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구 가창골·코발트, 진실화해위 10년 만에 재조사..."뼈 한 조각이라도"

평화뉴스 김영화 기자
  • 입력 2021.11.26 20: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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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기 출범 1년 / 대구경북 1천여건 접수...조사팀, 유해 매장 추정지 방문
10월항쟁 등 한국전쟁 전후 유족 "시간 흐르는데 지연, 이번엔 꼭" 호소
정근식 위원장 "정부·지자체 협력, 정치적 변화 상관 없이 중단 없는 발굴·보상"


"아마 저기 어디쯤 아버지 유해가 묻혀 있지 않을까요. 이번에는 뼈 한 조각이라도 찾고 싶습니다"

26일 김영호(72) 대구보도연맹유가족회 부회장은 대구시 달성군 가창면 용계리 산 128번지에서 정근식(64) 진실·화해를위한과거사정리위원회 위원장과 함께 민간인 학살 유해 매장 추정지를 찾았다. 
 
   
▲ "저기 어디쯤 유해가"...대구 가창골 민간인 학살 유해 매장 추정지를 찾은 정근식 진실화해위원장이 유가족으로부터 현장 설명을 듣고 있다.(2021.11.26.대구시 달성군 가창면 용계리 128번지) / 사진.평화뉴스 김영화 기자
   
▲ 진화위가 10월항쟁 위령탑 인근 매장지 산을 오르고 있다.(20211.11.26) / 사진.평화뉴스 김영화 기자

산 주인이 있어 함부로 땅을 파지 못하고 있다. 수 년 전 유족이 비용을 내 발굴 작업에 나선적 있지만 유해를 찾지 못했다. 더 이상 시도는 불가했다. 막대한 비용 탓이다. 정부와 지자체 도움 없이 유족들만의 힘으로는 사실상 불가능했다. 아버지, 어머니 유해가 있을 것만 같은 산을 쳐다만 볼 뿐이다.
   
진실화해위 출범 후 위원장과 조사단이 대규모로 대구지역 민간인 학살지를 찾은 것은 처음이다. 유족 안내로 매장 추정지 앞에 선 정 위원장은 "너무 늦었다. 죄송하다"며 "최선을 다하겠다"고 답했다. 

가창골은 한국전쟁 전후 이승만 정부의 국가 폭력에 희생된 지역의 대표적 민간인 학살지다. 1946년 미군정 친일 관리 고용과 식량 공출 시행에 반대해 같은 해 9월 총파업을 한 대구시민들과 10월 1일부터 쌀을 달라며 항쟁한 이들에 대해 미군정과 한국 경찰은 계엄령을 선포하고 무력으로 진압했다. 
 
   
▲ 채영희 10월항쟁유족회장이 정 위원장에게 요구 사항을 전달하고 있다.(2021.11.26) / 사진.평화뉴스 김영화 기자
   
▲ 차혁관 대구시 자치행정국장과 정근식 위원장이 유족과 면담 중이다.(2021.11.26) / 사진.평화뉴스 김영화 기자

10월항쟁 가담자, 국민보도연맹원 연루자, 대구형무소 수감자들은 가창골과 경산시 코발트광산과 칠곡 신동재로 끌려갔다. 국가는 이들을 집단으로 사살했다. 희생자 추정치만 1만여명에 이른다.
 
2010년 1기 진화위가 이 같은 내용을 규명해 일부 희생자의 넋을 위로하고 유족들 의문을 해소했지만, 이후 10년간 조사는 멈췄다. 이명박·박근혜 정부는 과거사 사업 지원을 끊거나 축소했다. 문재인 정부가 들어선 후 지난해 국회가 '과거사법 일부개정 법률안'을 통과시켜 과거사 조사 기간을 3년으로 하고, 1년 더 연장할 수 있게 하면서 2기 진화위가 시작됐고 출범 1년을 맞았다. 
 
대구 가창골의 민간인 학살 유해 매장 추정지(2021.11.26) / 사진.평화뉴스 김영화 기자
대구 가창골의 민간인 학살 유해 매장 추정지(2021.11.26) / 사진.평화뉴스 김영화 기자

현재 대구경북지역에서 진화위에 접수된 사건은 1,091건이다. 보도연맹 561건, 군경에 의한 민간인희생 463건, 적대세력에 의한 희생 50건, 기타 27건이다. 80% 사건이 개시돼 조사가 이어지고 있다.

진화위는 26일부터 27일까지 대구 가창골과 경산 코발트광산을 1박 2일 일정으로 방문한다. 사전 현장조사 개념으로 미리 유해 매장 추정지를 둘러보고, 유가족들을 만나 요구사항을 듣는다. 

채영희(77) 10월항쟁유족회 회장은 이날 10월항쟁위령탑 옆 유족회 사무실에서 정근식 위원장, 차혁관 대구시 자치행정국장과 면담을 가졌다. 채 회장은 눈물을 흘리며 분노했고 또 억울함을 호소했다. 아버지 죽음에 의문을 가진 지 70여년, 10년간 조사마저 멈춰 왜 이제서야 찾아왔냐는 하소연이다.
 
정 위원장과 김영호 부회장, 채 회장이 위령탑을 둘러보고 있다.(2021.11.26) / 사진.평화뉴스 김영화 기자
정 위원장과 김영호 부회장, 채 회장이 위령탑을 둘러보고 있다.(2021.11.26) / 사진.평화뉴스 김영화 기자

그는 "시간은 흐르는데 외면해 서러웠다"며 "더 이상 지연은 안된다. 유족도 고령으로 세상을 떠나고 있다. 마지막 목격자도 아흔이 훌쩍 넘었다. 빨리 매장지를 발굴하고, 이번엔 꼭 진상규명해야 한다"고 촉구했다. 또 "빨갱이라는 말을 들을까 무서워 제보하지 않는 유족도 여전히 있다"면서 "어떤 일이 있어도 불이익이 없고, 흔들림 없이 조사할 것이라는 확신을 진화위 차원에서 확답해달라"고 호소했다. 이어 대구시를 향해서 "위령탑만 덜렁 만들어놓지 말고 이곳을 평화공원으로 만들어야 한다"면서 "민간인 학살과 관련한 정확한 자료도 유족과 진화위에 제공하고 모두 공개하길 바란다"고 덧붙였다. 

정 위원장은 "정부와 지자체가 협력해 정치적 변화에 상관 없이 중단 없는 발굴과 유족 배보상이 적절히 이뤄질 수 있도록 하겠다"면서 "국회와 대화해 과거사 규명 사업이 지속될 수 있게 하겠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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