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순이·루디의 죽음...대구경북 동물원 절반이 미등록 '안전 사각지대'

평화뉴스 김영화 기자
  • 입력 2023.08.17 11: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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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령 암사자와 대구 침팬지 죽음으로 끝난 탈출
공공민간 전시체험 25곳 지자체 미등록 52%
대구 사자·호랑이 11마리, 전체 동물 7천여마리
사육사·수의사 태부족→동물학대·사람 안전 위협
동물권단체 "실태조사, 미달 시설 폐쇄·법 강화"


1시간과 4시간. 

20년 넘게 철창에 갇혀 살던 사자 사순이와 침팬지 루디가 우리 밖 자유를 누린 시간이다. 공공 동물원, 개인 농장 등 형태는 달랐지만 두 동물의 운명은 같았다. 인간에 의해 갇혔고 목숨을 잃었다. 

최근 일주일새 대구경북지역에서 인간이 키우던 야생동물들이 잇따라 숨졌다. 죽음으로 끝난 탈출이었다. '동물권 침해'는 물론 사람 안전까지 위협 받아 동물원 운영 전반에 대한 지적이 빗발쳤다.

7,000마리에 가까운 동물이 대구경북 동물원에서 사육되고 있고, 이 중 11마리는 맹수인 사자와 호랑이다. 미등록 시설도 절반이 넘는다. 동물권과 안전권을 놓고 당국의 관리 부실 비판이 나온다.
 
   
▲ 경북 고령군 한 목장에서 탈출한 암사자 사순이가 숲 속 그늘에 앉아 있다.(2023.8.14) / 사진.경북소방본부
   
▲ 사살된 이후 쓰러진 암사자 사순이(20203.8.14) / 사진.경북소방본
   
▲ 대구 중구 달성공원 사육장을 탈출해 공원을 배회하는 침팬지 루디와 알렉스(2023.8.10) / 사진.대구소방본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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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동물복지연구소'가 올해 1월부터 4월까지 대형 검색 포털에서 '전국 전시·체험형 동물시설 사육환경과 동물상태 실태조사'를 한 결과, 동물전시·체험시설은 300곳이다. 대구경북은 25곳이다. 대구 8곳, 경북 17곳이다. 지역별로 경기 87곳, 경남 28곳, 강원 26곳, 제주 24곳 순으로 많았다. 이 가운데 각 지자체에 '동물원'으로 등록한 민간 운영 동물전시·체험시설은 모두 88곳이다. 대구는 5곳, 경북은 5곳 등 모두 10곳이다. 전국 시설 300곳 가운데 동물원으로 등록한 88곳(29.3%)을 제외한 212곳은 미등록 상태다. 10곳 중 7곳인 70.7%가 어떤 곳에도 등록하지 않은 셈이다.  

대구시와 경북도에 16일 확인해보니, 동물원, 전시·체험시설 수치는 앞서 실태조사와 조금 달랐다. 대구 시설은 모두 6곳이다. 공공은 ▲대구도시공원관리사무소 달성공원관리사무소가 운영하는 중구 달성공원 1곳 뿐이다. 민간은 ▲동구 토이빌리지 대구혁신점 ▲수성구 아이니 테마파크 ▲달서구 이월드 동물농장 ▲달성군 (주)스파벨리 네이처파크 애니멀밸리 ▲달성군 쥬쥬랜드 등 5곳이다. 경북지역 시설도 6곳이다. 공공은 ▲울진군 왕피천공원사업소가 운영하는 울진왕피천공원 1곳이다. ▲경주 보문로 버드파크 ▲보문단지 엑스포로 주렁주렁  ▲노서동 히어로플레이파크  ▲구미시 고아읍 쥬쥬동산 ▲안동시 관광단지로 주토피움 등 5곳은 민간기업·개인 운영 시설이다.
 
   
▲ '전국 동물원, 전시, 체험시설 실태조사 결과'(2023 5월 발표) / 자료.한국동물복지연구소
   
▲ '대구시 동물원 등록 현황'(2023.8.16 기준) / 자료.대구시
   
▲ '경상북도 동물원 등록 현황'(2023.8월 기준) / 자료.경북도
 
연구소 기준으로 대구경북 전체 시설은 25곳이다. 이 가운데 지자체에 등록한 곳(대구시와 경북도 기준)은 12곳으로 등록율은 48%, 절반에도 미치지 못한다. 52%는 미등록 상태다. 동물복지연구소와 지자체 수치가 차이나는 이유는 신설, 폐업, 이전한 곳들이 있기 때문이다. 대구 중구 이웃집수달은 남산역에서 매장을 확장해 경북 경산시로 옮겼고, 동구 이시아폴리스 미니멀주 실내동물카페는 문 닫았다. 달성군 대구숲 동물원은 코로나19 경영난과 동물학대 논란 후 폐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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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제로는 영업하면서 사업주들이 지자체에는 등록하지 않고 구글, 네이버, 다음 등 포털 사이트에만 등록한 것도 차이나는 이유 중 하나다. 먹이주기, 만지기 등 체험형 실내시설과 카페는 개인 시설이 많고, 개인 농장은 아예 등록하지 않은 곳들도 있다. 동물복지연구소 조사에 더 많은 숫자가 잡힌 까닭이다. 자발적으로 등록하지 않을 경우 지자체가 동물원, 전시·체험시설 여부를 확인하기 어렵다.

사순이가 대표 사례다. 경북소방본부에 따르면 지난 14일 고령군 덕곡면 민간 사설 목장에서 오전 7시 24분쯤 암사자 사순이가 사육장을 탈출한지 1시간여만인 오전 8시 30분쯤 숲속 그늘에 20분간 앉아 있다가 엽사 2명에 의해 사살됐다. 지난해 2월 고령군청은 해당 목장을 관광농원으로 지정하고 소 축사를 허가했지만, 사자 사육 허가는 내준 적 없다. 사순이는 목장에서 20년 간 살았지만 해당 시설은 경북도 동물원, 전시·체험시설 명단에 등록된 적 없다. 탈출 뒤에야 존재가 드러났다. 

사순이는 판테라레오(Panthera Leo) 국제멸종위기종 2급 야생동물이다. 대구지방환경청에 따르면, 사순이는 2008년 11월 경북 봉화군에서 신고됐다. 야생동물보호와 관리에 관한 법률상, 멸종위기종은 입국자 애완용, 공중 관람용, 학술 연구용 중 하나에 해당하면 반입 가능하다. 사순이는 관람용이다. 환경청은 연 1회 사순이 사육장을 점검했다. 감옥 같은 철창 사육장에서 사순이는 평생을 살았지만, 규정상 한마리당 4평(14㎡ 면적, 2.5m 높이 펜스) 공간만 갖추면 되기 때문에 문제는 없었다.
 
고령군 우리 안에 갇혀 있는 사순이의 살아 있을 당시 모습. / 사진.한 주민이 네이버 카페에 올린 게시물
고령군 우리 안에 갇혀 있는 사순이의 살아 있을 당시 모습. / 사진.한 주민이 네이버 카페에 올린 게시물
 
 최근 5년 동물원, 전시·체험시설은 늘어나는 추세다. 비교적 개·폐업이 자유로운 탓이다. 동물복지연구소와 이상돈 국회의원이 2019년 발표한 '동물원 실태조사 보고서'를 보면, '동물원 및 수족관에 관한 법률'에 따라 지자체에 등록한는 공공·민간시설은 전국 110곳이다. 공공은 10곳에 불과하고 나머지는 민간이다. 올해 300곳과 비교하면 5년 새 3배 가량 늘었다. 보고서는 "오락용으로 동물을 체험하고 전시하는 민간기업과 개인 시설이 늘어났기 때문"이라고 결과를 분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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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로나 3년이 휩쓴 뒤 문 닫은 동물원의 경우, 갈 곳 없이 사육장 안에 남겨진 동물들도 또 다른 사회적 문제가 되고 있다. 보고서에 따르면, 달성공원에 사는 동물은 70여종 600여개체, 이웃집수달 10여종 40여개채, 미니멀주 30여종 140여개체, 토이빌리지 20여종 80여개체, 이월드 50여종 340여개체, 스파밸리 60여종 940여개체, 쥬쥬랜드 10여종 80여개체, 대구숲 30여종 80여개체다. 
 
대구에서 최근 폐업한 시설 2곳의 남겨진 동물은 220여마리. 이들은 어디로 갔을까. 절차를 따져보니, 다른 시설이나 동물원에 이주 가능 여부를 묻고, 운이 좋아 거처를 마련하면 다른 동물원의 철창 안에 다시 갇혀 살아야 한다. 불행히도 이마저 받아주는 곳이 없으면 다른 나라 동물원을 찾을 때까지 망한 동물원 철창 안에 남아 기다려야 한다. 최악의 경우 안락사 시킨 사례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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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 달성공원 침팬지 부부 사육장은 주인을 잃었다.(2023.8.14) / 사진.평화뉴스 김영화 기자
대구 달성공원 침팬지 부부 사육장은 주인을 잃었다.(2023.8.14) / 사진.평화뉴스 김영화 기자
          
사육 환경도 열악하다. 1,000여마리 동물을 사육사 2명이 돌보는 곳도 있다. 대구경북 현황을 보면, 대부분 수의사는 1명에 불과하다. 그마저 촉탁직으로 연 1~2회 정기 검사를 하고, 상시 근무하는 이가 없다. 촉탁직 수의사도 없는 곳들이 있다. 달성공원은 사육사 11명으로 그나마 형편이 좋은 편이다. 민간 동물원들은 사육사 1명 또는 2~3명이 관리한다. 개인 사업주 홀로 운영하는 곳들도 있다.  

형편이 나은 곳에서도 갑작스런 사고는 발생한다. 지난 10일 오전 9시 11분쯤 달성공원에서 침팬지 수컷 루디(25살)와 암컷 알렉스(36살) 부부가 사육장을 탈출했다. 우리를 청소하는 도중 열린 문 틈으로 사육사를 밀치고 탈출했다. 알렉스는 탈출한지 20여분 뒤인 오전 9시 30분쯤 공원 인근에서 발견돼 사육사를 따라 다시 우리 안으로 들어갔다. 반면 루디는 인근 주택으로 이동했다가 마취총 3발을 맞고 포획됐다. 동물병원으로 이송돼 치료 받았지만 기도 폐쇄로 오후 1시 30분쯤 질식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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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악한 환경이 안전 사각지대를 만드는 셈이다. 관리에 구멍이 생긴 찰나 동물은 우리 밖으로 나간다. 사람도 동물도 목숨을 잃거나 다칠 수 있는 아찔한 상황으로 연결된다. 맹수인 대형 야생동물, 사순이가 탈출한 당시 300m 인근 캠핑장에서 70여명이 야영을 하고 있다가 급히 대피했다. 지자체가 인근 주민들에게 긴급 재난안전문자를 보내 위기를 모면했다. 

탈출한 동물이 사순이처럼 숲에 얌전히 앉아 있거나 알렉스처럼 손을 잡고 다시 우리로 돌아간다면 큰 사고는 없다. 하지만 늘 운이 좋지만은 않다. 지난해 울산에서 키우던 곰 3마리가 사육장을 탈출해 농장 주인 부부를 습격해 두 사람이 숨지는 사고가 일어나기도 했다. 사고는 반복될 수 있다.
 
   
▲ 달성공원 사자가 우리 안에서 쉬고 있다.(2023.8.14) / 사진.평화뉴스 김영화 기자
   
▲ 사육장 안에 누워있는 대구 달성공원의 호랑이(2023.8.14) / 사진.평화뉴스 김영화 기자

대구시에 확인한 결과, 동물원에서 키우는 사자와 호랑이는 11마리다. 달성공원 사자 2마리(암컷1마리, 수컷 1마리), 호랑이 3마리(암컷 1마리, 수컷 2마리), 네이처파크 사자 2마리(암컷 1말, 수컷 1마리), 호랑이 2마리(암컷 1마리, 수컷 1마리), 아이니테마파크 백사자 2마리(암컷 1마리, 수컷 1마리)다. 경북지역까지 합하면 더 많다. 이 밖에도 대구시와 경북도에 등록된 동물원 12곳에서 관리하는 동물은 곰, 표범, 하이에나를 포함해 대구 2,400여마리, 경북 4,500여마리 등 6,900여마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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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물원수족관법'과 '야생생물법' 개정안이 국회를 통과해 올해 12월부터 시행된다. 동물원 설립은 이전에 등록제에서 허가제로 까다로워졌다. 사육 기준도 어느 정도 수준을 갖추도록 엄격히 바뀌었다. 고령 목장과 비슷한 사례를 방지할 수 있다. 다만 인수공통감염병 전파 우려가 적은 종과 공익적 목적의 시설은 허용한다는 예외 규정을 뒀다. 뿐만 아니라 그 동안 등록하지 않고 야생동물을 전시한 기존 사업자들에게 오는 2027년 12월까지 5년 유예기간을 준 것도 논란이 되고 있다. 개인이 몰래 키울 경우 찾아내기도 힘든데, 법망마저 느슨한 것 아니냐는 우려가 나온다. 

탈출한 동물을 꼭 사살했어야 하는지도 쟁점 중 하나다. 대구시 야생동물 담당 부서인 환경정책과 기후환경정책과에 확인한 결과, 야생동물이 우리를 탈출했다고해서 무조건 동물에게 마취총을 쏘거나 사살하는 것은 아니다. 다만 대구시는 '동물 탈출 시 마취와 사살 규정'을 두고 있다. 특히 공공 동물원의 경우 안전 관리 매뉴얼에 따라, 마취와 사살반을 구성하고 포획을 실시한다. 반면 민간 동물원의 경우 각 동물원 별 안전관리 계획을 따른다. 사살 규정은 존재하지 않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람의 안전을 위해 현장에서는 대부분 사살 명령이 떨어지고 있다. 
 
"자연 채광과 환기가 안되는 수성구 실내 전시장에 백사자들이 있다." / 사진.한국동물복지연구소
"자연 채광과 환기가 안되는 수성구 실내 전시장에 백사자들이 있다." / 사진.한국동물복지연구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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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물권단체들은 허가 기준 강화와 수준 미달 시설 폐쇄 등 법망 강화를 촉구했다. 동물자유연대는 16일 논평에서 "야생동물 사육 기준 강화와 이탈 시 사살이 능사라는 인식을 버리고 인도적 포획을 위한 전문화된 대안을 수립하라"고 촉구했다. 정의당 대구시당 생태위원회(위원장 백소현)도 이날 논평을 내고 "루디와 사순이의 잇따른 죽음에 애도를 표한다"며 "자격 미달 시설에 사는 야생동물을 위한 보호 시설을 마련하고, 관리감독 능력이 없는 개인과 동물원은 폐쇄 등 강력 조치하라"고 했다. 

환경운동연합은 지난 15일 논평에서 "국제멸종위기종 국내 사육 실태조사와 보호조치 마련"을 요구했다. 동물권행동 카라는 지난 14일 논평을 통해 "루디 사망 사흘만에 사순이가 사살됐다"면서 "환경부와 지자체는 대형 야생동물 보호시설을 마련하고, 전시·오락 동물원에서 수명이 끝날 때까지 보전·보호·교육하는 '생추어리(Sanctuary)' 시설로 전환하는 논의를 시작하라"고 강조했다. 

장정희 대구 녹색당 사무처장은 "탈출하지 않고 오래 살아도, 탈출해 사살돼도 불행한 삶"이라며 "법망이 강화되지 않는다면 탈출해 목숨을 잃는 동물이 계속 나올 것"이라고 했다. 이어 "동물이 돈벌이가 되는 수익 창출 구조가 바뀌지 않는 한 좁고 어두운 철창에서 동물을 사육하는 일은 멈추지 않을 것"이라며 "정부와 지자체들은 강력한 제재 수단을 동원해 사순이의 슬픈 비극이 반복되지 않도록 해야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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