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규모 사업장이 많은 대구, 산업재해 예방 위한 지방정부의 역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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탁기홍(직업환경의학과 전문의)
대구, 제조업 중 '50인 미만' 노동자 70% 넘어
"노동청·공단 인력으로는 역부족...지방정부의 역할 절실"


 2019년 영국의 세계적인 경제전망기관인 옥스퍼드 이코노믹스에서 내놓은 한 보고서 제목에 눈길이 가서 우연히 읽게 되었다. “How robots change the world” 로봇의 영향에 대한 경제적 관점의 보고서로 흥미로운 건 한국이 자주 언급이 된다는 것이다. 대부분 산업용이기 하지만, 로봇이 가장 많은 나라 중에 하나이기도 하다.

그리고, 눈에 띄는 인포그래픽이 있었다. 세계 도시들 중 로봇에 취약한 도시와 안전한 도시들을 보여주는데 한국에서는 대구가 가장 취약한 도시로 당당히 언급되어 있었다. 그 이유는, 고용을 제조업에 의지를 하는데 대부분 저부가가치 산업인데다가 전세계적인 치열한 경쟁으로 로봇화 혹은 자동화에 몰릴 것이고 자동화하더라도 어딘가의 더 뛰어난 경쟁자와의 승리를 장담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이에 노동자는 로봇자동화로 일터에서 내몰리고 또는 회사가 망해서 일자리 시장으로 나오게 된다는 내용이었다. 대구 시민으로서 암울한 전망이다.

저부가가치 저숙련... 회사는 돈이 없고 노동자는 무기가 없다. 대구의 자동차산업의 중숙련 노동자도 로봇자동화로 고용 불안에 놓이게 되었다.

 한국은행 보고서에 의하면 2020년 대구 종사자 1인당 부가가치(5,884만원)는 8개 광역시(평균 7,525만원) 중 가장 낮은 수준이다. 특히, 대구의 제조업의 1인당 부가가치는 최하위이고 전년대비 큰 폭으로 감소하였다. 이러한 사실들은 대구 기업과 노동자의 위기를 말하고 있다.

여기서 나는 산업안전보건에 관해 이야기 하고자 한다. 앞서 대구 제조업의 위기를 언급한 이유는 산업안전보건도 돈에서 자유롭지 않기 때문이다. 자금 사정이 어려운 저부가가치의 한계기업에게 사업장 안전에 대한 투자를 바라는 건 언감생심이다. 게다가 저숙련, 중숙련 노동자는 이직률이 높고 이직할 때마다 익숙치 않는 공정에 투입된다. 기업은 낮은 부가가치를 높은 업무강도와 장시간 노동으로 보상받으려고 할 것이고 산업재해도 필연적으로 증가할 것이다.
 
2020년 질병재해 발생현황(* 기타는 직업성 암, 세균·바이러스, 정신질환 등) / 자료 출처. 고용노동부
2020년 질병재해 발생현황(* 기타는 직업성 암, 세균·바이러스, 정신질환 등) / 자료 출처. 고용노동부

산업재해의 특징을 살펴보면 어느 곳에 우선적으로 집중하고 대책을 마련해야 할지 알 수 있다. 산업재해는 업무상 사고와 업무상 질병으로 나뉘고, 그 중 사망재해도 사고사망과 질병사망으로 나눠 볼 수 있다. 고용노동부는 매달 자료를 수집하고 매년 현황분석자료집을 내는데 산업재해자료는 통계로서의 가치가 의문시 된다. 그 이유는 사고나 질병은 은폐가 많이 되고, 신청자에 한해서만 승인되고 재해 건수로 잡히게 되므로 현실을 반영하기 어렵다. 

게다가 질병 혹은 질병 사망은 건 수가 증가했다고 해서 꼭 나쁘다고 볼 수만 없다. 새로 밝혀진 지식이나 사회적 합의에 의해 산재로 인정되기도 하고 그로 인해 신청자가 더 늘어날 수 있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뇌심혈관질환 및 과로사는 과로의 인정기준이 완화되면서 급격히 늘었고, 조리흄에 의한 조리사의 폐암도 2021년 최초 인정된 후 신청자와 승인수가 늘고 있다. 반면에 활용하기 좋은 자료도 있는데, 사고사망자수는 은폐하기 어려워 신뢰가 있는 자료이고, 국가 간에 평가하기에도 좋은 자료이다.
 
급식노동자 폐암 산재 승인 대책 촉구 기자회견(2022.6.21. 대구시교육청) / 사진.학교비정규직노조대구지부
급식노동자 폐암 산재 승인 대책 촉구 기자회견(2022.6.21. 대구시교육청) / 사진.학교비정규직노조대구지부

산재는 제조업과 건설업에서 많이 발생한다. 2020년, 두 업종의 종사자는 전체 종사자 중에 약 30%를 차지하지만 사고재해는 52% , 사고사망재해는 75%를 차지했다. 근속이 짧은 종사자에게 호발하는 특징이 있다. 제조업 종사자의 사고재해 32%, 사고사망 30%가 근속한 지 6개월내에 발생했다. 제조업 평균근무년이 8년정도인 걸로 본다면 의미있는 점이다. 건설업은 사고재해와 사망재해자는 80~90%가 근속 6개월 이내의 종사자인데, 이는 대부분 종사자들이 일용직이거나 단기계약이기 때문이다.

규모가 작은 사업장일수록 사고사망 발생률이 높다. 종사자 만 명당 사고사망자수를 사고사망만인율이라 하는데, 2020년 제조업 규모별로 보면, 5인 미만 사업장이 0.94,  5~49인은 0.70, 50~299인은 0.32, 300인 이상은 0.11로 소규모 사업장이 압도적으로 높다. 이는 몇가지 이유가 있다.
 
대구시 달서구 두류동, 하청노동자가 숨진 공사현장(2022.10.26) / 사진.평화뉴스 김영화 기자
대구시 달서구 두류동, 하청노동자가 숨진 공사현장(2022.10.26) / 사진.평화뉴스 김영화 기자

일정 규모 이상의 사업장에는 안전관리자, 보건관리자가 있다. 이들은 일정한 능력과 자격을 갖추고 직장 내 안전과 보건을 챙긴다. 법으로 요구되는 의무조치를 하고 정부의 정책에 바로 대응이 가능하다. 정부가 사령관이라면 지방노동청은 중대장이고 이들은 전투병이다. 300인 이상 사업장은 직접 채용하여 업무를 전담 시켜야 하지만, 50인 이상은 인건비 부담을 줄여주기 위해 안전과 보건업무를 전문기관에 위탁할 수 있게 했다. 그런데, 50인 미만은 어떠한 선임 의무도 없고 사업주 책임에 맡긴다. 전문가에게도 어려운 안전보건 업무를 지식과 정보가 부족한 사업주가 제대로 하기 바라는 건 과한 욕심이다.

 50인 미만 사업장은 그 수가 많아 행정관청의 방문감독과 지도가 미치지 못하기도 하지만, 영세하기도 해서 비용이 드는 안전조치를 스스로 하기를 기대하기가 어렵다. 소규모사업장에 대해 고용노동부에서 지원하는 재정사업이 있다. 건강디딤돌, 클린사업장 조성지원, 산업재해예방시설 융자지원, 소규모 사업장 안전보건 기술지원사업 외 여러 가지가 있지만, 예산이 제한적이기도 하고, 대부분 사업주는 이러한 제도에 관심도 없거니와 알지 못한다.
 
대구 학교급식 노동자가 작업복을 입고 "안전"을 호소하고 있다(2021.5.27) / 사진. 평화뉴스 김영화 기자
대구 학교급식 노동자가 작업복을 입고 "안전"을 호소하고 있다(2021.5.27) / 사진. 평화뉴스 김영화 기자

이러한 구조적인 사각지대와 사업주의 무관심과 무능력이 위험한 작업장과 만나면 산업재해의 원인이 된다. 중대재해처벌법은 사업주에게 경각심을 줄 수 있을 것이지만, 50인 미만 사업장은 2024년까지 적용이 유예가 되었다. 당장 적용한다 해도 사업주의 관심은 얻겠지만, 안전대비 능력을 끌어올릴 수 있을 지는 미지수다. 거기에 비용의 문제를 해결할 수 있을 지는 의문이 든다.
 
위의 특징을 고려해보면 산재예방은 소규모사업장, 제조업, 건설업, 이직과 채용이 잦은 사업장에 집중 할 필요가 있다. 이들은 제도권에서 한발 물러나 있거나, 위험한 작업장을 가진 사업장들이다.

다시 대구로 돌아와 보자. 제조업 중 50인 미만 사업장에 근무하는 종사자는 대구지역은 71%나 된다.(전국 평균 58%) 도시에는 건설 붐으로 곳곳에 크레인이 우뚝 서 있다. 산재가 호발할 여건을 갖추고 있다. 선제적으로 예방하지 않으면 SPC의 젊은 청년과 달서구 건설 현장의 60대 아버지의 안타깝고 허망한 죽음을 또 어디선가에서 마주해야 할지도 모른다.
 
대구시청 인근 아파트 공사 현장 벽 틈의 안전모(2021.6.21) / 사진. 평화뉴스 김영화 기자
대구시청 인근 아파트 공사 현장 벽 틈의 안전모(2021.6.21) / 사진. 평화뉴스 김영화 기자

노동인구가 가장 많은 경기도는 이런 안전보건 사각지대를 인지하여 2018년 광역지자체 중 처음으로 '산재예방 및 노동안전보건 지원에 관한 조례'를 제정하였다. 50인 미만의 사업장, 토목 건설노동자와 다양한 취약 노동자를 지원대상으로 하고 산재를 줄이고 예방하는데 도지사의 책무를 부여하였다. 조례에는 산재예방 실행계획 수립, 예방 및 안전보건을 위한 사업 추진, 노동안전보건센터 설치를 노사민정협의회에서 심의하고, 지방노동청과 산업안전보건공단, 노동단체, 사업주단체, 연구기관등이 서로 협력하도록 하는 조항을 만들었다.

전국 17개 광역지자체 중 대구를 제외한 모든 지자체가 이미 노동자 안전보건 관련 조례를 제정하였지만, 사각지대가 많은 대구는 2022년 10월 31일에야 드디어 조례가 제정되었다. 대구지역 20만개의 50인 미만 사업장 중 제조업만 2만개가 넘는다. 지방노동청이나 산업안전보건공단의 인력과 재정으로 역부족이다. 이에 지방정부의 역할을 기대해본다.

 
 
 








[기고] 탁기홍
직업환경의학과 전문의. 대한산업보건협회 대구센터 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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