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산 코발트광산 '민간인 학살' 73년 만에 유해 수습, 그 첫 날의 현장

평화뉴스 김영화 기자
  • 입력 2023.03.23 14: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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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평2굴 '개토제'→다음주 1,500개 흙포대 꺼내 유해 분류
인골·치아 등 '잔뼈' 진화위와 협의해 '임시수장고'에 보관
유족 "4평 우물 유골 400개...국가폭력 방치, 이게 나라냐"


어둡고 좁고 긴 동굴 앞에 소박한 제사상이 차려졌다. 

사과, 배, 떡, 전. 정성스럽게 준비한 음식들이 차례대로 상에 올랐다. 제사상 옆에는 동굴 안에서 써야 하는 안전모가 여러개 걸렸다. 끝없이 이어진 동굴. 어둠을 밝히는 것은 촛불 밖에 없다. 동굴 밖은 추적추적 비가 내렸다. 하얀 입김이 여기저기서 계속 나온다. 퀴퀴한 냄새도 코를 찌른다. 
 
경산 코발트광산 수평2굴 안. 어둠 속 열린 개토제(2023.3.23) / 사진.평화뉴스 김영화 기자
경산 코발트광산 수평2굴 안. 어둠 속 열린 개토제(2023.3.23) / 사진.평화뉴스 김영화 기자

'무덤도 없는 원혼이여 천년을 두고 울어주리라', '아버지 1950년 경인년 잊지 않겠습니다', '폐광에 묻힌 부모형제를 구해주세요'. 동굴 안에 잠든 누군가를 애타게 찾는 비통한 글귀가 가득이다.  
 
국가폭력 민간인 학살지인 경산 '코발트광산'의 유해 수습 첫날 현장이다.     

(사)한국전쟁전후 경산코발트광산 민간인희생자유족회(회장 나정태)는 23일 오전 경산시 평산동 수평2굴 앞에서 '코발트광산 희생자 유해 수습 용역 개토제'를 진행했다. 개토제(開土祭)는 유해 수습이나 발굴을 위해 땅을 파기 전 큰 사고 없이 작업이 진행되게 해달라고 토지신에게 올리는 제사다.
 
   
▲ 유족회가 유해 수습 전 동굴 앞에서 제사를 지내고 있다.(2023.3.23) / 사진.평화뉴스 김영화 기자
   
▲ 코발트광산 수평2굴 안에 차려진 제사상(2023.3.23) / 사진.평화뉴스 김영화 기자

1950년 한국전쟁 전후 한국군과 경찰에 의해 민간인 3,500여명이 보도연맹원으로 몰려 코발트광산에서 사살됐다. 2기 진실·화해를 위한 과거사 정리위원회(위원장 김광동)와 유족회는 73년 만에 일부 유해를 수습해 굴 밖으로 꺼낸다. 수습 작업에 앞서 유족회는 광산 철문을 열고 개토제를 했다.  

"오늘부터 미처 수습 못한 유해를 다시 수습코자 하니. 10여년 빛을 못 본 원혼이여. 광명을 되찾으소서". 최승호 유족회 이사가 제를 주도하고, 나정태 유족회 회장이 첫 잔을 희생자들을 향해 올렸다.

개토제를 1시간 가량 하고 유족회는 설명회를 가졌다. 이번 유해 수습 작업 발주처는 진실화해위고, 용역시행사는 한빛문화재연구원이다. 한빛문화재연구원에 따르면, 본격적인 수습 작업은 오는 27일부터 진행된다. 현재 수평2굴 안에는 미처 수습하지 못한 마대자루가 3,000여개 보관 중이다. 
 
나정태 회장이 희생자들을 위로하는 잔을 올렸다.(2023.3.23) / 사진.평화뉴스 김영화 기자
나정태 회장이 희생자들을 위로하는 잔을 올렸다.(2023.3.23) / 사진.평화뉴스 김영화 기자

1기 진실화해위가 2007년부터 2009년까지 유해 420여구를 발굴해 밖으로 옮겼지만 2009년 사업이 중단되면서 광산에서 발굴한 잔뼈 등은 15년째 나오지 못했다. 2기 진실화해위가 지난 13일 유해 발굴 지자체 보조사업으로 코발트광산을 선정하면서 흙포대 속에 갇힌 유해가 굴 밖으로 나오게 됐다.

장경민 한빛문화재연구원 조사실장은 "먼저 1,500개 포대를 꺼내 인골·치아 등 유골을 발굴한다"며 "자루를 풀어 토사와 인골을 분리하고, 중금속 오염물질을 전문업체에 맡겨 처리한다"고 설명했다. 또 "오래 밀폐돼 훼손·유실된 일은 없다"며 "방부처리를 하거나 필요하면 경화처리를 한다"고 했다. 이어 "잔뼈는 임시수장고에 보관한다"며 "진화위와 협의해 세종시에 보관할 수도 있다"고 했다.
 
장경민 조사실장이 언론에 브리핑 중이다.(2023.3.23) / 사진.평화뉴스 김영화 기자
장경민 조사실장이 언론에 브리핑 중이다.(2023.3.23) / 사진.평화뉴스 김영화 기자

유가족은 울분을 토했다. 나정태 유족회 회장은 "아무리 이념갈등이 있었다 해도 국가폭력에 희생된 희생자들을 이렇게 수십년간 동굴 안에 방치하는 게 말이 되냐"며 "말만 진실화해위원회지 아무 도움도 안된다. 이런 현장을 나두고 세계 선진국가라고 할 수 있나. 이게 나라냐"고 분통을 터뜨렸다. 

이어 "코발트 유족이 더 아픈 것은 국가가 유골을 전부 공중분해 시켜 여기저기로 보낸 것"이라며 "그뿐 아니라 유해가 눈 앞에 매장된 채 그대로 보이는데 15년을 수습하지 않고 뒀다. 아무도 나서지 않았다. 가슴에 응어리가 진다"고 한숨을 쉬었다. 또 "4평 우물에 400개 유골이 발골됐다"면서 "아직도 다 발굴하지 못한 유해가 한 가득하다. 국가나 언론이 제발 관심을 가져달라"고 호소했다.  

마지막 유해까지 찾겠다는 의지도 보였다. 최승호 유족회 이사장은 "발굴도 못한 시신이 안에 있다"면서 "오늘을 시작으로 다시 진상규명을 하고 남은 뼈 하나라도 찾아야 한다"고 정부에 촉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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