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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 10월항쟁 유족의 새해소망..."역사 왜곡할 근거 없어, 영원한 진상규명"

평화뉴스 김영화 기자
  • 입력 2023.01.03 20:05
  • 수정 2024.05.22 11: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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채영희 이사장 "국가폭력 자명, 왜곡할 어떤 근거도 없다"
유족 거의 80~90대 "2기 진화위, 빠른 조사·협조...신고 상설화"
3월 유해발굴 성과 희망, 대구시에 '트라우마 치료' 지원 호소


대구 10월항쟁 유족의 2023년 새해소망은 '진실규명'과 '역사왜곡 근절'이다. 

1946년 국가 폭력에 의해 수많은 민간인이 희생된 10월항쟁은 77년이라는 긴 세월이 지난 지금까지 온전한 진상이 밝혀지지 않았다. 희생자들의 유골조차 제대로 발굴하지 못하고 있다. 

일부 사실이 인정돼 진실규명 결정이 나고, 국가로부터 보상도 이뤄졌지만, 여전히 많은 유족들은 아버지·어머니의 '명예회복'을 위해 힘겹게 외로운 싸움을 이어가고 있다. 
 

대구 10월항쟁유족회 채영희 이사장(2021.10.1) / 사진.평화뉴스 김영화 기자
대구 10월항쟁유족회 채영희 이사장(2021.10.1) / 사진.평화뉴스 김영화 기자


구순, 팔순 자녀들은 연초 다시 진실을 희망했다. 윤석열 정부에서라도 진실이 드러나길 바랬다. 새해를 맞을 때마다 작은 실마리를 찾길 바랬다. 10월항쟁으로부터 77번째 맞는 올해도 소망은 변함없다. 

채영희(78) (사)10월항쟁유족회 이사장은 2일 <평화뉴스>와 통화에서 "온전한 진실규명이 새해소망"이라며 "윤석열 정부가 힘을 다해 이번에는 진상을 밝혀주길 바란다"고 했다. 채 이사장은 10월항쟁 당시 아버지를 잃었다. 작년 12월 77년 만에 국가기록원에서 아버지의 마지막 흔적을 찾을 수 있었다.  

하지만 현실은 녹록치 않다. 채 이사장은 "여전히 10월항쟁에 대해서 잘못된 발언과 판단을 하는 사람들이 많다"며 "77년간 부정당하고  숨어서 살았는데 그런 이들이 아직도 존재한다"고 억울해했다.  
 

10월항쟁 위령탑에 적힌 민간인 희생자 758명의 이름(2021.10.1) / 사진.평화뉴스 김영화 기자
10월항쟁 위령탑에 적힌 민간인 희생자 758명의 이름(2021.10.1) / 사진.평화뉴스 김영화 기자


이어 "10월 대구 민중항쟁을 국가가 폭력적으로, 피의 학살로 억압한 것은 이미 밝혀진 자명한 사실"이라며 "지금에 와서 그 역사를 왜곡할 어떤 근거도 없다. 더 이상 왜곡은 없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특히 "윤석열 대통령의 캐치프레이즈가 '공정과 상식'아니냐"면서 "같은 피를 나눈 민족의 아픔에 대해서 상식에 어긋나는 역사 왜곡을 하는 이들이 없도록 윤 대통령도 공감해달라"고 호소했다.   

유족의 고령화에 따른 우려와 함께 국가의 빠른 진상규명을 원했다. 10월항쟁유족회 회원 중 생존 유족은 100여명 남짓이다. 최연소 유족이 74세, 거의 8090이다. 생존한 고인의 부인도 고작 4명이다.  
 

채 이사장과 정근식 전 2기 진화위원장의 면담(2021.11.26) / 사진.평화뉴스 김영화 기자
채 이사장과 정근식 전 2기 진화위원장의 면담(2021.11.26) / 사진.평화뉴스 김영화 기자


"자식들이 다 팔순, 구순 고령이라서 이제는 부정당하고 왜곡당한 세월을 진실규명 할 날이 얼마 남지 않았다. 77년이라는 긴 세월 국가 폭력으로 희생당한 아버지인데도 20대 아낙들 우리 엄마들과 그 자식들은 빨갱이 자식, 빨갱이 아낙이라는 주홍글씨를 달고 살았다. 올해 모든 것이 해결된다고 해도 너무 늦었다. 하지만 이제라도 제발 해결해야 한다. 우리에게 더 이상 시간이 없다" 

2기 진실·화해를 위한 과거사정리위원회(위원장 김광동)의 더딘 조사에 대한 쓴소리도 했다. 

"90살 넘은 어른들을 증인대에 세우고, 또 족보를 뒤지고, 1기에 이어 2기에서 또 같은 것을 반복하고 있다. (증인을) 찾아도 요양원에 있거나 치매에 걸렸다. 그리고 조사가 지연되니 증인들이 돌아가시고 있다. 속도를 내서 해야 한다. 유족의 마음으로는 진화위 조사 속도가 너무 답답할 따름이다"
 

대구 가창골 10월항쟁 민간인 학살 유해 매장 추정지(2021.11.26) / 사진.평화뉴스 김영화 기자
대구 가창골 10월항쟁 민간인 학살 유해 매장 추정지(2021.11.26) / 사진.평화뉴스 김영화 기자


10월항쟁 유족의 진실규명 신청 전체 86건 중 26건에 대해 2기 진화위는 지난해 12월 '진실규명' 결정을 내렸다. 국가 폭력을 인정했다. 하지만 나머지 60건은 여전히 조사 중이다. 한국전쟁 전후 민간인 학살, 유신 국가 폭력 사건까지 합하면 모두 2만여건에 가까운 신청이 2기 진화위에 몰렸다. 

국가 폭력 사건에 있어서 신고 기한을 없애야 한다는 제안도 했다. 

"신고 기한이 없어져야 한다. 잠깐 시한을 두고 신고를 받고 또 문을 닫고. 이게 말이 안된다. 다른 어떤 나라도 이렇지 않다. 국가 폭력으로 희생된 민간인 사건에 대해서는 영원히 진상규명을 해 진실을 밝혀야 한다. 신고 창구를 상설로 만들어 계속 조사하고 억울한 피해자가 없도록 해야 한다"
 

채 이사장이 위령제에서 손수건으로 눈물을 닦고 있다(2022.10.1) / 사진.평화뉴스 정준민 인턴기자
채 이사장이 위령제에서 손수건으로 눈물을 닦고 있다(2022.10.1) / 사진.평화뉴스 정준민 인턴기자


유해발굴에 대한 희망도 내비쳤다. 77년 전 군경에 의해 여기저기로 끌려가 생사도 알지 못하는 아버지와 어머니. 시신이 어디에 묻혔는지 알 수 없다. 1기 진화위 때 의심이 드는 몇몇 장소에서 발굴 작업을 했지만 성과는 없었다. 그러던 중 작년 말 유력한 곳을 찾았다. 올 봄 재시도할 예정이다.  

"가창군 용계리 위령탑 위쪽에 소문이 있어서 유해발굴 작업을 하기로 했다. 개발재한 구역이라 작은 문제가 있기는 한데, 일단 땅이 녹는 올 봄에 다시 발굴 작업을 시작한다. 실끈이라도 잡고, 혹시하는 마음에 또 삽을 뜬다. 이번에는 유해발굴에서 좋은 소식이 들리길 바란다"  

홍준표 대구시장에게 바라는 것도 있었다. 10월항쟁 유족에 대한 트라우마 치료 지원이다. 
 

10월항쟁 위령탑...희생자들을 기리는 조형물(2021.10.1) / 사진.평화뉴스 김영화 기자
10월항쟁 위령탑...희생자들을 기리는 조형물(2021.10.1) / 사진.평화뉴스 김영화 기자


서울, 광주, 제주시의 경우 5.18과 4.3 등 국가 폭력 관련 사건에 대해 지자체가 인권센터 등에서 관련자와 유족에 대한 트라우마 치료를 지원한다. 아예 트라우마 치료 센터를 설립하기도 했다. 하지만 대구시의 경우 10월항쟁 위령탑을 지은 것 이외에 유족에 대한 트라우마 치료 지원은 없다. 그 탓에 고령자 유족들은 다른 지자체에서 온 상담사들이 트라우마 치료를 해주거나 상담을 해주고 있다. 

"한맺힌 삶이다. 아직도 손가락질 받는 게 무서워서 자기가 피해자라고 밝히는 걸 무서워하는 사람들이 많다. 이런 사람들이 혼자 끙끙 앓다가 죽고, 너무 답답해서 다른 지역 상담사들을 붙잡고 운다. 다른 시도에서 온 상담사들도 유족의 이야기를 듣고 운다. 큰 걸 바라지 않는다. 트라우마 치료 센터를 지어달라는 것도 아니다. 유족들이 77년 아픔을 터놓고 이야기할 수 있는 공간을 만들어달라. 소통과 대화를 하는 것만으로 아픔이 덜하다. 다른 지자체처럼 대구시 차원에서 나서달라" 

진화위 조사에 따르면, 해방 후 1946년 대구 시민들은 미군정 친일 관리(官吏) 고용·식량공출 시행을 비판하며 같은 해 9월 총파업을 했다. 10월 1일부터 쌀을 달라며 항쟁했지만 미군정과 경찰은 계엄령을 선포하고 무력진압했다. 가담자·국민보도연맹원·대구형무소 수감자는 전쟁 후 군경에 의해 달성군 가창면·경산 코발트광산·칠곡 신동재 등에서 집단사살됐다. 유족들 요구로 유골수색, 진상규명 작업이 동시에 이뤄졌지만 이명박·박근혜 정부에서 과거사 사업을 중단해 10년 넘게 진상규명이 멈췄다. 하지만 작년 6월 '과거사법 일부개정 법률안'이 국회 본회의를 통과하면서 과거사의 조사 기간을 3년으로 정하고 이어서 1년 더 연장할 수 있게 했다. 때문에 현재 2기 진화위가 출범해 재조사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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