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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년 서민의 장터 '달성공원 새벽시장'...민원에 철거 위기

평화뉴스 정준민 수습기자
  • 입력 2023.05.30 18: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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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0년부터 1년 365일 새벽 4시~아침 8시 반짝 시장
트럭·리어카 식품·생필품 싣고 와 1~2천원 헐값 판매
아파트 입주민 "미관훼손, 철거" / 상인들 "갈 곳 없어"
중구청 "지역 명물 완전 철거 어렵다, 대신 단속 강화"


"오이 4개 2천원, 양파 5개에 3천원"

동이 완전히 트지 않은 30일 오전 6시 대구 중구 달성동~대신동 도로 '달성공원 새벽시장'이 섰다. 

농산물과 잡화를 리어카와 트럭에 싣고 온 상인들. 고추, 대파가 든 보자기를 머리에 올린 할머니들. 새벽 4시부터 달성공원 인근 400m 거리에 좌판이 늘어섰다. 상인들은 분주히 움직였다.

노상에 야채, 고기, 수산물 등 식재료를 포함해 신발, 안경 등 잡화들이 싼값에 진열됐다. 오이, 고추, 감자, 당근, 호박, 마늘 앞에 붙은 종이 가격표는 1,000원~3,000원 '착한 가격'이다. 
 
달성공원 새벽시장에서 장보는 주민들(2023.5.30) / 사진. 평화뉴스 정준민 수습기자
달성공원 새벽시장에서 장보는 주민들(2023.5.30) / 사진. 평화뉴스 정준민 수습기자

상인들 호객 행위 소리에 식재료를 사러 온 사람들이 모였다. 주말 동안 비가 내린 탓인지 손님은 많지 않았다. 해가 밝아질수록 장터는 한산해졌다. 아침 8시가 되자 새벽시장은 반짝하고 사라졌다.  

달성공원 새벽시장 점포는 거리에 다닥다닥 붙을 정도로 많았는데 이제는 많이 줄었다. 상인 A씨는 "예전에는 거리를 메울 만큼 많았다"며 "지금보다 더 길게 늘어서 있었다"고 회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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점포 수가 줄어든 건 인근 신축 B아파트 입주 예정자들이 집단 민원을 넣으면서 시작됐다. 입주예정자들은 올초 중구청(구청장 류규하)에 '새벽시장 철거' 민원을 넣었다. 입주일은 6월 말이다.  

중구청에 확인한 결과, 달성공원 새벽시장 철거 민원은 매달 평균 10여건에 이른다. '대구 중구청 전자민원창구' 홈페이지에 30일 현재까지 공개된 '새벽시장 철거' 민원 게시글은 4건이다. 
 
새벽시장 인근 신축 아파트 '불법노점영업 금지' 현수막(2023.5.30) / 사진. 평화뉴스 정준민 수습기자
새벽시장 인근 신축 아파트 '불법노점영업 금지' 현수막(2023.5.30) / 사진. 평화뉴스 정준민 수습기자

새벽시장으로 인해 주차 불편, 쓰레기 발생 등 미관을 훼손하니 시장을 없애라는 요구다.

문모씨는 지난 4월 17일 '불법 새벽시장 철거 요청합니다'라는 민원을 통해 "자동차가 다닐 수 없어 도로교통법 위반, 원산지 표시 없는 더러운 음식 유통으로 위생법 미준수"라며 "불법노점으로 세금도 내지 않는다. 노상방뇨, 사행성 게임, 쓰레기 무단투기도 심각하다"고 주장했다. 

아파트 입주 예정자라고 밝힌 이모씨는 "새벽시장으로 인해 악취, 쓰레기, 불법정차가 발생해 불편하다"며 "도시 미관도 훼손된다"는 내용의 민원을 지난 4월 13일 홈페이지에 남겼다. 이씨는 "유서 깊은 도시가 방치되는 것은 중구와 대구시 손실"이라며 "환경 개선이 시급하다"고 주장했다.  

지난 3월 12일에는 김모씨가 "새벽시장 운영으로 악취가 나고, 쓰레기가 발생하고, 도로가 더럽혀지고 있다"며 "아파트 입주 시 불편을 줄 것이니 구청이 대책을 내놓으라"고 요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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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성공원 인근에 2000년 생긴 새벽시장. 23년간 1년 365일 쉬지 않고 서민들이 찾는 장터로 유명해졌다. 금융위기와 코로나19도 버텼지만 아파트 입주예정자들 민원으로 철거 위기에 놓였다. 
 
"오이 4개 2천원, 양파 5개 3천원"...새벽시장 노점상들(2023.5.30) / 사진. 평화뉴스 정준민 수습기자
"오이 4개 2천원, 양파 5개 3천원"...새벽시장 노점상들(2023.5.30) / 사진. 평화뉴스 정준민 수습기자

중구청은 '불법노점영업 금지안내' 현수막을 붙이고 이미 새벽시장 일부 구간을 축소 조치했다. 노점을 운영할 경우 강제철거하거나 150만원 이하의 과태료를 부과하겠다는 처벌 경고문도 붙였다. 

상인 C씨는 "여기서 장사하는 사람들은 하루 벌어서 하루 먹고 사는 사람들"이라며 "만약 새벽시장을 철거하면 우리들은 다 어디로 가야 하냐. 사실상 갈 곳이 없다"고 걱정했다.

새벽시장에서 11년간 도넛을 파는 최모(45)씨는 "구역을 제한해도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은 없다"며 "배려하는 수 밖에 없다"고 했다. 하지만 "철거되면 이 많은 사람이 다 어디로 가야하냐"고 탄식했다.

주민 서미엘(54)씨는 매일 교회에서 새벽기도를 하고 새벽시장을 찾아 장을 본다. 서씨는 "예전에는 엄청난 인파가 새벽시장을 찾았는데 민원과 단속으로 인해 규모가 축소된 것 같다"면서 "시장 상인과 중구청, 아파트 입주예정자들이 조율을 잘해서 다시 시장이 활성화되었으면 좋겠다"고 희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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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구청은 민원이 발생하자 장터 일부 공간 축소, 단속 강화 등 개선 대책을 내놨다. 그러나 아파트 입주예정자들의 요구를 100% 받아들여 달성공원 새벽시장을 완전히 철거할 수는 없다는 입장이다.
 
"안타깝다"...11년차 새벽시장 상인 최모씨(2023.5.30) / 사진. 평화뉴스 정준민 수습기자
"안타깝다"...11년차 새벽시장 상인 최모씨(2023.5.30) / 사진. 평화뉴스 정준민 수습기자

오상호 중구청 건설과장은 "달성공원 새벽시장은 20년이라는 역사를 지닌 중구의 지역 명물로, 지역 명물을 완전히 철거하는 것은 어렵다"고 답했다. 또 "교통 통행량이 적은 새벽 특정 시간대에만 운영하는 특수성을 지니고 있기 때문에 시장을 없애는 것은 무리가 있다"고 설명했다. 

대신 "영업에 있어서 불법이 있는 부분은 예전부터 가로 정비 팀이 단속을 해오고 있다"면서 "아파트 입주예정자들의 의견을 받아들여 그 부분에 대해 조금 더 중점을 두고 단속하겠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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