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생지신(尾生之信)이라는 옛 중국의 고사가 논쟁거리로 될 만큼 우리사회는 신의라는 덕목을 두고 의견이 서로 다르다. 다리 밑에서 만나기로 한 여자와의 약속을 지키기 위해 홍수에도 피하지 않고 기다리다가 마침내 익사했다는 미생이라는 사람이 미련했다느니, 사람 간의 신의가 그 정도는 돼야 한다느니 하고 다툰다.
미생의 고사에서 보듯 신의에 얽매이는 사람은 덕보다 손해를 보기 쉽다. 우리의 역사에서도 신의나 정의의 편에 섰다가 낭패를 본 사람의 사례는 수없이 많다. 하지만, 시대의 변천에 관계없이 인간 공동체에서 더욱 강조돼야 할 덕목 하나를 꼽자면 그것은 바로 사람 간의 믿음이 아닐까 한다. 이기적인 여러 종류의 사람들이 서로 돕고 경쟁하며 살아가는 공동체를 지탱시켜주는 힘이 바로 믿음에서 나올 것이기 때문이다.
최근 우리나라의 경영사학회로부터 창업대상을 받은 어느 재벌회장은 “신용과 의리의 리더십이 위기에서 결속을 이끌어 낸 원천이었다.”고 수상소감을 말했다. 회사가 어려운 상황에 부닥쳤을 때 그 위기를 돌파할 수 있었던 힘이 구성원 서로간의 믿음이었다는 말이다.
복지국가의 꽃을 피우고 있는 북구(北歐)사회는 납세자들의 세금부담이 많은 것으로 유명하다. 국민들은 소득의 절반이상을 세금으로 내는 것을 별로 거북해하지 않는다. 무상의료와 무상교육을 시행하는데 드는 복지비 지출을 당연시하기 때문이다. 이들 북구 여러 나라의 국민들이 높은 세금 부담을 기꺼이 감수하는 것은 국가에 대한 신뢰에 기초한다. 국민의 세금으로 정부가 복지국가를 잘 영위해 줄 것이란 믿음과 함께, 세금을 많이 낸 비율대로 훗날 자신의 노후에 연금으로 되돌려 받을 수 있다는 믿음이다.
통계청이 최근 세계가치조사협회의 국제비교통계를 인용해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우리나라 사람들은 28%정도만 타인을 믿는다고 답했고, 더구나 정부에 대한 신뢰도는 11.3%에 그쳤다는 보도가 있었다. 서글픈 일이 아닐 수 없다.
무릇 그것이 개인 간이든, 공동체이든 간에 신뢰는 인간관계의 기본이다. 어떤 인물이 많은 사람들로부터 믿을 수 없는 사람이라는 평판을 듣는다면 그것은 당사자의 불행일 뿐 아니라, 그가 속한 공동체의 비극이다. 세상을 살다보면 변신을 해야 할 어쩔 수 없는 경우도 있을 것이다. 그런 경우에라도 신의라는 덕목은 함부로 깨뜨릴 수 없는 가치라는 사실을 뼈저리게 고민해야한다. 특히 사회지도층에 속한 사람들이 조령모개(朝令暮改)하기를 부끄러워하지 않는다면 그 공동체의 질서가 어떻게 유지되겠는가.
[김상태 칼럼 2]
김상태 / 전 영남일보 사장. 평화뉴스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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