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뭐 쓸데없는 걸 묻노"...서문시장의 싸늘한 설 민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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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님은 줄고 지갑은 열리지 않고..."총선? 뽑아줘봤자...진박ㆍ친박 그게 그거"


"이건 분이 많아서 더 달아요. 이건 국산이라 좀 비쌉니다. 이건 싸요. 12,000원에 해줄게요."

설 명절을 일주일 앞둔 2월 1일 오후. 대구 최대 전통시장인 서문시장에서 10년째 과일을 팔고 있는 정환(65.대명동)씨는 허탈함을 감추지 못한 채 자리에 앉았다. 흥정을 하고 담기까지 했는데 다음에 온다며 떠나는 손님 때문이다. 옆에 있던 부인 최경화(61)씨도 "나는 애가 타게 설명해도 항상 이런 식"이라며 비닐봉지에 넣었던 곶감을 빼서 가판에 정리했다.

정씨는 "지난해 설 명절에도 이렇지는 않았다. 설이라고 사과, 배, 감, 대추, 밤. 다 갖다놨지만 어떻게 된 일인지 평소보다 더 안 나가는 것 같다"며 "장을 보러 온 사람들은 주말인 전날에 다녀갔다. 이번 주는 내내 이럴 것"이라고 체념한 듯 말했다.

설 대목으로 분주해야 할 시장 상인들은 저마다 한숨을 쉬었다. 작년에 비해 손님들이 없기도 하지만 좀처럼 지갑을 열지 않기 때문이다. 상인들은 도매가가 오르는 것을 모르고 전통시장은 무조건 싸다고만 생각해 조금만 비싸게 부르면 뒤도 안돌아보고 간다고 입을 모았다. 2지구 앞 좌판에서 나물과 밤, 대추, 은행을 파는 이옥분(75.고산동)씨는 "밤 한 포대에 3~4만원이 올랐다. 한 되에 7천원은 받아야 나도 먹고 사는데 사람들이 6천원이라 해도 안 산다. 어쩔 수 없이 5천원에 판다"며 한탄했다.

"밤 도매가격이 올라도 제 값 받고 팔기 힘들다"는 이옥분(75)씨(2016.2.1.서문시장) / 사진.평화뉴스 김지연 인턴기자
"밤 도매가격이 올라도 제 값 받고 팔기 힘들다"는 이옥분(75)씨(2016.2.1.서문시장) / 사진.평화뉴스 김지연 인턴기자

장을 보러 나온 이모(54.태전동)씨는 제사상에 쓸 돔배기 때문에 상인과 실랑이를 벌이고 있었다. 상인이 크고 흠이 없는 좋은 상품이라며 3마리 만원을 부르자 이씨는 갈라진 가자미를 포함해 5마리 1만2천원에 달라고 흥정했다. 천원이라도 깎으려는 손님과 양보 할 수 없는 상인 사이에 불꽃 튀는 신경전이 있었다. 결국 가자미는 5마리 1만4천원으로 타결됐다.

이씨는 "과일이나 나물, 떡은 아직 안사서 물가를 모르겠다. 가자미나 조기 크기가 조금만 차이 나도 값이 확 비싸지는 것 같다"고 말했다. 총선을 앞두고 국회의원과 선거 분위기를 묻자 "정치는 관심 없다. 내가 잘 아는거 좀 물어봐라"고 웃었다.

설을 일주일 앞둔 서문시장 생선 좌판. 손님은 거의 없었다.(2016.2.1.서문시장) / 사진.평화뉴스 김지연 인턴기자
설을 일주일 앞둔 서문시장 생선 좌판. 손님은 거의 없었다.(2016.2.1.서문시장) / 사진.평화뉴스 김지연 인턴기자

사무실에서 일하고 있다가 잠시 설에 쓸 건어물을 사러 나왔다는 박정숙(65.감삼동)씨도 "퇴근하고 집에 가면 다 문 닫아서 하루하루 조금씩 사 모으고 있다"고 했다. 박씨도 올해 설 물가는 비슷한 것으로 봤지만 주변만 봐도 경기는 안 좋아졌고 인심은 야박해졌다는 것을 느낀다고 전했다.

5지구 청과시장 안에서 아버지 가게를 이어받아 55년째 과일을 팔고 있는 김진호(65.송현동)씨는"6~7년 전부터 장사가 안 돼 하나, 둘 떠나 과일가게는 4~5가게밖에 안 남았다"고 전했다. 서문시장 5지구는 특히 지하철 3호선이 개통되고 난 후 손님의 발길이 뚝 끊겼다. "올해는 작년에 1/10도 안 된다"며 "세 들어 온 가게는 진작 나갔다. 우리도 설만 지나고 처분할 예정"이라고 설명했다.

서문시장 5지구 청과시장. 6~7년전만 해도 건물 전체에 과일가게가 있었지만 지금은 4,5곳밖에 남지 않는다.(2016.2.1.서문시장) / 사진.평화뉴스 김지연 인턴기자
서문시장 5지구 청과시장. 6~7년전만 해도 건물 전체에 과일가게가 있었지만 지금은 4,5곳밖에 남지 않는다.(2016.2.1.서문시장) / 사진.평화뉴스 김지연 인턴기자

김씨는 4월 총선에 대해 "국회의원 뽑아놓으면 서울 가지 여기 있나. 새누리당 민주당 다 똑같다. 뭐 쓸데없는 걸 묻노. 뽑아줘봤자 우리한테 해준 게 뭔지 모르겠다"며 인상을 찌푸렸다. 또 "친박이니 진박이니 내가 봤을 때 그게 그거다"며 손사래를 치면서도 "그래도 이번에 김부겸이는 될 거다"며 말했다.

큰장네거리 앞에서 과자를 구워 파는 이모(61.율하동)씨는 "사람들이 많이 다니는 곳인데 요즘은 대목에도 사람 자체가 없다. 옛날에는 아주 바글바글했었다"고 전하면서 정치에 대한 질문에는 답하기 곤란해했다. 그렇지만 "유승민이 박근혜대통령과 대립하는 것은 큰 문제가 아니다. 맞는 말 한거라고 본다. 정치나 국회의원을 잘 모르지만 주변의 말을 들어보면 유승민이 될 것 같다"고 전했다.

2지구 지하 생선가게. 손님들이 설 대목을 맞아 문어, 돔배기, 동태를 찾고 있다.(2016.2.1.서문시장) / 사진.평화뉴스 김지연 인턴기자
2지구 지하 생선가게. 손님들이 설 대목을 맞아 문어, 돔배기, 동태를 찾고 있다.(2016.2.1.서문시장) / 사진.평화뉴스 김지연 인턴기자

박근혜 대통령에 대해서는 잘하지도, 못하지도 않다는 얘기가 많았다.
액세서리 상점을 하는 배모(남산동.62)씨는 박 대통령의 3년을 "밑에서 뒷받침을 해줘야 되는데 그게 잘 안돼서 안타깝다. 야당이 협조를 안 해주고 측근들이 손발이 안 맞았다"고 평가했다. 이어 "대구는 그래도 이왕이면 힘 쎈 여당이다"며 새누리당에 대한 지지를 보냈다. 그러나 최근 총선에서 박 대통령을 마케팅한 친박과 진박간의 갈등에 대해서는 "4년 전에는 먹혔는데 이제는 안 먹힐 것"이라고 말했다.

양말가게를 운영하는 신양섭(59.대신동)씨는 "박 대통령이 너무 성과를 이루려 급하게 추진하다보니 말이 많아졌다. 못 했다고는 할 수 없다"고 평가했다.

4월 총선에 대해서는 '대구의 변화'를 바라는 사람들과 '그래도 새누리당'이라는 인식이 갈렸다.

7년째 남성복 판매를 하는 전모(55.침산동)씨는 "야당이 1/3은 돼야 대구가 발전할 수 있다. 김부겸이 대구에서 당선돼야 대구가 변한다"고 말했다. 30년째 양말을 팔고 있는 신양섭(59.대신동)씨도 "야당을 지지하지는 않지만 이제는 바뀌어야 한다. 사람을 보고 뽑아야 대구가 발전할 수 있다"고 말했다.

반면 10년째 건어물 가게를 운영하고 있는 정종대(69.대명동)씨는 "야당이 못해서 대구에 못 뽑히는거다. 똑똑한 사람이면 뽑히지"라고 반박했다.

서문시장 5지구. 지나다니는 발길조차 뜸했다.(2016.2.1.서문시장) / 사진.평화뉴스 김지연 인턴기자
서문시장 5지구. 지나다니는 발길조차 뜸했다.(2016.2.1.서문시장) / 사진.평화뉴스 김지연 인턴기자

저녁 7시가 되자 서문시장의 시끌벅적했던 거리도 조용해지고 상점을 밝히는 불도 꺼졌다. 하루의 장사를 마치고 가게 정리를 하던 최종식(34.성내동)씨는 "최근 뉴스에 관심은 많아졌는데 바빠서 총선이나 선거는 잘 모른다"고 말하며 "그래도 김부겸은 안다. 대구에도 이제 야당이 당선됐으면 좋겠다"고 덧붙였다.

실제로 만난 상인이나 손님 대다수가 어려운 형편과 나아지지 않는 경기에 대해 한 목소리로 불만을 표현했다. 총선 예비후보 경쟁이 치열해지고 공천갈등이 드러나고 있지만 무관심했다. 실제로 이날 시장에서 만난 20명이상의 사람들 가운데 절반 이상이 내 삶과는 먼 이야기라며 말을 아꼈다. 정치에 대한 평가는 제각각이지만 정치인에 대한 평가는 대부분이 비슷했다. 시민들은 선거철만 되면 인사하러 오는 보여주기식의 행사가 아닌 체감으로 느낄 수 있는 정치를 바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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