의 시련을 격고 있다. 메이저 방송사만 아니라, 여타 방송사 노조의 움직임도 심상찮다. 움츠러들었던 방송종사원들의 이심전심이 산불처럼 이산저산으로 번지는 형국이다. 이러다가 한국판 재스민 혁명이 언론계를 휩쓰는 것 아닌가 하는 이야기도 나온다. 종편이라는 미끼까지 던져가며 여론을 장악하려했던 권력은 이제 그 궤도를 수정하지 않으면 안 될 상황에 직면한 것 같다.

 이런 움직임에 대한 평가도 여러 가지다. 그동안 꼬리 흔들며 잘 먹고 잘 살다가 이제 와서 비겁하게 치고나오는 것 아니냐는 비난이 없지 않다. 전깃줄 위의 참새떼에 비유하는 시사만화도 보인다. 먼저 전깃줄에 앉은 참새가 무사한 걸 보고 주변의 다른 참새들도 전깃줄 위로 날아와 앉는 것처럼, 한쪽에서 밝힌 횃불이 별 탈 없어 보이니 너도나도 들고 나온다는 비아냥이다.

 그러나 더 늦기 전에 이제서라도 분노를 표출하는 젊은이들에게 찬사를 보내는 여론이 지배적이다. 그리고 그 변화의 수레바퀴는 권력이 언론을 인위적으로 통제하려들지 못하도록 제도적인 개혁으로 연장되어야 한다는 주장이 설득력을 얻고 있다. 민주사회에서 관치언론이야말로 대표적인 수치거리다. 사회주의 국가의 통제된 언론에 대해 정말 웃긴다고 비난해온 우리가 어떻게 잠깐이나마 정권의 나팔수 노릇을 부끄러워하지 않는 시대착오적 상황에 이르렀을까.

 아마도 그것은 빈부격차 못잖게 의식의 격차가 심한 우리사회의 양극화가 빚은 부산물일지 모른다. ‘조선 ×은 조져야 돼’하는 식의 엽전논리가 아직도 통하는 우리사회의 수준문제가 아닐까. 흡사 미국의 옛날 서부영화를 보면서 미국기병대가 그 땅의 주인이었던 인디언을 추적해 짓밟는 장면을 보고 박수갈채를 보냈던 것과 같은 가치관의 혼돈이 채 가시지 않은 탓도 있으리라.

 청와대의 입김이 통하는 기존 메이저방송사의 사정 못잖게 오랜 세월 언론권력을 누려온 전통신문들도 이제 전환시대를 실감해야 할 때를 맞을 것 같다. 요즘도 아파트 입구 같은데서 현금봉투 들고 판촉활동을 하는 판매지국장들의 모습은 신문의 위기를 실감케 한다. 종이신문시대가 기울어가자 전통신문들은 종편이라는 황금알 낳는 거위를 하나씩 선물 받았다. 그러나 그것은 이제 황금알거위가 못되는 애물단지가 될 운명에 처해있다. 인구수에 비해 너무 많은 종편이, 그것도 한꺼번에 태어났기 때문이다. 그 많은 종편채널들이 광고비수입으로 버텨나가는 일이 그리 쉬울리 없다. 광고주들의 짜증과 횡포가 날이 갈수록 더욱 심해질 수밖에 없을 것이다.

 앞으로 굴러가는 세월 억지로 되돌리려는 시도는 이번 정권으로 끝내야한다. 그렇게 되리라는 기대가 지나친 것이 아닐 듯한 조짐도 보이는 요즘이다. 그리고 자유시장 논리가 지배하는 세상에서는 언론사도 원래의 역할에 충실하기 위한 경쟁에서 이겨야 살아남을 수 있을 터이다. 조작하고 꼼수 부리는 언론이라면 더는 버티지 못할 것이다. 정치와 더불어 언론은 사회의 윗물이다. 올해의 역사적 정치이벤트들을 통해 정치가 새로워지고, 더불어 언론이 대세에 떠밀려서라도 흙탕물 아닌, 바른 윗물로 거듭나기를 바라는 마음 간절하다. 그것이 역사발전의 순리일 것이기 때문이다.






[김상태 칼럼] 20
김상태 / 언론인. 전 영남일보 사장. 평화뉴스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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