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학비즈니스벨트의 입지선정을 두고 온 나라가 또 시끄럽다. 대선공약이 물 건너 갈 조짐을 보이자, 세종시문제로 한바탕 홍역을 치른 적 있는 충청권은 듣기에도 민망한 과격한 표현들을 동원해가며 성토에 나섰다. 물실호기라, 다른 지역 지자체들도 유치경쟁에 가세함으로써 지역갈등의 불길이 전국적으로 번지고 있다. 영남권에서는 신공항을 두고 낯 뜨거운 유치전이 또 한창이다. 분열을 조장하는 정치의 역기능 탓이다.
우리 사회에는 정치를 불신하는 여론조사결과나, 듣기 거북할 정도로 정치인들을 폄하하는 가혹한 풍자가 유달리 많다. 이는 전.현직 정치인들이 스스로 저지른 업보다. 정권이 바뀌면 막대한 예산을 들여 추진하던 국책사업조차 언제 그랬느냐는 듯 조령모개가 되고, 선거공약이 당선을 위한 위장술에 불과하기 일쑤이다 보니, 믿어서는 안 될 것이 바로 정치하는 사람들의 입이다. 정치인들의 말을 믿고 일을 벌였다가 패가망신하는 악몽을 겪은 사람들이 쏟아내는 울분을 우리는 지난 몇 년간 많이도 들어왔다.
정치인들이 선거 때 그럴듯하게 내세웠던 공약을 부도내버리는 여러 가지 이유 가운데 하나는 ‘실용(實用)’이라는 핑계가 있다. 선거 때는 표 때문에 그렇게 해볼 생각이 좀 있었다 해도, 그 후 실용적인 면에서 약속을 바꿀 수밖에 없게 됐다는 이유가 그것이다. 이럴 때의 ‘실용’이라는 좋은 단어는 ‘지조’나 ‘믿음’과 같은 말과는 정 반대의 이상한 개념이 돼버린다. 이런 식의 실용만을 최선의 가치로 생각하는 사람들은 주변의 사정에 따라 언제나 신념이나 가치관을 바꿀 수 있다. 과거의 약속에 얽매인다거나, 지난날의 가치관을 고집하는 태도를 어리석은 것으로 판단하기 때문이다. 이를 좀 더 실감나게 표현하자면 일본 사람 들어오면 일본인 행세하고, 힘의 판도가 바뀌면 또 그들의 구미에 맞게 알아서 척척 기는 것을 당연시하게 된다. 따라서 사육신이나 유관순 같은 인물은 기릴 대상이 못되고, 이완용 같은 사람은 지탄받을 인물이 아니다.
우리나라에서도 한때 매니페스토(manifesto)운동이 활발히 전개된 적이 있다. 선거후보자들이 내건 공약을 검토하고, 그 공약들의 실현가능성을 평가하는 운동이다. 지연과 학연 같은 고질병을 없애고, 정책과 공약중심으로 국민의 대변자를 뽑자는 이상적인 캠페인이었다. 그러나 지금은 이상하게도 그런 운동조차 자취를 감췄다. 어차피 선거공약은 당선만을 위한 것인데, 그런 캠페인을 해서 무엇 하겠느냐는 자포자기적 풍조 때문이 아닐까 싶다.
한 때 스스로를 비하하여 ‘엽전’이라는 표현을 쓰는데 주저하지 않았던 우리가 ‘신토불이’란 말이 상징하듯, 놀랍게도 한국 것이라야 오히려 좋다고 믿어주는 긍지를 찾았다. 그러나 경제와 문화 등 다른 분야에서 올라간 국격(國格)은 강대국에 휘둘리고 당파에 멍들었던 선조들의 파벌싸움을 빼닮은 독선적이고 배타적인 정치풍조로 인해 낯 뜨거운 낙제점을 면치 못하고 있다. 정치인들로부터 비롯된 불신풍조 때문이다.
목적달성을 위해 온갖 거짓 수단을 동원하고, 성사된 후에는 셈법을 달리하는 영악함이 계속 용인되는 공동체라면 언제 무너질지 모르는 모래성과 다를 바 없다. 신용불량자와의 거래를 오래 지속할 만큼 관대한 사람은 이 세상에 별로 없을 것이기 때문이다.
먹고 살기에도 바쁜 세상에 어렵고 재미없는 ‘정의’나 ‘공정’을 논한 책들이 서점가를 계속 주름잡고 있다는 것은 아무래도 좀 이상하다. 정의라는 덕목의 핵심가치인 신뢰란 무엇인가 하고, 의아해하는 지식인들의 어리둥절한 모습을 담은 풍경이라고 해석하면 맞을 것 같다. 마침 어느 유력한 법조인이 일간지에 ‘정의란 무엇인가’라는 제목으로 쓴 기명칼럼(매일경제신문 2011. 2. 21)이 독자들의 관심을 끌었다. 그가 쓴 글의 결론은 우리 사회의 한계를 여지없이 드러낸다. “정의가 현실세계에서 제대로 구현되지 못하는 것을 당연한 것으로 수용해 마음의 평화를 얻는 것이 필요하다.”란 정말 도사 같은 소리였다. 해도 해도 안 되는 세상에서 아등바등 하지 말고, 마음이나 편하게 먹으라는 뜻인가?
정치판의 양치기소년들에 대한 언론의 비판기능조차 주눅이 들고, 기득권이기주의와 지역이기주의 앞에 올바른 비판이 외면당하는 것이 용인되는 시대다. 따라서 오늘의 한국사회는 옳고 그름의 기준이 뒤죽박죽 된 가치관 혼돈시기로 기록될만하다.
[김상태 칼럼 11]
김상태 / 언론인. 전 영남일보 사장. 평화뉴스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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