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윗물 아랫물, '공정사회'의 행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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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상태 칼럼] 재벌 오너의 부패 질책과 전 총리의 '국기모독 사건'을 보면서


 미국의 대학교수가 쓴『정의란 무엇인가』가 우리 서점가에서 공전의 스테디셀러로 자리매김하고 있다. 이에 반해, 우리 사회의 화두인 ‘공정사회’의 현주소는 행방이 묘연하다. 정의와 공정이 말로만 그친다면 그 책임은 윗물 탓일까, 아랫물 탓일까?

※ 김용철 변호사가 쓴 『삼성을 말한다』라는 책에는 삼성이 이런 저런 방법으로 탈법적인 일을 저지르고 있다는 이야기가 많이 나온다. 그러나 시중의 화제를 불러일으켰던 이 책은 매스컴에서 기사는 물론이고 광고로도 제대로 다뤄지지 않았다. 조정래의 인기소설『허수아비 춤』에는 우리나라 재벌들의 다양한 권력자관리 방식들이 그려진다. 광고라는 돈줄로 매스컴을 좌지우지 하는 재벌들의 행태가 시니컬하게 묘사되고 있다. 재벌의 허수아비가 된 엘리트 임원들의 얄궂은 작태도 독자들의 울분을 자아낸다. 이런 맥락에서 두 책은 상통한다.

 삼성그룹의 오너가 최근 기자들 앞에서 그룹 내의 부패에 대해 작심하고 공개 비판한 것에 대해 이러쿵저러쿵 말들이 많다. 내부적으로 처리하고 시정하면 될 일을 구태여 공개적으로 거론한데 대한 궁금증 때문이다. 오너가 지적한 부패란 산하 그룹의 임직원들이 협력업체로부터 접대와 향응을 받았다는 등의 내용이고, 이런 부패가 그룹 전체에 퍼져 있다는 것이 오너의 주장이다. 임직원들이 오너의 이 말 한마디에 벌벌 떨고 있다는 후속보도가 쏟아져 나오고 있다.

<경향신문> 2011년 6월 9일자 2면(종합)
<경향신문> 2011년 6월 9일자 2면(종합)

 오너의 이런 분노에 대해 세간의 의구심은 좀 다른 방향으로 흐른다. 대기업 오너들의 편법적인 재산상속이나 보신을 위한 권력층관리 같은 해묵은 비리들이 연상되기 때문이다. 자가당착(自家撞着)의 고사를 떠 올린다는 사람도 많다. 지난 일은 차치하고, 이제부터 윗물부터 한 점 부끄럼 없이 깨끗하겠노라는 선언적 의미라면 약간은 이해가 될 법도 하다. 하지만 아무리 제왕적 오너라 해도 조직전체를, 그것도 기자들 앞에서 부패집단으로 질타한 그 방식에 대해서는 고개를 갸우뚱하는 사람들이 많다.

※ 한명숙 전 총리가 우리나라 국기를 모독했다는 이유로 검찰에 고발됐다는 보도가 나왔다. 얼마 전 덕수궁 앞에서 열린 고 노무현 전 대통령의 추모행사 때 분향소 바닥에 깔린 대형태극기를 밟고 분향을 했다는 이유로, 보수단체들이 한 전 총리를 고발을 했다는 내용이다.

<한겨레> 2011년 6월 9일자 11면(사회)
<한겨레> 2011년 6월 9일자 11면(사회)

 전직 총리로서 국기를 훼손하거나 더럽힌다는 의도를 갖고 한 행위가 아님이 분명할 것 같은데, 그런 행위가 고발의 대상이 되고 또 할 일 많은 검찰의 수사거리가 될 수 있는 현실을 보면서 우리나라도 이제 소송천국이 되어가는 것 아닌가 하는 불길한 생각을 지울 수 없다. 청와대 참모들이나 국회의원들도 얼핏 하면 고소고발을 밥 먹듯 하다 보니, 그런 윗물의 본을 보고 걸핏하면 법에 호소하려는 습성이 온 나라에 퍼진가 보다.

 ‘소송왕국’이라는 오명을 지닌 미국에서는 법대로 하자는 풍조가 만연한 탓에 법의 남용이 큰 사회문제로 대두되고 있다. 몇 년 전에는 세탁소를 하는 우리 동포 한 사람이 고객이 맡긴 바지를 잃어버렸다고 해서 상상을 초월하는 엄청난 액수의 변상을 요구하는 소송을 당한 사건이 해외토픽으로 보도되기도 했다. 더 살기 좋은 곳을 찾아 조국을 등지고 미국으로 떠난 재미동포 가운데는 소송이 판을 치는 미국사회에 환멸을 느낀 나머지 한국으로 돌아가야겠다는 생각을 한다는 이야기도 들린다.

 그러나 이제 한국도 예외대열에 끼이지 않는다. 미국의 이런 나쁜 풍조조차 선진문물로 받아들이고 있는 듯한 우리 사회이고 보면, 암보험이나 사망보험 같은 온갖 종류의 보험처럼 곧 ‘소송보험’이라는 신종보험이 나오지 않을까도 싶다. 언제 소송을 당할지 모르는 세상에 살다보니, 그런 대비책에 대한 수요가 왜 없겠는가. ‘법대로’ 정신도 지나치면 공동체를 멍들게 한다.

 이 사건이 보여주는 또 다른 측면은 우리사회에 만연한 지나친 흑백논리다. 그것은 나와 정치색깔이 좀 다른 사람을 용납하지 못하는 옹고집이다. 자기만이 옳다는 도그마에서 벗어나야 한국이란 배가 순항할 수 있다는 사실은 백번을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는다. 우리사회에는 정치적 배타정신이 그만큼 철옹성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이제 새로운 스타일의 정치지도자를 자처하는 사람들은 먼저 ‘타도(打倒)’라거나 ‘쟁취(爭取)’와 같은 살벌한 용어부터 쓰지 않도록 자중해야 한다. 성숙한 민주사회에서 상대는 서로의 존재를 인정해주고, 선의로 경쟁하는 사이여야 할 것이기 때문이다.






[김상태 칼럼 15]
김상태 / 언론인. 전 영남일보 사장. 평화뉴스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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