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걷고 걸으며...거리에서 만난 우리 이웃들

평화뉴스 김영화 기자
  • 입력 2016.01.14 13: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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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후기] 새해 첫 새벽의 고단함과 신천을 건너는 애환, 청춘의 재기발랄과 향촌동의 할아버지...


2016년 새해가 어느덧 보름째 접어들었다. 모든 뉴스의 중심에는 4.13 총선이 있다. 여야 승패 전망, 예비후보자들의 성향, 지역별 특이성 등 총선 방향을 점치는 정치 뉴스가 홍수처럼 쏟아졌다. 평화뉴스는 한해 끝날의 밤과 새해 첫날 새벽 풍경, 새해에도 일상을 살아가는 평범한 서민들의 애환, 지역사회에서 자립을 위해 애쓰는 청년들의 모습, 소외된 노년들의 삶을 들여다봤다. 현장에서 삶을 이어가는 보통 사람들의 얘기를 중심으로 현장 기사를 취재하고 보도했다. 총선 역시 삶의 현장에 답이 있고, 평범한 이들의 삶에 초점을 놓고 치러져야 한다는 소박한 취지였다.

오늘도 신천을..."다리 건너는 게 대수야? 당신 같은 기자는 처음봐"

수성교를 건너며 신천을 바라보는 한 시민(2016.1.4) / 사진.평화뉴스 김영화 기자
수성교를 건너며 신천을 바라보는 한 시민(2016.1.4) / 사진.평화뉴스 김영화 기자

1월 4일. 대구 도심을 가로지르는 신천 다리 4곳에서 취재를 하겠다고 나섰다. 한 겨울 다리를 걸어 건너는 이들을 만나면 훈훈하고 아름다운(?) 기사가 될거라 생각했다. 예상은 첫 취재원부터 보기좋게 빗나갔다. 신천교에서 만난 한 아저씨. 술이 취해 점퍼도 없이 다리를 건너고 있었다. 나이도 이름도 알 수 없었다. 곁에 다가가 "추운 날씨에 왜 이 다리를 건너느냐"고 물었다. 아저씨는 "이 다리 30년 건넜다. 다리 건너는 게 대수야? 당신 같은 기자는 처음봐"라며 면박을 줬다.

낮술을 먹고 얼큰히 취해 소리를 지르며 다리를 건너던 아저씨. 자세한 사연을 듣지 못했지만 미워할 수 만 없는 분이었다. 신천교 취재는 그렇게 실패했다.

첫 취재가 꼬이니 다른 취재도 연달아 꼬였다. 신천교를 접고 동신교, 수성교, 대봉교에서 취재를 했다. 최대한 불쌍하게 보이는 작전을 썼다. 50%의 확률로 작전은 통했다. 퇴근하는 비정규직 학원강사, 친구 합격 소식에 씁쓸함을 안고 학원을 빠진 채 집으로 향하던 2년째 취준생, 갓난쟁이를 업고 퇴근하던 엄마, 24시 근무 후 자전거를 끌고 귀가하던 60대 아주머니. 걷다보면 답이 보일 거라는 마음으로 신천을 건너는 이들의 희망을 엿볼 수 있었다.

새해 나흘째에 수성교를 건너는 사람들(2016.1.4) / 사진.평화뉴스 김영화 기자
새해 나흘째에 수성교를 건너는 사람들(2016.1.4) / 사진.평화뉴스 김영화 기자
귀가를 위해 대봉교를 건너는 사람들(2016.1.4) / 사진.평화뉴스 김영화 기자
귀가를 위해 대봉교를 건너는 사람들(2016.1.4) / 사진.평화뉴스 김영화 기자

이런 얘기를 모아 5일 <오늘도 신천을 건너..."걷고 걸으면 길이 보이지 않을까요">라는 제목과 <한겨울 찬 바람에 취업과 가족을...일터에서 학원에서, 집으로 가는 길>이라는 부제로 2016년 기자의 첫 기사를 싣게 됐다. "수고했다", "잘봤다"는 독자들의 격려에 신천 다리의 취재난은 씻은 듯 사라졌다.   

청춘의 독립완생..."불쌍하게 쓰시면 안돼요. 재밌게 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6일에는 대구경북지역에서 가장 오래된 대구 동네 독립서점 '더폴락'의 젊은 공동대표들을 만났다. 32살 동갑내기 친구 5명은 4년째 독립출판물을 판매하는 서점을 운영해 오고 있다. 지난해 남구 대명동에서 중구 북성로로 옮긴 뒤 입소문을 타고 삼삼오오 젊은 친구들이 더 많이 찾아 오고 있다고 한다. 인터뷰 당일 서점 안에서 만나 한참 얘기를 나누는 도중이었다. 어디선가 뽕짝음악이 들려왔다. 소리는 점점 커졌다. 쿵쿵 소리도 났다. 더폴락 위 2층에 성인댄스홀 학원에서 들려오는 소리였다.

(왼쪽부터)최성, 김인혜, 손지희 대구 독립서점 더폴락 공동대표(2016.1.6) / 사진.평화뉴스 김영화 기자
(왼쪽부터)최성, 김인혜, 손지희 대구 독립서점 더폴락 공동대표(2016.1.6) / 사진.평화뉴스 김영화 기자
'취준2년' 독립출판물(2016.1.6) / 사진.평화뉴스 김영화 기자
'취준2년' 독립출판물(2016.1.6) / 사진.평화뉴스 김영화 기자

젊은 공동대표 3명은 "서점이랑 음악이 너무 안어울린다"며 장난스럽게 깔깔 거렸다. 문화에 목마른 2030세대를 위한 독립서점과 외로움을 달래기 위한 중년들의 댄스홀이 한 곳에 위치한다는 게 묘하게 어울렸다. 상업성만을 추구해 뭐든 신상으로 채우는 기존의 상업지구 공간과는 다른 정서가 곳곳에 묻어났다. 그러나 하위문화에만 머물러 있지 않은 재기발랄함과 세련됨이 독립서점의 완생을 위한  동력이 됐다. 대표들은 "불쌍하게 쓰시면 안돼요", "재밌게 하고 있습니다"라며 기자에게 당부했다. 

향촌동 할아버지..."젊은 사람이 뭘 안다고 우리에 대해 쓰노"

"니 몇 살이고, 고향이 어데고" 할아버지들은 대뜸 물었다. "사진 찍지 말라 캤다. 와 찍노. 지워라" 할아버지들은 벌컥 화를 냈다. "커피 묵고 가라. 한잔 마실래" 할아버지들은 시도 때도 없이 자판기 커피와 잔소주, 탁배기를 권했다. 11일 만난 향촌동 노년의 삶은 투박했지만 생각보다 정겨웠다.

향촌동, 교동, 경상감영공원, 포정동은 도심 번화가인 동성로 인근에 있지만 분위기는 정반대다. 흘러간 가요, 트로트, 구제옷, 실비집, 카바레, 성인댄스홀 등 30~40년 전의 모습을 안고 있다. 주류 세대도 할아버지와 할머니들이다. 그들을 만나고 싶었다. 멀리서 바라보면 낯설지만 다가가면 누군가의 미래인 그들의 삶을 보고 싶었다.

대구시 중구 향촌동 한 카바레 앞을 지나는 할아버지(2016.1.11) / 사진.평화뉴스 김영화 기자
대구시 중구 향촌동 한 카바레 앞을 지나는 할아버지(2016.1.11) / 사진.평화뉴스 김영화 기자
수세에 몰린 초나라, 경상감영공원에서 장기를 두는 할아버지들(2016.1.11) / 사진.평화뉴스 김영화 기자
수세에 몰린 초나라, 경상감영공원에서 장기를 두는 할아버지들(2016.1.11) / 사진.평화뉴스 김영화 기자

하루 동안 20여명의 어르신들을 만났다. 처음에는 "젊은 사람이 뭘 안다고 우리에 대해 쓰냐"며 성을 냈다. 그러나 끈질기게 따라붙자 불쌍해 보였든지 옆 자리를 내줬다. 맥주잔에 따른 1천원짜리 잔소주도 마시고, 음성으로 파는 300원짜리 개피담배와 장기도 구경했다. 할아버지들은 "집에서 천덕꾸러기 신세다", "죽을 때만 기다리며 향촌동에 온다"는 농담을 자주했다. 지금은 잊혀진 거리지만 한때 대구에서 가장 잘 나가던 향촌동. 어르신들의 허전한 마음과 곁을 달래주는 도피처이자 안식처, 아지트였다.
           
향촌동 할아버지들의 얘기는 다음 날 < 3백원 개비담배에 잔소주 탁배기...'향촌동' 노년의 삶>, <지하철 타고 경상감영공원서 장기 한 판, 낮술에 칠갑산 한 자락..."혼자가 싫어" 또 걸음하는 할아버지>라는 제목과 부제로, 평화뉴스 지면에 대문짝(?)만하게 실렸다. 메인 지면의 3분의 2를 사진으로 채우는 큰 기사였다.

<평화뉴스> 2016년 1월 12일자
<평화뉴스> 2016년 1월 12일자

기자는 이렇게 신천을 건너는 가장과 취준생들, 독립서점의 청춘들, 향촌동의 어르신들을 만나며 2016년 새해를 이어왔다. 앞서, 2015년 끝날과 2016년 첫날은 김지연 인턴기자가 동성로 일대에서 <한해 끝날의 밤과 새해 첫날의 새벽>을 취재했다. 

동성로에서...할머니 "자꾸 귀찮게 왜 오노', 취준생 "기자님이 부러워요"

김지연 기자는 한해의 끝날 밤과 새해의 첫날을 대구 중심 동성로에서 보내는 이들의 얘기를 듣기 위해 거리로 나섰다. 2015년 12월 31일 저녁 대구시 중구 중앙도서관에서 퇴근 이후 창업을 위해 공부를 하고 나오던 30대 두 아이의 아빠, 바로 옆 국채보상운동기념공원의 송년 타종행사 소리를 들으며 도서관 안에서 세무사시험을 준비하다 착잡한 마음으로 공부를 접고 집으로 향하던 20대 여성, 동성로에서 초코바 하나로 저녁을 때우고 수레 위에 폐지를 주워 하루 5천원을 벌어 생계를 이어가던 70대 할머니...

동성로에서 파지 줍는 할머니가 박스를 수레에 모은 뒤 쉬고 있다(2015.12.31) / 사진.평화뉴스 김지연 인턴기자
동성로에서 파지 줍는 할머니가 박스를 수레에 모은 뒤 쉬고 있다(2015.12.31) / 사진.평화뉴스 김지연 인턴기자
새해 2시간 전까지 중앙도서관에서 공부하고 나가는 시민(2015.12.31) / 사진.평화뉴스 김지연 인턴기자
새해 2시간 전까지 중앙도서관에서 공부하고 나가는 시민(2015.12.31) / 사진.평화뉴스 김지연 인턴기자

취재한 그의 말을 들어보면, 할머니는 기자에게 시큰둥했다. 30분을 설득해 겨우 인터뷰를 했는데,"자꾸 귀찮게 왜 오노" 몸서리 치다 나중에는 묻지도 않은 시시콜콜한 얘기도 털어놨다. 공무원을 준비하던 20대 취준생은 "밤 늦게 고생이 많아요"라며 오히려 기자를 위로하다 "기자님이 부러워요. 취직하고 싶어요"라며 짠한 말을 남기기도 했다.

새해 첫날 새벽 약령시장에서 쓰레기를 수거하는 아저씨(2016.1.1) / 사진.평화뉴스 김지연 인턴기자
새해 첫날 새벽 약령시장에서 쓰레기를 수거하는 아저씨(2016.1.1) / 사진.평화뉴스 김지연 인턴기자

1월 1일 새해 첫 날 새벽, 중앙로에서 유니폼을 입고 거리를 청소하던 60대 환경미화원 아저씨, 약령시장 골목에서 쓰레기를 차에 실어 묶던 재활용수거 용역업체 비정규직 아저씨. 모두 다 '그저 지난해보다 좀 더 잘 살기를' 바라는 소박한 마음으로 각자 위치에서 묵은 해를 보내고 새해를 맞았다.

앞산에서..."실패 3번 겪고 바닥까지 떨어져보니 올라가는 일만 있겠지요"

2015년 마지막 휴일인 12월 27일에는 김지연 기자가 대구 앞산을 오르며 시민들의 새해 소망을 담기도 했다. 대부분 "그저 가족들이 건강하길", "자식 잘되기를"를 바라는 부모의 마음이었고, "취직"과 "돈"을 바라는 취준생과 가장의 마음들이었다. 그 중에서도 "사업실패를 3번 겪고 바닥까지 떨어져보니 올라가는 일만 남았다. 성공하면 조금밖에 못 얻지만 실패하면 모든 걸 얻는다는 걸 깨달았다. 작은 것에 행복을 느낀다"는 어느 50대 아저씨의 말이 남달랐다. 이 기사는 <바닥친 고달픔도...새해엔 올라갈 일만 있겠지요>라는 제목으로 연말에 실렸다.

3년째 데이트코스로 앞산전망대를 찾는다는 윤정희, 전형철씨(2015.12.28) / 사진.평화뉴스 김지연 인턴기자
3년째 데이트코스로 앞산전망대를 찾는다는 윤정희, 전형철씨(2015.12.28) / 사진.평화뉴스 김지연 인턴기자
내년 입사를 앞두고 아버지와 앞산에 오른 황유빈씨(2015.12.28) / 사진.평화뉴스 김지연 인턴기자
내년 입사를 앞두고 아버지와 앞산에 오른 황유빈씨(2015.12.28) / 사진.평화뉴스 김지연 인턴기자

2016년 새해 첫 달도 벌써 중순을 지나고 있다. 신문 1면에는 연일 총선 여론조사와 정치권 뉴스가 빠지지 않는다. 그 속에 기자는 앞산을 오르는 시민들의 소망과, 한해 끝날과 새해 첫날을 공부와 일로 보내는 고단함과, 신천 다리를 건너가는 애환과, 재미있게 청춘을 꾸며가는 독립서점의 재기발람함과, 3백원 개비담배에 잔소주 탁배기에 장기 한 판과 칠갑산 노래 한 자락으로 하루를 보내는 향촌동 노년의 삶을 만났다. 특별한듯 남다르지 않는 이웃들이었다. 이번 총선 역시 이들 삶의 현장에 답이 있고, 평범한 이들의 삶을 위해 치러져야 한다는 소박한 취지가 더욱 간절해진 2016년 새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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