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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운 좋아야 사흘에 한 번"...초겨울 새벽 인력시장의 기다림
모닥불 사라진 대구 북비산네거리, 일거리 찾아 모이지만 한 숨만..."더 추워지면 어떡하나"
2015년 12월 03일 (목) 19:23:05 평화뉴스 김지연 인턴기자 pnnews@pn.or.kr

   
▲ 새벽 기다림...작업복과 작업화가 든 가방을 의자에 올려놓고 일자리를 기다리고 있다. 가로등에 거리는 훤하지만 아직 날이 밝기도 이른 새벽 5시 30분쯤의 기다림이다.(2015.12.2 북비산네거리) / 사진. 평화뉴스 김지연 인턴기자

12월 2일 새벽 4시 30분쯤, 대구의 대표적인 새벽 인력시장인 대구시 서구 비산동 북비산네거리. 벌써 5명이 일자리를 찾아 나와 있었다. 30분쯤이 지나자 사람들은 서른 명 가까이로 늘었다. 40대에서 70대까지 있었지만 50대 중년이 가장 많았다. 77살 할아버지가 나타나자 사람들은 '대빵'이라고 소개했다. 대부분 일자리가 불확실한 일용직 건설노동자들로, 그들의 하루 수입은 일정하지 않다.

사람들은 일감을 찾기 위해 새벽 추위를 이기고 인력시장을 찾았다. 얼룩이 묻은 크고 두꺼운 점퍼와 군복바지 등 두툼한 옷을 입은 채 거리로 나왔다. 작업복과 작업화가 들어있는 빵빵한 배낭을 멘 사람도 있었다. 해가 뜨기까지는 아직 2시간가량 남은 시각, 그들은 모닥불 대신 손에 종이컵에 담긴 커피로 추위를 달랬다. 올 3월까지 피웠던 모닥불은 대구 서구청이 4월에 '명품가로공원'을 조성하면서 사라졌다.

조명 때문에 거리는 어둡진 않지만 여전히 썰렁했다. 담배를 피던 한 60대 남성은 기자에게 "서구청장한테 불 좀 떼게 해달라고 말해주소"라고 말했다. 옆에 있던 다른 남성도 "이제 더 추워지면 앞으로 우얍니껴"라며 겨울 추위를 걱정했다. 모두 올해 초까지 피웠던 모닥불을 그리워하는 눈치였다. 서구청 경제과 김정순 계장은 "구청에서는 모닥불 피우는 것을 막은 적이 없다"고 말했다.

   
▲ 기다림...커피 파는 트럭이 도착하자 종이컵 한 잔 커피로 추위를 달랜다. 올 3월까지 피웠던 모닥불은 '명품가로공원'이 조성되면서 사라졌다.(2015.12.2 북비산네거리) / 사진. 평화뉴스 김지연 인턴기자

날이 추워지면서 이들은 일자리 구하기가 더 힘겹다. 겨울에는 건설현장 자체가 적기 때문이다. 게다가 현장에 가면 업체로부터 재하도급을 받아 건설노동자들을 직접 지시하는 ‘오야지(하도급업자)’가 있는 경우도 있다. 노동자들은 임금을 받아 이 ‘오야지(하도급업자)’에게 수수료를 또 떼기도 한다.

50대 남성 오모씨는 10년째 대구·경북을 돌아다니며 건설일을 하고 있다. 그는 "'오야지(하도급업자)'랑 소개소 소개비로 '똥떼고'(수수료 떼고) 나면 손에 남는게 없다"며 "일은 내가 하는데 돈은 어만(애먼) 사람이 가져간다"고 불만을 털어놨다. 또 "일 자체가 없는데다 본격적으로 추워지는 1월부터는 그냥 손놓고 놀 수밖에 없다"면서 "운이 좋아야 3일에 한 번 일을 한다. 정말 막막하다"고 말했다.

이날 인력시장에 나온 이들 중에는 이른바 '공구리'(시멘트 작업), 파이프작업, 목수 기능공들이 많았다. 보통 10년이상 숙련된 '공구리'와 파이프작업을 하는 기술공은 일당 17만원, 기본 잡부는 10만원에서 12만원정도를 받는다.

   
▲ 기다림...새벽을 다니는 차량들 속에 아직 일거리를 주는 차량은 오지 않았다.(2015.12.2 북비산네거리) / 사진. 평화뉴스 김지연 인턴기자

요즘은 일거리가 매일 있지 않아 인력시장에 나와도 허탕을 칠 때가 많다. 때문에 겨울철에는 일주일에 3일 이상 일하는 경우가 드물다. 이름을 밝히지 않은 한 50대 남성은 "경기가 좋지 않아 일거리도 줄어들고 있는 추세"라며 "특히 겨울에는 불러주는 곳이 거의 없다"고 말했다.

일당 12만원을 받으며 빌라신축 현장에서 대리석 붙이는 일을 하는 정모(56)씨도 "일을 할수록 골병만 든다"면서 "무거운 대리석을 지고 나르면 다리 한 쪽씩 파스를 발목부터 무릎까지 붙이고 산다"고 다리를 들어보였다. "겨울이 되면 부르는 데도 없다. 벌어놓은 돈은 없고 그냥 논다"며 다가올 겨울을 걱정했다.

새벽 인력시장에는 여성들도 있었다. 그들은 추운 날씨에 얼굴까지 목도리로 꽁꽁 싸매고 벤치에 앉아 일터로 향하는 소형버스를 기다리고 있었다.

성서공단에서 13년동안 자전거 휠을 만들던 정순자(62,가명)씨는 3년전 공장을 그만두고 꽃이나 잔디심는 일용직 일을 하고 있다. 정씨는 "나이가 들고 교대 근무가 힘들어 주간업무로 바꿔달라고 했지만 거절당했다"고 말했다. 결국 공장을 그만두고 인력소개소 소개로 일당을 받고 일을 하고 있다. "가끔 자식뻘인 소개소 직원들이 시키면 시키는대로 해야할 때 서글프다"고 말했다.

정씨처럼 나이가 많은 여성 노동자가 하는 일은 일당이 적은 편이다. 아침 7시부터 오후 4시까지 점심이나 새참 먹는 시간 1시간을 제외하고 8시간을 일한다. 정씨가 버는 일당은 5만 2천원으로 10%정도 수수료를 떼고 나면 4만8천원이다.

   
▲ 초겨울 새벽 기다림...(2015.12.2 북비산네거리) / 사진. 평화뉴스 김지연 인턴기자

여전히 해는 뜨지 않은 5시 50분, 그들은 삼삼오오 모여 일터로 데려다 줄 승합차를 기다렸다. 서로 농담을 주고 받으며 기자에게 따뜻한 커피 한 잔도 건넸다. 인근에서 가게를 하는 50대 남성 김모씨는 일이 없으면 가게 문을 닫고 종종 건설일용직 일거리를 찾으러 온다. 그는 "많은 사람들이 우리에게 무관심하다. 그래도 이야기를 들어주고 물어봐줘 반갑다"고 말하기도 했다.

1시간가량을 기다려 6시 20분쯤 승합차를 타고 떠났던 김창수(59,가명)씨는 올해로 28년째 철근작업을 하는 건설일용직 노동자다. "누구보다 열심히 산다고 자부하지만 형편은 왜 나아지지 않는건지 모르겠다"면서도 "사는 것이 매번 힘들지만 열심히 사는 것이 살아가는 이유인 것 같다"며 웃음을 잃지 않았다.

인력시장을 찾은 30명 가까운 사람들 가운데 20명 남짓은 하나 둘씩 승합차를 타고 떠났다. 아침 6시 50분, 해가 뜨고 인력시장에 남은 인원은 7명이었다. 77살 최씨 할아버지를 포함해 일감을 구하지 못한 이들은 30분을 더 기다린 뒤 체념한 듯 "오늘도 글렀다"며 짐을 챙겼다. "소주 한 잔 하러 가입시더"라며  자리를 떠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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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사장
(210.XXX.XXX.221)
2015-12-04 10:09:28
그러게요
열심히 살아도 왜 나아지지 않는 걸까요. 남들이 피하는 험하고 궂은 일 하는 사람들이 왜 남보다 적은 돈을 받고 살아도 당연한 세상인 건지. 기자님의 따뜻한 시선 속에 안타까운 마음이 느껴집니다. 다음엔 이들이 희망을 갖고 살아가는 모습도 보여주세요. 좋은 기사 잘 봤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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