갑진년, 정치개혁의 '값진 해'가 되기를

평화뉴스 김윤상 칼럼니스트 다른 기사 보기
  • 입력 2024.01.01 01:08
  • 수정 2024.02.27 21:32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김윤상 칼럼] '연동형 비례대표제 + 시민의회'의 물꼬를 트자


생물의 제1차적 관심사는 자기 생존이고, 인간도 예외가 아니다. <교수신문>이 12월에 올해의 사자성어로 ‘견리망의’(見利忘義)를 선정했지만 별다른 감흥이 느껴지지 않는 것도 그 때문일 것이다. 하지만 사회제도와 정책을 국민의 선택에 따라 결정하게 되어 있는 민주국가가 제대로 작동하려면, 국민이 사적 이해관계에서 벗어나서 판단한다는 전제가 충족되어야 한다.

사적 이해관계를 초월할 수 있을까?

이런 전제를 충족하기 위한 장치로 학계에서는 철학자 존 롤스(John Rawls, 1921~2002)가 제시한 ‘무지의 베일’(veil of ignorance)이라는 가정이 잘 알려져 있다. 제도 선택에 참여하는 모든 사람이 자신의 개성과 처지를 모른다는 가정이다. 사적 손익 판단을 할 수 없으므로 만장일치도 가능하다.(참고. <탄생 100주년 존 롤스의 토지 정의> 2021/10/4, 평화뉴스>)

‘무지의 베일’은 학술적으로 매력 있는 가정이지만 현실과 거리가 너무 멀다. 그래서 필자는 국민이 각자 자신의 개성과 처지를 알고 있는 상황에서는 어떤 제도를 선택하게 될지 가상의 실험을 해 보았다. 그런데 의외로, 타인의 손해에 둔감하고 자신의 이익을 앞세우는 ‘이기적’인 국민이 많은 상황에서도 약육강식의 나쁜 제도를 선택하는 비율은 극히 낮다는 사실을 발견하였다. (참고. <민주정이 '중우정치'라고?>, 2020/12/7, 평화뉴스)
 

제411회 국회(임시회) 제3차 본회의(2023.12.28). '대통령 배우자 김건희의 도이치모터스 주가조작 의혹 진상규명을 위한 특별검사 임명 등에 관한 법률안' 토론 모습 / 사진 출처. 국회 홈페이지, 영상회의록 방송 캡처
제411회 국회(임시회) 제3차 본회의(2023.12.28). '대통령 배우자 김건희의 도이치모터스 주가조작 의혹 진상규명을 위한 특별검사 임명 등에 관한 법률안' 토론 모습 / 사진 출처. 국회 홈페이지, 영상회의록 방송 캡처


희망적인 발견이기는 하지만, 필자의 가상 실험에도 한계가 있다. 좋은 ‘제도’를 선택한다고 해도, 막상 구체적인 ‘사안’이 닥치면 사익을 앞세우는 수가 적지 않은 게 현실이기 때문이다. 자기 지역의 쓰레기 매립장 건설을 한사코 반대하는 님비(NIMBY) 현상, 부동산 가격을 올리는 개발사업을 서로 유치하려고 경쟁하는 핌피(PIMFY) 현상은 드물지 않다. 그렇다면 어떻게 할 것인가?

'이해충돌 + 대표성 부족'의 해법은?

공직자의 경우에 적용되는 해법으로는 ‘공직자의 이해충돌 방지법’이 있다. 법의 목적은 “공직자의 직무수행과 관련한 사적 이익 추구를 금지함으로써 공직자의 직무수행 중 발생할 수 있는 이해충돌을 방지”(제1조)하는 데 있다. 적용 대상 공직자는 입법·사법·행정부와 지방자치단체 공무원, 공공기관 임직원 등 약 200만 명이다. 또 ‘국회법’ 제32조의5에는 국회의원도 이해충돌 우려가 있는 안건에 대한 표결 및 발언의 회피를 신청하도록 되어 있다.

이 두 법률의 취지에 공감하지 않는 국민은 없을 것이다. 그런데 불과 석 달 앞으로 다가온 국회의원 선거제도에 대해 생각해보자. 국회의원 선거 방식은 국회의원의 이해관계와 가장 예민하게 충돌하는 안건이다. 위 조문의 취지를 살리려면 국회의원은 국회의원 선거법 관련 안건에 관여해서는 안 된다. 그런데도 헌법은 모든 법률제정권을 국회에 부여하고 있다.

이해충돌 외의 문제도 있다. 현재와 같은 방식으로 구성되는 국회는 국민 대표성이 매우 부족하다. 가장 이해하기 쉬운 재산을 보자. 최근 30년 간의 국회의원 재산을 전수 분석한 <뉴스타파>에 따르면, 국회의원 70.6%는 한국 상위 10% 부자다. 국회의원 절반은 다주택자이고 무주택자는 11%에 불과하다. 국회의원 중 강남 3구 집주인이 평균 78명(26%)이나 된다. 심지어 본인 지역구에는 전세로 살면서 강남에 주택을 소유하는 사람도 적지 않다. <뉴스타파>는 “국회의원 재산은 이념 성향을 결정짓는 중요한 변수”라고 진단한다. 이렇게 국민과 동떨어진 국회의원이 어떻게 국민을 대표할 수 있나?
 

사진 출처. [주간 뉴스타파] 부자가 지배하는 나라... 공직자 재산 30년 치 분석(2023.11.23) 방송 캡처
사진 출처. [주간 뉴스타파] 부자가 지배하는 나라... 공직자 재산 30년 치 분석(2023.11.23) 방송 캡처
사진 출처. [주간 뉴스타파] 부자가 지배하는 나라... 공직자 재산 30년 치 분석(2023.11.23) 방송 캡처
사진 출처. [주간 뉴스타파] 부자가 지배하는 나라... 공직자 재산 30년 치 분석(2023.11.23) 방송 캡처


새해 갑진년이 '값진 해'가 되기를

그럼 ‘이해충돌 + 대표성 부족’이라는 2중의 문제를 어떻게 해결할 것인가? 현행 소선거구 중심의 선거제도를 연동형 비례대표제로 바꾸면 대표성은 많이 개선된다. 그런데 국회를 틀어쥐고 있는 거대 양당은 기득권 지키기에 유리한 현행 선거제도를 포기하지 않으려고 한다. 또, 설령 완전한 연동형 비례대표제를 도입하더라도 이해충돌 문제는 해결되지 않는다. 그래서 필자는 ‘선거의회’ 외에 일반 시민 중에서 추첨으로 뽑아 구성하는 ‘시민의회’를 두자고 제안해왔다. (참고. <윤석열 1년, 국민의 실망>, 2023/5/1 평화뉴스)

선거의회와 시민의회가 병존하면 보통의 안건은 선거의회에서 처리하되, 선거의회의 이해관계가 걸린 안건, 선거의회에서 의견이 심히 엇갈리는 안건, 국민의 상식을 반영해야 하는 중요 안건은 시민의회에서 다루도록 한다. 이런 안건에 대해 시민의회는 전문가와 시민단체 등이 제공하는 정보를 바탕으로 충분한 숙의를 거쳐 결정한다. 시민의회 의원도 국회의원처럼, 이해충돌 우려가 있는 안건에 대한 표결 및 발언을 금지해야 한다.

민주주의는 미완성이고, 진화 과정은 매우 느리며, 낡은 헌법이 민주주의 발전을 가로막고 있다. 2024년 ‘갑진년’(甲辰年)이 정치개혁의 물꼬를 트는 ‘값진 해’가 되기를 희망한다. 우선은 선거법을 개정하여 연동형 비례대표제를 도입하고 나아가서는 시민의회 도입을 위한 헌법 개정 논의가 시작되면 좋겠다.

 

 

 

 

 

 


 [김윤상 칼럼 135]
 김윤상 / 자유업 학자, 경북대 명예교수. 평화뉴스 칼럼니스트

 

 

 

 

 

저작권자 © 평화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키워드
#김윤상
관련기사
개의 댓글
0 / 400
댓글 정렬
BEST댓글
BEST 댓글 답글과 추천수를 합산하여 자동으로 노출됩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수정
댓글 수정은 작성 후 1분내에만 가능합니다.
/ 400
내 댓글 모음
당신이 좋아할 만한 기사
지금 주목 받고 있어요
모바일버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