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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백원 개비담배에 잔소주 탁배기...'향촌동' 노년의 삶
지하철 타고 경상감영공원서 장기 한 판, 낮술에 칠갑산 한 자락..."혼자가 싫어" 또 걸음하는 할아버지
2016년 01월 12일 (화) 16:34:32 평화뉴스 김영화 기자 pnnews@pn.or.kr

   
▲ 대구시 중구 향촌동 한 카바레 앞을 지나는 할아버지(2016.1.11) / 사진.평화뉴스 김영화 기자

"한라산 3개비 주소"
"아이고 또 오셨소. 잔돈 1백원 받아가소"


백발이 희끗한 김씨 할아버지는 1천원을 내고 담배 3개비를 사 1백원을 거슬러 받아 점퍼 안주머니에 넣었다. 담배가게 아저씨는 단골손님을 반갑게 맞았다. 할아버지는 담배 2개비를 소중하게 손수건에 싸 앞주머니에 넣고 1개비는 멋들어지게 입에 턱 물고 골목길로 들어갔다. 뒷주머니에서 모자를 꺼내 머리 위로 눌러 쓰고 담배에 불을 붙인 뒤 오랜 친구 박씨 할아버지를 따라 단골 전집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 향촌동 한 전집에서 개비담배를 피는 김씨 할아버지(2016.1.11) / 사진.평화뉴스 김영화 기자
 
11일 오후 3시 대구시 중구 경상감영공원 북편 향촌동 수제화골목거리 입구. 향촌동에 10년째 출근 중인 김향석(가명.76) 할아버지는 이날도 일찌감치 일어나 밥을 먹고 오전 9시 달서구 두류동 집에서 나와 향촌동으로 향했다. 16년 전 서울 직장에서 차장으로 퇴직한 뒤 고향 대구로 내려와 황혼을 보내고 있다.

유독 몸이 약했던 아내는 대구에 온 뒤 손도 못 써보고 암으로 세상을 떠났다. 외국으로 이사간 첫째 아들, 대전 어디쯤 산다는 딸과 연락이 끊긴지 오래다. 향촌동 노년의 삶은 그렇게 시작돼 이어지고 있다.

   
▲ 향촌동 한 식당 옆 복도에서 잔소주를 만드는 가게 주인(2016.1.11) / 사진.평화뉴스 김영화 기자

앞서 간 동반자와 돌아선 자식. 향촌동을 찾는 대부분의 할아버지와 할머니들은 홀로 남은 삶을 견디기 위해 이 곳을 찾는다. 박씨 할버지도 이 곳에서 7년 전 만난 친구다. 박씨 할아버지 이름은 박광수(가명.77), 담배를 나눠 피고 소주잔을 기울이면서 형님 동생하는 사이에서 이제는 친구처럼 지내고 있다.

65세 이상이면 지하철 무료 승차가 가능해 할아버지들은 대구 중심가 1호선 중앙로역에 내려 근처 향촌동, 교동, 경상감영공원, 포정동에서 일상을 보낸다. 김씨, 박씨 할아버지도 그 중 하나다. 이날도 중앙로역사 끝트머리에는 백발이 성성한 할아버지들이 2백원짜리 자판기 커피를 마시며 수다를 떨고 있었다.

   
▲ 백발의 한 할아버지가 중앙로역에서 나와 교동으로 가고 있다(2016.1.11) / 사진.평화뉴스 김영화 기자

두 할아버지는 '광주집'이라고 불리는 전집에서 2천원짜리 국수를 시키고 빠질 수 없는 술도 주문했다. 맥주컵에 가득 따른 1천원짜리 잔소주와 탁배기를 마시자 김씨 할아버지는 자신의 18번곡 가수 주병선의 '칠갑산'을 구수하게 불렀다. '콩밭 매는 아낙네야 베적삼이 흠뻑 젖는다. 무슨 설움 그리 많아 포기마다 눈물 짓누나' 주인 아주머니의 '좋다' 추임새를 들으며 김씨 할아버지는 담배를 물고 입구로 나갔다. 

전집 맞은편에는 카바레, 댄스홀, 노래방, 콜라텍, 성인텍, 성인댄스홀 등 1950년 6.25 이후 대구를 주름잡던 멋쟁이들이 드나들던 유흥가들이 즐비했다. 한 때 영광의 흔적은 이제 빛바랜 추억으로 변했다.

   
▲ 오후 늦은 시간 향촌동 한 다방에서 나오는 할아버지(2015.1.11) / 사진.평화뉴스 김영화 기자

김씨 할아버지는 담배를 피우다 반가운 얼굴의 이름을 불렀다. "어이 황가야, 막내야~빼입고 어데가노"

남색 스트라이프 정장에 빨간 스카프를 목에 두른 황촌산(가명.71) 할아버지다. 가끔 카바레를 가는 황씨 할아버지는 올해면 일흔하고도 한 살이다. 하지만 이 동네에서는 어린축에 속해 형님들과 누님들의 심부름을 해야 한다. 약속이 있다던 황씨 할아버지는 얼른 인사를 하고는 포정동 방향의 한 다방으로 사라졌다. 김씨 할아버지는 "분명히 데이트"라며 동생의 뒷모습을 부럽다는 듯 한참동안 지긋이 쳐다봤다.

   
▲ 향촌동의 오래된 대보아파트와 상가(2016.1.11) / 사진.평화뉴스 김영화 기자

오후 4시 대보아파트 맞은편 칠이 벗겨진 상가에 할아버지와 할머니 몇몇이 추위를 녹이기 위해 앉아 있었다. 중절모에 크로스백을 맨 노신사 2명도 지팡이를 짚고 건물로 들어왔다. 아들이 준 하루 용돈 1만원을 받아 이 곳을 찾은 지 2년째된 80세 장씨 할아버지다. 장씨 할아버지는 자랑하듯 다른 친구들에게 가방에서 줄줄이 사탕처럼 약봉지를 꺼내 보였다. 다른 할아버지들도 '이하동문'이라며 맞장구쳤다.   

장씨 할아버지는 전직 공무원이라며 끝까지 이름 밝히기를 꺼려했다. 장씨 할아버지는 가판대 곳곳에 공짜 신문을 읽고 또래도 만날겸 지하철을 타고 향촌동으로 온다. 자식과 손주는 얼굴 볼 시간 없이 바쁘고, 티비를 켜놓고 홀로 먹는 밥도 이제 지겨웠기 때문이다. 처음에는 "늙이들만 있다는 게 싫어 오기 꺼려졌다" 하지만 또래들과의 농담따먹기를 하다보니 숨통이 트여 이제는 매일 출근 도장을 찍고 있다.

   
▲ 지팡이에 중절모...경상감영공원 앞을 지나는 할아버지들(2016.1.11) / 사진.평화뉴스 김영화 기자

계속된 질문에 할아버지들은 귀찮은지 다른 곳으로 가라고 손을 내저었다. 오후 4시 30분 대보아파트 상가 북편 경상감영공원. 햇볕이 드는 벤치 귀퉁이에 할아버지 10여명이 병풍을 치고 무언가를 구경하고 있었다. 장기맞수 이형배(가명.69) 할아버지와 권복남(가명.77) 할아버지의 2시간째 이어진 대결이었다.

이 공원에서는 매일 작은 전투가 벌어진다. 초(楚)나라와 한(漢)나라의 장기알 싸움이다. 예전에는 장기판이나 바둑판을 할아버지들이 알아서 가져오거나 아니면 대여업자들에게 빌려 경기를 벌였다. 하지만, 최근 중구청이 공원 벤치에다 아예 장기판을 새겨 넣으면서 할아버지들은 작은 수고를 덜게 되었다.


 
 
▲ 수세에 몰린 초나라, 경상감영공원에서 장기를 두는 할아버지들(2016.1.11) / 사진.평화뉴스 김영화 기자

할아버지들은 남는 시간도 보낼 겸 5백원, 1천원 소소하게 돈 내기도 하면서 장기 경기를 벌인다. '장이요', '멍이요' 경상감영공원의 맞수는 지난 1년간 비슷한 승패를 주고 받으며 이날도 많은 구경꾼을 불러 모았다. 경기를 하는 두 할아버지뿐만 아니라 팔짱을 끼고, 뒷짐을 지고 구경하는 이들도 숨을 죽였다.

수세에 몰린 초나라 권씨 할아버지가 방어를 잘 못하자 이를 지켜보던 구경꾼 할아버지가 권씨 할아버지에게 훈수를 놓기 시작했다. "상(象)을 먹으라니까. 마(馬)를 그렇게 쓰면 되나. 권가야 쯧쯧" 안그래도 폐망위기 앞에 놓인 초나라 권씨 할아버지는 "거 좀 조용하라"며 훈수를 두던 구경꾼 할아버지에게 화를 버럭냈다. 공원의 심심풀이 장기는 가끔 할아버지들의 자존심 건들여 말다툼으로 번지기도 했다.

   
▲ 구제옷 1,000원 종이가 붙은 교동 구제옷 골몰(2016.1.11) / 사진.평화뉴스 김영화 기자
   
▲ 자전거를 세워놓고 교동에서 구제옷을 구경하는 한 할아버지(2016.1.11) / 사진.평화뉴스 김영화 기자

1970~1980년대에 머물러 있는 것 같은 옛스러운 특이한 풍경은 향촌동 바로 건너편 교동에서도 이어졌다. '무조건 1000원', '대박세일 2000~3000원' 이라고 적힌 구제옷 골목길. 할아버지들은 자전거를 세워놓고 옷 구경 하기에 바빴다. 주름진 얼굴 위로 화장을 곱게한 할머니도 옷매무새를 가다듬으며 검은 비닐봉지에 구제옷 3벌을 담아 나왔다. 니트와 코트 등 3천원의 작은 행복으로 얼굴에 미소가 가득 퍼졌다.

전수자(가명.73) 할머니는 남편 자전거를 타고 혼자 교동에 와 이날 쇼핑을 했다. "온몸이 고장난 데가 많아 밖에 나올 일이 좀처럼 없다"며 "오랜만에 겨울 옷 좀 사러 나왔다"고 말했다. 전 할머니는 "헌옷을 한 번 빨아 페브리즈를 뿌려놓으면 새옷처럼 입을 수 있다"며 "오늘 쇼핑도 성공적"이라고 웃으며 말했다.

   
▲ 교동시장 끝트머리에서 선잠이 든 한 할아버지(2016.1.11) / 사진.평화뉴스 김영화 기자

오후 6시 교동시장 끝 골목. 오래된 단추가게 골목길 사이로 빈티지가게들과 분식집이 즐비하다. 신씨(80) 할아버지는 해질녘 골목길에서 선잠을 자고 있었다. 오토바이를 타고 다니며 야채도 팔고 폐지도 주우며 생계를 이어가는, 할아버지는 오토바이를 세워놓고 옆에 야채 몇 가지를 펼쳐 놓고는 잠이 들었다.

가족과 연락이 끊어진지 수 십년은 된 것 같다던 할아버지는 특정 직업을 가진 적은 없다고 했다. 다만 이 곳 일대에서 장사도 하고 술도 마시며 남은 생을 보내고 있다고 말했다. 그런 할아버지는 친하게 지내는 친구가 요즘 얼굴이 안보인다며 걱정을 했다. 이어 "볼때기 탱탱할 때 영정 사진을 찍어놓지 못한 것이 후회된다"며 "언제 이렇게 늙었는지 모르겠다"고 한숨을 쉬었다. 그러면서 "소주 한병만 사줄 수 있냐"고 묻고는 이제 집에 가야 겠다며 주섬주섬 짐을 챙겨 오토바이를 타고 교동을 떠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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