절학무우(絶學無憂)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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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70만이 넘는 수험생들이 길게 보면 12년을, 짧게 보면 고등학교 3년 동안 배우고 (거의 대부분을 학원에서), 또 익히고 외운 지식을 평가하는 시험이 끝난 지도 한 달이 지났습니다. ‘수시로 지원했다 수시로 떨어지고 수시로 상처받는’ 수시입학 전형도 끝나고, 로또가 될지 치명타가 될지 알 수 없는 정시 한 방!이 기다리고 있는 모양입니다. 그 긴 여정이 내년 2 월까지 펼쳐지겠지요.
 
 “배우고 또 때맞춰 익히면 기쁘지 아니한가!”

논어 첫 머리에 나오는 말로 우리나라에서는 초등학교 고학년 수준만 되어도 입에 달고 사는 말입니다. 공자가 살던 시절이나 지금이나 거친 들판에서 비바람 맞으며 힘든 일을 하는 것보다야 따뜻한 아랫목에서 책상다리한 채 배우고 익히는 것이 더 즐거운 일인 것만은 변함 없습니다. 게다가 공자가 살던 시절에는 배우고 익히는 일이 아무나 할 수 있는 것도 아닌, 소수의 특권층만 누릴 수 있는 특권이었고 그 공부를 통해 입신양명의 기회를 잡을 수도 있었으니 공부가 즐겁지 않으면 오히려 이상한 일이겠지요.

 유가의 선비들이 배우고 익히는(學習) 목적을 제일 먼저 자신의 수신(修身)에 두고 있습니다. 그리고 더 큰 공부(大學)를 하는 사람들이 나아갈 길(大學之道)을 “밝은 덕을 밝히고, 백성들을 가까이하며, 지극한 선에 이르는 것”이라고는 하지만, 궁극적인 목표는 입신양면과 출세였습니다. 유가의 선비들에 대해 “문서의 해독에 온 정열을 기울이고 백발이 될 때까지 경전을 연구하는 것은 대부분 자신을 정신적으로 충실하게 하고 개성을 풍부하게 하며 시야를 확장시키기 위해서가 아니라, 열조열종(列祖列宗)에게 부끄럽지 않게 하기 위해서이며 가문을 빛내기 위”한 것일 뿐이라고 평가하는 시각도 있습니다.

 게다가 그 경전이란 것이 미래지향적인 가치를 담고 있는 것도 아니고 지배계급이 만들어 놓은 질서를 찬양한다거나 신화나 전설에 의해 영웅으로 만들어져 있는 성왕(聖王)의 말씀과 제도에 대한 맹목적 배움과 익힘(學習)입니다. 따라서 유가 선비들의 공부는 그 당시에 출세, 성공한 사람들의 말과 글을, 출세해보려고 노력하는 사람들이 따라 배우는 것에 불과한 것이었을 지도 모릅니다. 서구사회에서 자유의지를 가진 시민, 또는 귀족계급 또는 지배계급에 저항할 수 있는 지적 수준을 갖춘 교양인과는 속성이 전혀 다른 것이지요. 그나마 선비들의 인적 기반은 가문(家門)에 뿌리를 둔 사적 인연이 가장 큰 힘을 발휘합니다. 

 그 폐해는 사회 전반에 퇴영적인 복고주의를 부추기는 한편 집안의 연줄을 동원한 사적인 힘으로 법과 공조직을 무력화하고, 학문에서도 관료적 습성이 짙게 배여 있게 만듭니다. 유교 국가였던 조선왕조가 결국 나라를 잃는 치욕을 당했던 것이 유가적 교육관과 교육체계가 적지 않은 역할을 했을 것입니다.

 그로부터 100년이 지난 지금 유교의 흔적들은 박물관에 갇혀 있는지는 모르겠으나 교육에 관한 유가적 가치는 조금도 변하지 않은 듯합니다. 어릴 때부터 가문의 명예를 위해, 그리고 출세하고 성공하기 위해 목숨을 걸다시피 하면서 공부하는 것도 똑 같고, 거친 들판에서 비바람 맞으며 힘든 일을 기피하는 것, 그런 일을 하는 사람을 차별하는 것도 똑 같습니다. 단지 교과 과목이  <논어, 맹자, 대학, 중용>에서 <언수외탐>으로 바뀐 것뿐이지요.

 노자는 <도덕경> 첫 머리에서 유가가 말하는 도(道)는 참도(常道)가 아니며 유가의 공부로 얻은 명성(名)은 참 명성(常名)이 아니라 말합니다. 유가의 출세지향적 가치관과 학문에 대한 경멸로 도덕경의 첫 장을 여는 것이지요. 그리고는 “배우기를 중단하라, 그러면 근심이 없어질 것”이라 말합니다.(<도덕경>, 20장 絶學無憂).

  하지만 보통 사람들이 쉽게 배우기를 중단하기는 어렵습니다. 그 이유는 배우고 익히는 일이 즐거워서가 아니라 두려움 때문입니다. “세상 사람들 모두 여유있어 보이는데, 홀로 빈털터리 같고”, “세상 사람들은 다 쓸모가 있는데, 혼자 우둔하고 촌스러운” 듯 느껴지기 때문입니다. 공자, 노자가 살던 시절에도 그랬는데 가방끈으로 수입은 물론 지위까지 결정되는 이 시대에는 더 말할 필요도 없겠지요.

<부산일보> 2010년 11월 23일자 6면
<부산일보> 2010년 11월 23일자 6면

 지옥 같은 대한민국의 입시경쟁에서 이겨서 축하 받을 수 있는 사람들은 언제나 상위 1% 내외에 불과한 것 같습니다. 모든 학생들이 아무리(학원에서)열심히 배우고 익혀도 축하받을 수 있는 상위의 숫자는 늘어나지 않을 것입니다. 그런데도 온 나라의 중고등학생들이 배우고 익히는, 전혀 즐겁지 않은 일들을 밤낮없이 되풀이하고 있는 이유는 상위 1%에 대한 기대보다는 배움을 끊었을 때 스스로 감당해야 할 자신의 처지에 대한 막연한 두려움 탓이 아닐까요? 그 두려움을 부추기는 한편, 상위 1%에 대한 막연한 환상을 퍼트리면서 이 나라의 교육은 누가 함부로 손 댈 수 없는 거대한 산업이 되어버렸습니다. 침체된 경제를 살리는 성장동력이 되어 있고, 이 시대의 교육자들은 교육을 하는 것이 아니라 수익을 창출해야 하는 산업역군으로 변신한 것 같습니다. 

 어린 학생들이 배움을 끊었을 때의 두려움을 이겨내는 힘...나는 틀렸다! 가 아니라 “다른 사람들과 다르다(我獨異於人)”라는 자신감과 용기를 심어주는 일... 이 일은 이 시대의 교육에 절망하고 있는 어른들이 감당해야 될 과제이겠지요.
 
 
[연재] - <시,서,화가 있는 집 - 서류당 38 > 글 / 김진국


<시, 서, 화가 있는 집 - 서류당> 연재입니다. 서류당(湑榴堂)은 '이슬 머금은 석류나무가 있는 집'으로,
시 도 있고 글도 있고 그림도 있어 편안하면서도 자유롭게 수다 떨 수 있는 그런 조용하고 아담한 집을 뜻합니다.
이 연재는 매주 월요일 김진국(의사. 신경과 전문의) 선생님께서 쓰십니다. 많은 관심 부탁드립니다.  -  평화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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