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80시간' 넉달만에 돌연사...대구 아파트 하청노동자 '과로사' 의혹

평화뉴스 김영화 기자
  • 입력 2023.03.29 17: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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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구 신암동 건설현장, 마루시공 노동자 성모(49)씨 21일 숨져
사인미상 '돌연사'...노조 "매일 13시간씩 근무, 명백한 과로사"
H건설→마루업체→하우징 3단계 하청 '프리랜서' 노동청 미조사
정의당·권리찾기유니온 "대통령 주69시간?, 사각지대 진상조사"


대구 한 아파트 공사현장에서 40대 노동자가 숨졌다. 노조는 주 80시간 일한 과로사라고 주장했다.

한국마루노조(위원장 최우영), 권리찾기유니온, 정의당 대구시당(위원장 한민정)은 29일 대구 동구 신암동 H아파트 건설현장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윤석열 대통령이 주 69시간 노동으로 다투는 사이, 주 70~80시간 일한 노동자가 싸늘한 주검으로 발견됐다"며 "노동자 존엄성을 보장하라"고 촉구했다.
 
"과로로 죽지 않고 일할 수 없습니까" 고인에 대한 묵념(2023.3.29) / 사진.평화뉴스 김영화 기자
"과로로 죽지 않고 일할 수 없습니까" 고인에 대한 묵념(2023.3.29) / 사진.평화뉴스 김영화 기자

노조의 말을 종합한 결과, 20년차 건설현장 마루시공 노동자 성모(49.부산)씨는 지난해 12월부터 4개월 동안 신암동 H아파트 신축 공사현장에서 마루 시공일을 했다. 평일 오전 7시부터 오후 7시, 주말 오전 7시부터 오후 5시까지 근무했다. 동료들 말에 의하면 새벽 5시 30분에 출근한 날도 있다.

주말 없이 한달에 하루 이틀만 쉬었다. 매일 12~13시간, 주 70~80시간 이상 일한 셈이다. 그리고 지난 21일 성씨는 출근하지 못했다. 동료가 그의 숙소인 여관을 찾았을 때는 이미 쓰러져 숨진 상태였다. 사망원인은 미상, 급사(돌연사)로 처리됐다. 미혼인 성씨 시신은 80세가 넘은 부산에 사는 노부모님들이 고향으로 인계해 화장했다. 이후 대구노동청 차원의 조사는 진행되지 않았다. 
 
대구 동구 신암동 H아파트 건설현장(2023.3.29) / 사진.평화뉴스 김영화 기자
대구 동구 신암동 H아파트 건설현장(2023.3.29) / 사진.평화뉴스 김영화 기자

고인이 근로자가 아닌 '프리랜서' 사업자인 탓에 노동청 근로감독 대상이 아니기 때문이다. H아파트 원청은 시공사 H건설이다. H건설은 W 마루시공 업체에 하청을 줬고, 마루시공 업체는 S하우징에 하도급을 줬다. 고인은 3단계 하도급 가장 끝자리에 있다. 성씨가 숨진 이후 공사현장은 사흘동안 작업을 중지했다가 현재는 다시 작업을 재개했다. 원청은 마루시공 노동자들에게 오는 2일부터 작업재개서를 요구했다. 동료 노동자들은 이를 거부하고 '주 52시간 준법 투쟁'을 벌이고 있다. 

과로사로 인해 동료가 숨진 상황에서 작업을 재개할 수 없다는 주장이다. 

노조는 "아파트, 사무실 공공시설 등 우리가 딛고 있는 모든 공간의 바닥에 마루를 시공하는 우리는 불법하도급 구조 속에 노동자가 아닌 사업자 취급을 받고 있다"며 "사실상 노동자임에도 불구하고 원청과 하청의 쥐어짜기 관행으로 인해 퇴직금도 빼앗겨가며 노동 억압에 시달리고 있다"고 주장했다.
 
최우영 마루노조 위원장이 입장을 밝히고 있다.(2023.3.29) / 사진.평화뉴스 김영화 기자
최우영 마루노조 위원장이 입장을 밝히고 있다.(2023.3.29) / 사진.평화뉴스 김영화 기자

특히 "대통령이 주 69시간을 말하는 사이에 대구에서 주 80시간 노동에 시달린 마루시공 노동자가 과로사했다"면서 "불법하도급과 위장 건강 검진서 등 불법이 판치는 상황에서 열악한 노동환경과 법의 사각지대 속에 마루시공 노동자들이 과로에 시달려 죽어가고 있다"고 지적했다. 때문에 ▲고용노동부의 과로사 진상규명 ▲전국 마루시공 현장 근로감독 ▲마루시공 노동자 불법하도급 중단을 촉구했다.

최우영 한국마루노조 위원장은 "고인이 숨지기 전에 며칠 전부터 '머리가 아프다'고 하소연했지만 끝내 바뀐 것 없이 숨을 거뒀다"며 "그 뒤에도 원.하청은 반성이 없다"고 지적했다. 또 "지난해 6월부터 주 80~90시간 과로에 시달리니 도와달라고 외쳤지만, 이렇게 동지 한명이 고인이 돼서야 여기에 모였다"면서 "다시는 과로로 숨지는 노동자가 없도록 잘못된 관행을 고쳐달라"고 호소했다. 
 
(가운데) 이은주 정의당 원내대표가 대구 기자회견장에서 발언 중이다.(2023.3.29) / 사진.평화뉴스 김영화 기자
(가운데) 이은주 정의당 원내대표가 대구 기자회견장에서 발언 중이다.(2023.3.29) / 사진.평화뉴스 김영화 기자

국회 환경노동위원인 정의당 이은주 원내대표도 기자회견에서 "대통령이 주 69시간으로 나라를 들끓게 한 사이 마루시공 노동자가 주 80시간 노동에 시달리다 숨졌다"며 "이 문제에 대해 노동부가 기획근로감독 등 대책을 마련할 수 있도록 잘못된 건설현장의 관행을 바꾸는 데 함께 하겠다"고 했다.   

H건설사에 과로사 의혹에 대한 입장을 듣기 위해 현장 관리사무소를 찾았지만, A소장은 자리를 비웠다. 연락을 달라고 다른 직원들에게 수차례 요청했지만 응답이 없었다. 다만 노조에 의하면 "성씨 사망은 유감이지만, 공기(공사 기간)가 얼마 안남아 재개해야 한다"는 입장을 전한 것으로 알려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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