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심히 살면 좋은 날 올 것"...새해 첫날, 달성공원 새벽시장

평화뉴스 정준민 기자
  • 입력 2024.01.01 14: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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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년 서민의 장터, 1월 1일 새벽 5시
노점상과 손님들 모닥불 쬐며 서로 '덕담' 나눠
'경기 회복' 바라며 새해에는 함께 힘내길 소망
"사는 게 별 게 없어, 항상 희망 갖고 살아야"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올해도 건강하세요"

동이 트지 않은 2024년 1월 1일 새벽 5시 대구 달성공원 일대 400m 거리에 새해 첫 '새벽시장'이 문을 열었다.

공원 정문을 중심으로 차도 가장자리를 따라 노점이 들어섰다. 모닥불을 피우고, 믹스커피를 마시며 언 몸을 녹였다. 새해 덕담을 나누는 것도 빼놓지 않았다.
 
새해 첫 새벽시장...어둠 속에서 장을 펼치는 상인들(2024.1.1) / 사진. 평화뉴스 정준민 기자
새해 첫 새벽시장...어둠 속에서 장을 펼치는 상인들(2024.1.1) / 사진. 평화뉴스 정준민 기자

트럭과 승합차, 리어카에서 판매할 물건들을 내리고 매대에 놓았다. 거리에 채소, 과일, 수산물 등 식재료를 포함해 옷, 신발 등 각종 생필품이 펼쳐졌다. 박스를 잘라 만든 가격표에는 1kg당 3천원, 2봉지 5천원 등 '착한 가격'이 적혔다.

"어서 오이소", "이거 얼마에요" 상인과 손님이 대화하는 소리가 들렸다. 조금만 깎아달라고 흥정하는 소리, 이미 안면이 있는 사람들끼리 안부를 묻는 소리로 시장은 조금씩 활기를 띠었고, 검은 봉지를 들고 가는 사람들도 종종 보이기 시작했다.
 
시장 상인들이 따뜻한 어묵과 어묵 국물로 언 몸을 녹이는 모습(2024.1.1) / 사진. 평화뉴스 정준민 기자
시장 상인들이 따뜻한 어묵과 어묵 국물로 언 몸을 녹이는 모습(2024.1.1) / 사진. 평화뉴스 정준민 기자

새벽시장은 2000년 초 중구 달성동 294-1 일대에 상인들이 모이며 형성됐다. 20년 넘게 자리를 지켰다. 1년 365일 쉬지 않고 새벽 4시부터 아침 8시까지 4시간가량 시장을 연다. 값싼 식재료와 생필품 등을 팔아 서민들이 찾는 장터로 유명해졌다.

올해는 인근 주민들의 민원으로 노점 수가 많이 줄었다. 구청 단속으로 장사할 수 있는 구역이 줄어들면서 시장을 떠나는 상인들이 늘어나게 된 것이다. 상인회에 속해 있는 사람 수도 200여명에서 160여명으로 줄었고, 점포 수도 그만큼 감소해 손님 발길도 점점 줄었다.

수산물을 파는 권모(61)씨는 "지난해 나름대로 열심히 살아왔는데 경제가 좋지 않아 힘들었다"며 "새벽시장 민원도 많이 들어와 노점 철거로 40~50여명의 상인들도 다른 곳으로 떠났다"고 설명했다.

권씨의 다짐은 "올해도 하루하루 열심히 사는 것"이다. 그는 "사람 사는 게 별거 없다. 맡은 일에 충실하고 열심히 살다 보면 좋은 날이 온다"면서 "안 팔릴 때도 있지만, 잘 팔릴 때도 있다. 항상 희망을 갖고 좋은 것만 생각하며 살아야 한다"고 말했다.
 
새벽 3시쯤 일어나 팔달시장에서 직접 채소를 가져온 정모(68)씨 (2024.1.1) / 사진. 평화뉴스 정준민 기자
새벽 3시쯤 일어나 팔달시장에서 직접 채소를 가져온 정모(68)씨 (2024.1.1) / 사진. 평화뉴스 정준민 기자
"7개 2000원, 11개 3000원"...한 손님이 국화빵을 사고 있다. (2024.1.1) / 사진. 평화뉴스 정준민 기자
"7개 2000원, 11개 3000원"...한 손님이 국화빵을 사고 있다. (2024.1.1) / 사진. 평화뉴스 정준민 기자

상인 정모(68)씨는 트럭에 채소를 가득 실은 채 좌판을 깔았다. 어제(31일) 비가 와 장사를 하지 못하는 바람에 오늘 장사를 하러 나왔다. 새벽 3시 반에 일어나 팔달시장에서 고추, 양파, 무 등을 가져와 시장에서 팔고 있다. 정씨는 "새벽에 도매시장에서 물건을 가져와 바로 팔기 때문에 신선하다"면서 "하지만 평일에는 사람이 없어 주말에만 시장에 나와 장사를 하고 있다"고 했다.

새벽 운동도 할 겸 매일 시장에 들러 반찬 재료를 산다는 박모(71)씨는 "월요일에는 상인들이 거의 없는데, 공휴일이어서 많이 나온 것 같다"면서 "물건도 저렴하고 상인들과도 친해 자주 온다"고 말했다.

새벽시장은 장을 보는 시민들에게 '만남의 장'이기도 했다. 굳이 물건을 사지 않더라도 노점을 따라 함께 열린 포장마차에서 술을 한 잔 마시며 이야기를 나누는 곳이었다. 한 시민은 "시장에서 처음 만나도 이야기하다 보면 금방 친해진다"면서 "같이 음식을 먹고, 살아가는 이야기를 하다 보면 힘이 난다"고 말했다.
 
새벽시장에서 18년간 신발, 가방 등 잡화를 팔아온 이모(72)씨가 장사를 일찍 접는 모습(2024.1.1) / 사진. 평화뉴스 정준민 기자
새벽시장에서 18년간 신발, 가방 등 잡화를 팔아온 이모(72)씨가 장사를 일찍 접는 모습(2024.1.1) / 사진. 평화뉴스 정준민 기자
시장을 찾은 손님들이 모닥불을 쬐고 있다(2024.1.1) / 사진. 평화뉴스 정준민 기자
시장을 찾은 손님들이 모닥불을 쬐고 있다(2024.1.1) / 사진. 평화뉴스 정준민 기자

새벽시장에서 18년간 신발, 가방 등 잡화들을 팔아온 이모(72)씨는 남들보다 조금 일찍 장사를 접기 시작했다. 그는 "불경기라 사람들이 물건을 잘 안 사는 것 같다"고 아쉬워했다. 또 "지난해에는 공사 현장에서 하루 벌어 하루 쓰는 사람들이 많이 왔다"며 "올해는 소문이 많이 나 많은 사람들이 이곳을 찾았으면 좋겠다"고 소망했다.

오전 8시 20분쯤, 동이 트고 아침이 되면서 주변이 환해졌다. 달성공원 안에서 해돋이를 보고 나온 사람들이 "몸 좀 녹이자"며 따뜻한 어묵과 국물을 먹으려 시장에 몰렸다. 상인들은 갑자기 늘어난 사람들을 보고 분주히 움직였다. 하지만 8시 30분이 되자 장사를 접어야 하는 시간을 알리는 호루라기 소리가 여기저기서 들려왔고, 상인들은 소리에 맞춰 매대를 정리하거나 하나라도 더 팔기 위해 물건값을 깎아 팔았다. 분주하고 요란했던 새벽은 조용해졌고, 언제 그랬냐는 듯 텅 빈 거리만이 남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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