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K도 강남TK도 더는 피할 수 없는 '물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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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상태 칼럼] "이 지긋지긋한 오랜 세월의 낙후성을 벗어나기 위하여"


대구의 일간지들이 근래에 TK라는 낡은 용어를 다시 애용하는 모습에서 대구 사람들의 둔감한 정서를 실감하게 된다. ‘대구경북’의 영자 이니셜에서 비롯된 TK라는 말이 타 지역 사람들에게는 엄청나게 부정적 이미지로 각인되어 있다는 사실을 한참 모르는 것 같아서 하는 소리다.

어느 지역신문은 동남권 신공항 백지화 사건 이후 ‘이참에 TK의 잠재력을 키우자’는 시리즈를 통해 대구경북 사람들의 폐쇄성과 지나친 보수성을 신랄히 비판했다. 대구는 마치 죽은 도시 같아 대구에서 사업을 하기 싫다는 외지인의 말을 인용하기도 했다. 그러면서도 수도권에 사는 출향인사들은 저들끼리 전화 몇 통화로 무소불통(無所不通)일 정도로 그들만의 성을 쌓고 있다고 꼬집었다. 다른 어느 신문은 ‘TK난민’이라는 말로 서울과 수도권에 뿌리 내린 지역 출신 유력인사들을 신랄히 비판했다. 서울에 비싼 집을 갖고 있고 그곳이 삶의 터전인데, 출신지역의 발전에 그들이 깊은 관심을 가질 수 없다는 이야기다. 대구경북 출신 국회의원 27명 가운데, 12명이 강남3구에 적어도 집 한 채씩은 갖고 있다는 통계를 제시하기도 했다.

<영남일보> 2011년 4월 22일자 3면(종합) / <매일신문> 4월 27일자 27면(오피니언)
<영남일보> 2011년 4월 22일자 3면(종합) / <매일신문> 4월 27일자 27면(오피니언)

그러니까 TK에는 두 가지 부류가 있는 모양이다. 하나는 폐쇄적이고 배타적인 대구경북의거주민들이고, 다른 하나의 부류는 서울과 수도권에 진출해 권력을 행사하면서 재력까지 움켜 쥔 강남TK다. 대구경북  거주민들의 경우와는 달리, 강남TK들은 일찍 경상도정권을 창출하고 유지하는데 앞장섰거나, 그들과 교분을 쌓아 정보에 한발 앞선 덕에 “우리가 남이가”를 외치며 오늘의 세력을 형성한 사람들 또는 그 직계들이다.

개구리 올챙이시절 모르듯 그들은 이미 고향을 잊은 지 오래일 뿐 아니라, 아직도 낙후한 대구경북에 살고 있는 지역민들을 마음속으로 오히려 업신여기는 사람들이다. 대통령이 꾸짖은 ‘분지적 사고에 젖어 있는’ 지역민들과는 차원이 다른 부류들이다. 사회지도층이면서 장노년층의 여론형성에 절대적 영향력을 행사해온 그들 강남TK들 가운데는 사회적 지탄의 대상이 되는 사람들이 적지 않다. 황석영의 소설 『강남몽』이 그것을 잘 풍자하고 있다. ‘강남TK’란 말 속에는 그런 졸부들의 부정적인 이미지가 담겨 있다.

그냥 TK건, 강남TK건 간에 대구경북에 근거를 둔 사람들은 공통적으로 몇 가지 나쁜 버릇이 있다. 약간 진보적 성향의 인사들을 욕할 때 ‘빨갱이’란 말을 즐겨 쓴다거나, 특정지역 사람들을 ‘하와이’로 매도해버리는 편향된 시각을 고치려 들지도 않는 것이 그것이다. 또 장 · 노년층 TK들이 모인 자리에서는 언제나 우향우 쪽의 목소리는 공해수준일 정도로 크고, 온건한 쪽은 모기소리조차 내기 어렵다. 외지인들이 그런 TK들을 보면서 조선조의 사색당쟁에 앞장섰던 싸움꾼들을 연상하는 것이 당연할 수밖에 없다.

그런 풍조가 이제 달라지는 조짐을 보이고 있기는 하다. 대통령 공약이었던 동남권 신공항이 무산된 이후 여당에 대한 비판의 목소리가 지방언론에 강하게 대두되고, 보수꼴통으로 지탄받던 장 · 노년층 사이에서도 더는 참기 어렵다는 투의 말들이 여기저기서 나오기 시작했다. 지난 보궐선거에서 민주당 대표가 보수의 텃밭인 분당(을)에서 승리한 사실을 두고 긍정적인 태도를 보이는 장노년층이 많아졌다는 사실도 작은 변화의 징표일 듯하다. 최근 필자가 겪었던 어느 장노년층 모임의 대화들이 그랬다.

"이제 야당도 수권정당이 될 수 있는 인물을 배출했다는 점에서 이번 선거는 역사발전에 기여한 것 같아." 보수 중의 보수임을 자랑스럽게 외쳐온 어느 60대가 한 말이다.

"이제 말뚝만 박아놔도 당선된다는 여당 사람들에게 우리가 경종을 울려야 해."
동석자도 예전 같지 않게 맞장구를 친다. 얼마 전만해도 들을 수 없었던 내용의 대화였다. 표심이니, 민심이니 하는 막연한 흐름이 이런 식으로 실체를 드러내는구나 하는 생각이 들게 하는 대목이었다.

지난 보궐선거 후에 언론에 등장한 ‘넥타이 부대’니, ‘앞치마 부대’니 하는 말들은 수도권의 부자동네에서도 젊은 세대들이 표심의 헤게모니를 장악했고, 그런 물결에 의해 나이 든 보수층은 열세의 주변지역으로 밀려나고 있는 현상을 반영한다. 한참은 변할 것 같지 않을 것 같던 세상도 세월 따라 그렇게 변해간다. 삼라만상이 무상(無常)일진대, 자녀와 대화가 잘 되지 않는다는 말을 들을 정도로 완고한 대구경북 장노년층이라고 시류를 더 이상 외면할 수야 있겠는가.

‘TK’라는 말이 지닌 부정적 이미지가 말끔히 씻기어 지기를 바라는 것은 비록 대구경북 지역민이나 연고자들만의 바람이 아닐 것이다. 너무 답답해 대구에서는 사업할 생각이 없다는 외지인들도 마찬가지일 터이다. 답답해서 돌아선 그들이 다시 찾아올 수 있도록 대구경북은 마음 문을 활짝 더 열어야한다. 그래야 이 지긋지긋한 오랜 세월의 낙후성을 벗어날 수 있다.






[김상태 칼럼 13]
김상태 / 언론인. 전 영남일보 사장. 평화뉴스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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