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벽 장터, 새해 첫 달성공원 반짝시장..."다시 좋아질 날 오겠지요"

평화뉴스 김두영 수습기자
  • 입력 2021.01.04 19: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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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여년 새벽장 '코로나'로 엿새 만에 개장...새벽 5시부터 노점 40여곳 3시간 장사
6천원~1만원 벌러 나온 상인들..."장사 못해 우울", "다들 어려울 때 새벽시장서 작은 위로"


새벽 5시 대구 달성공원 일대에 새해 첫 '반짝시장'이 섰다.

4일 중구 달성동 294-1 일대에 달성공원 새벽시장이 문을 열었다. 앞서 2000년 초 개장한 이후 20여년간 서민들 삶의 터전이 됐지만, 코로나19 방역대책으로 문을 닫았다가 엿새 만에 장터가 열렸다.

새해 첫 새벽시장...어둠 속에서 장을 펼치는 상인들(2021.1.4) / 사진.평화뉴스 김두영 수습기자
새해 첫 새벽시장...어둠 속에서 장을 펼치는 상인들(2021.1.4) / 사진.평화뉴스 김두영 수습기자
새벽 5시쯤 추위를 피하기 위해 모닥불을 지핀 상인들(2021.1.4) / 사진.평화뉴스 김두영 수습기자
새벽 5시쯤 추위를 피하기 위해 모닥불을 지핀 상인들(2021.1.4) / 사진.평화뉴스 김두영 수습기자

어둑한 길거리를 따라 상인들은 새벽 일찍 모닥불을 피우고 노점을 차렸다. 트럭과 승합차, 수레에서 판매할 물건들을 내리고 거리 매대에 진열했다. 서로 새해 인사도 잊지 않았다. 새벽 어두운 달빛 속에서 시작해 아침 해가 떠오를 때까지 3시간 가량 반짝 장사를 하다보니 상인들의 손길은 바빠졌다.

양파, 감자, 수산물 등 식재료를 포함해 옷, 방향제 등 각종 생필품이 도로에 펼쳐졌다. 종이에 1천원~3천원 소박한 가격표가 붙었다. 시간이 지나며 새벽이 밝아오자 손님들이 하나 둘 장으로 모였다.    

"어서오이소", "얼맙니까" 곳곳에서 목소리가 들렸다. 검은 비닐봉지를 들고 가는 이들이 늘었다. 시장은 활기를 띠었다. 상인과 손님은 "새해 복 많이 받으이소", "좋은 하루 되세요" 인사를 나눴다.

새해 첫 장터...새벽 반짝시장에서 콩나물을 파는 상인(2021.1.4) / 사진.평화뉴스 김두영 수습기자
새해 첫 장터...새벽 반짝시장에서 콩나물을 파는 상인(2021.1.4) / 사진.평화뉴스 김두영 수습기자

새벽 반짝시장은 달성공원 정문을 중심으로 양쪽 도로에 들어선다. 새벽 5시쯤 시작해 오전 8시 30분 까지 잠깐 열렸다 사라진다고 해서 '반짝시장', '도깨비시장', '번개시장' 이름이 붙었다. 당초 시장 규모는 작았다. 20년 이어지며 현재 평일 평균 40개, 주말 평균 200개 노점이 설 정도로 세가 커졌다.  

최근에는 코로나로 인해 노점 수가 많이 줄었다. 이날 새해 첫 장에는 평일 평균인 40여곳의 노점이 섰다. 그나마 많이 문을 연 셈이다. 365일 내내 장이 열렸지만 코로나로 장사 할 수 있는 날이 불규칙적으로 변한 탓이다. 시장을 떠나는 상인들이 늘어나면서 손님들 발길도 점점 줄어드는 추세다.

2천원 배추 한 포기를 사가는 중년 부부(2021.1.4) / 사진.평화뉴스 김두영 수습기자
2천원 배추 한 포기를 사가는 중년 부부(2021.1.4) / 사진.평화뉴스 김두영 수습기자

상인 조모(76)씨는 이날 새벽 5시부터 장에 나왔다. 남편과 함께 집에서 직접 기른 콩나물을 팔기 위해서다. 많이 못 버는 날은 평균 6천원, 많이 벌어도 1만원 남짓 손에 쥔다. 조씨는 "자식이 있어도 각자 살기가 바빠서 서로 돌아볼 새 없다"며 "이거라도 해야지 먹고 살 수 있다"고 말했다.

조씨의 새해 소망은 "다시 좋아질 날이 오는 것"이다. 그는 "코로나로 아무것도 못하고 집에만 있으니 더 우울하고 힘들었다"면서 "장에 나와서 상인들과 손님들을 보니까 그나마 괜찮다"고 했다.

손님이 조씨 노점에 와서 콩나물을 사갔다. 조씨는 콩나물을 봉지에 담으며 "사람도 없는데 많이 드리께예"라고 했다. 손님도 이날 장에서 산 바나나 중 몇 개를 나눠서 조씨에게 전했다.

단골 손님이 많다보니 서로 이름은 몰라도 얼굴을 기억하는 이들이 많다. 달성공원 인근 동네 주민 이모(65)씨도 이날 장에 왔다. 그는 "상인들이 후하게 잘 챙겨주고 저렴해서 자주 온다"고 말했다.

15년 넘게 새벽시장에서 차를 파는 상인의 노점(2021.1.4) / 사진.평화뉴스 김두영 수습기자
15년 넘게 새벽시장에서 차를 파는 상인의 노점(2021.1.4) / 사진.평화뉴스 김두영 수습기자

지난 2005년부터 새벽시장에서 쌍화차, 천마차, 콩국 등을 판 60대 중반의 한 상인은 "코로나 때문에 손님이 줄면서 안 나오는 상인이 늘었다"며 "지난 주 장사를 못해 더 그런 것 같다"고 설명했다.

포장마차도 열렸다. 건설노동자 한모(67)씨는 "일을 못 구하는 날에 여기서 한 잔 마시며 속을 달랜다"고 했다. 인근 동네 주민도 "다들 어려운 때 새벽시장에 오면 작은 위로를 받는 기분"이라고 했다.

채소를 파는 전모(63)씨는 트럭에 채소를 가득 싣고 새벽 장에 왔다. 팔달시장에서 배추, 무, 파 등을 가져와 15년째 새벽시장에서 팔고 있다. 전씨는 "1,700원에 가져와 2,000원에 판다"면서 "남는 게 없지만 생계를 위해 안 할 수 없다"고 했다. 한 부부가 트럭에서 배추 2천원치를 사갔다. 매일 달성공원으로 운동을 나오는 중년 부부다. 이들은 "주로 새벽시장에서 반찬거리를 사간다"고 말했다.

2천원, 3천원 가격표가 붙은 채소들이 도로에 펼쳐졌다(2021.1.4) / 사진.평화뉴스 김두영 수습기자
2천원, 3천원 가격표가 붙은 채소들이 도로에 펼쳐졌다(2021.1.4) / 사진.평화뉴스 김두영 수습기자
손님과 상인이 채소값을 흥정하고 있다(2021.1.4) / 사진.평화뉴스 김두영 수습기자
손님과 상인이 채소값을 흥정하고 있다(2021.1.4) / 사진.평화뉴스 김두영 수습기자

수산물을 팔고 있는 한 상인은 매천시장에서 새벽 4시 30분쯤 물건을 가져와 새벽 5시 20분부터 달성공원 새벽시장에서 장을 폈다. 오징어를 사러 온 단골 손님이 흥정을 하자 "원래 비싼데 이만하면 싸다"고 말했다. 뒤이어 동태를 사가는 손님에게는 홍합을 한 움큼 더 넣어줬다.

동태를 손질하고 있는 상인(2021.1.4) / 사진.평화뉴스 김두영 수습기자
동태를 손질하고 있는 상인(2021.1.4) / 사진.평화뉴스 김두영 수습기자
오전 9시 상인들과 손님들이 떠난 새벽시장 거리(2021.1.4) / 사진.평화뉴스 김두영 수습기자
오전 9시 상인들과 손님들이 떠난 새벽시장 거리(2021.1.4) / 사진.평화뉴스 김두영 수습기자

동이 트면서 주변이 환해졌다. 길을 오가는 사람들의 이동이 많아졌다. 차량 통행도 늘었다. 한 상인은 "생물은 때가 지나면 못쓴다"며 바삐 움직여 장을 접기 시작했다. 오전 8시 30분 완전한 아침이 됐다. 상인들은 매대를 정리했다. 상인들이 버린 종이박스를 가져가기 위해 기다리던 폐지 줍는 파지(破紙) 할머니 수레도 가득 찼다. 새벽의 분주했던 삶의 현장은 순식간에 사라졌고 거리는 텅 비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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