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론도 '정치권 처분'만 기다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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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은경..'여론' 없는 취수원 문제 / 인권.언론 문제에 침묵하는 언론

매일 매일 쏟아지는 신문과 방송의 뉴스는 그대로 우리 사회가 쓰는 일기이다. 그런데 그 일기의 내용이 매일 되풀이된다면? 사회 전체가 심각하게 병이 들었든지, 일기를 쓰는 사람들, 즉 지역사회 의사결정자들이 무감각이란 고질병에 걸렸든지, 일기 쓰는 일에 매달려 왜 일기를 써야하는지, 지역민의 관심사가 무엇인지 잊었기 때문이 아닐까?

최근 대구.경북 신문.방송이 써낸 대구.경북 일기, 나아가 우리 사회 전체를 대상으로 쓴 일기의 내용(담론)을 비중이 있어서 되풀이 한 것 중 몇 가지를 고른다면 (1)낙동강 물 오염에 따른 취수원 이전 문제, (2)학업성취도 평가 재점검 결과 발표 연기, (3)언론인 구속.체포, (4)이주노동자 사망 등을 꼽을 수 있다.

정치인들에게 모두 맡긴 듯한 수돗물 문제

먼저, 낙동강 물 오염 대책과 관련한 취수원 이전에 대한 담론.
지난 3월 25일 KBS대구는 ‘논란만 계속’ 제목으로 대구 수돗물 취수원 이전과 관련해 ‘정치권과 대구시, 경상북도의 해법이 모두 제각각’이라면서 ‘결국, 원점으로 되돌아가 취수원 이전에 대한 심도 깊은 논의가 필요할 것으로 보’인다고 보도했다. 한나라당 박종근 의원이 영주 송리원 댐의 저수량을 크게 늘려 대구 수돗물 취수원으로 이용할 것을 제안하자 같은 당 김광림 의원은 안동댐의 예를 들며 송리원 댐 확장에 반대의 뜻을 밝혔다는 것이다.

그동안 침묵해 오던 김관용 경북도지사도 취수원 이전에 지역민들의 이해관계가 얽혀있다며 사실상 반대 입장을 밝혔다(대구MBC 28일 뉴스데스크. ‘경북도, 대구 취수원 이전 부정적’). 이에 대해 김범일 대구시장은 ‘중앙에서도 싸움만 붙이지 말고 도와주시고 2백50만 대구 물 문제가 해결되도록 부탁드’린다고 말한 것으로 보도했다.

언론보도를 종합해보면 취수원 이전에 대해서는 경상북도의회의 안동지역 의원, 취수원 이전지로 거론되는 구미시 선산지역민들이 모두 반대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민주노총 대구본부 등 지역 시민사회단체 19개가 모인 대구지역 공공연석회의는 대구시의 취수원 이전 정책이 물 공공성을 해친다면서 취수원 이전은 낙동강 수질 문제를 포기하는 정책이며 지역 간의 갈등이 조장되고 비용문제로 수도요금 인상으로 이어진다고 주장했다(KBS대구, 3월 24일 ‘지역 시민단체 “취수원 이전 반대”’).

갈등 부르는 '취수원 이전'에 집착

문제는 대구시민들이 안전한 수돗물을 먹는 것과 취수원 이전의 상관관계이다. 대구시민이 안전한 수돗물을 먹기 위해서는 취수원 이전 외에 현재 취수 체계에서 안전을 위협하는 요소를 배제하는 방법도 있을 수 있다. 수돗물 생산 과정을 고도화한다든지 구미 등 공단 입주 업체의 위험물질 배출을 엄격히 규제하는 등 달리 방법이 있을 것이다.

그런데도 이런 방법에 초점을 맞추기보다 굳이 엄청난 예산이 소요되는 취수원 이전 사업만 공론화하려는 것은 ▲첫째, 구미공단 위험물질 배출 업체를 봐주면서 먹는 물 안전을 확보하려는 것이란 의혹, ▲둘째, 국민이야 세금을 얼마나 더 부담하든 대형 토목사업을 벌이고 보자는 또 다른 계산에서 나온 것으로 볼 수도 있다. 취수원 이전과 관련해서는 이해 당사자들이 맞섬으로써 그나마 원점에서 다뤄야 할 판이라니 불행 중 다행이라고나 할까.

보도에서 드러난 대로 대구시민이 안전한 물을 먹는 문제는 정작 주체가 돼야 할 대구시민이나 경상북도 도민의 의사는 완전히 배제된 상태에서 경북도지사-대구시장-한나라당 의원들끼리의 주고받기 담론으로 전환되고 말았다. 사태가 이런데도 김범일 대구시장은 ‘중앙에서 싸움만 붙이지 말고…물 문제가 해결되도록 부탁’한다고 했다. 그야말로 2백50만 시장으로서 가져야 할 기백은 간 데 없이 ‘네 탓이오’만 되뇌는 안타까운 모습이 아닐 수 없다. 김범일 대구시장이 섬겨야 할 대상은 대구시민인데 보도에 따르면 김 시장은 정치권의 처분만 기다리는 모습이다.
 
안전한 물 확보는 시민의 권리, 시민은?

대구시민이 안전한 물을 먹게 된다면 그것은 정치권의 시혜가 아니다. 당연한 권리이다. 안전한 먹는 물 문제를 근본적으로 해결하기 위해 대구시민과 경북도민이 만나고 필요하면 오염물질 배출업체가 만나는 자리를 시장-지사-정치권이 아니라 먹는 물 안전을 이슈로 다뤄온 언론이 만들 필요가 있다.

정치적으로 접근하는 정치인들(대구시장.경북지사도 물론이다)에게 맡긴다면 표를 먼저 계산하는 이들이 피해자 입장에서 접근할 리가 만무하다. 차라리 대구시민.경북도민이 정치권을 압박하도록 담론의 주도권을 시.도민이 쥐게 하는 것이 합리적이며, 근본적인 대안을 마련하는 데도 효과가 더 있을 것으로 보인다.

언론도 세월만 보내고 변죽만 울리는 정치권 주변을 맴돌며 ‘사실보도’를 했다고 자위하기보다 먹는 물 안전문제를 근본적으로 해결하는 대책을 마련하는 데서 지방언론으로서의 사명을 찾는 것이 바람직할 것이다.

먹는 물 안전 문제를 보도했으나 메아리 없는 정치권 공방을 중계방송하고 있는 데 대해 시.도민들이 ‘그래서 어쨌다는 말이냐’고 물을 때 건전한 지방언론기관을 지향한다고 자임해온 지역 신문.방송은 시.도민이 수긍할 수 있는 보도태도를 보여야 한다. 먹는 물 안전 대책이 도출되는 여부는 지역 언론이 먹는 물 안전문제를 여론의 중심에 올려놓느냐 여부와 달려 있다. 

학업성취도 평가 재점검 발표 연기 배경은?

지역 언론이 작게 다뤘으나 학생, 교사, 학부모 모두 관심을 가지고 있는 보도 가운데 하나는 분명히 교육문제-학업성취도 평가 문제이다. 당초 교육당국의 발표 내용이 조작 등 의문투성이여서 재조사하고 그 결과를 3월 25일 발표한다고 당국이 예고했으나 당국은 다시 4월 2일로 발표날짜를 연기했다(대구KBS, 3월 25일, ‘학업성취도 평가 재조사 발표 연기’).

이 같은 교육당국의 ‘외눈박이’ 정책에 대해 지역 일부 교사와 학부모 단체들은 토론회를 열고 지난해 학업성취도 평가 문항이 교육과정을 크게 벗어나 부진학생을 가려낸다는 본래 취지에 어긋난다고 지적했다(KBS대구, 3월 25일 “성취도평가문항 교육과정 벗어나”).

그런 가운데 교육당국은 진단평가를 3월 31일에 치를 것이라고 밝혔다. 이것은 문제가 아닐 수 없다. 크든 작든 문제점이 드러난 이상 바로잡고 교육 현장의 목소리를 ‘교육적으로’ 경청해야 할 텐데 마치 작전하듯 교육현안을 일방통행 식으로 몰아붙이고 있다.

누구나 입을 열면 ‘교육은 백년지대계’라고 말한다. 그러나 요즘 앞만 보고 달리는 교육당국의 처사를 보면 과연 이런 정책에서 품성 바르고 미래를 길게 내다볼 인간이 길러질 수 있을까 의문을 자아내게 한다. 또 인간을 기르는 ‘백년지대계’ 관련 정책에 신뢰를 담아내지도 못하고 있다. 무엇보다 학생들을 교육정책의 한낱 모르모트로 삼고 있다는, 또는 수단화 하고 있다는 인상이다. 언론은 교육당국과 교육단체의 공방 보도에 그치지 말고 ‘일제고사’로 치부되는 ‘학업성취도 평가’의 핵심을 원점에서 차근차근 다뤘으면 한다.

인권.언론자유...침묵하는 지역언론

이명박 정부 들어 가장 강조하는 것은(비록 구두선일지라도) ‘경제’이다. 반면에 노종면 YTN 노조위원장이 구속된데 이어, 광우병 관련 프로그램 관련 MBC PD가 검찰에 긴급체포(석방되기는 했지만)된 사실, 행정안전부가 국가인권위원회 정원을 대폭 줄이고, 대구 등 지역사무소 3곳을 폐쇄하려는 시도를 전한 3월 27일 대구MBC 보도 “언론탄압 중단”은 이명박 정부가 국민의 인권과 기본권인 언론자유를 지켜낼 의사가 과연 있기나 한 것인지 의구심을 금할 수 없게 했다.

인권과 언론자유는 우리 대한민국 헌법의 가치와 직결된다. 경제도 인간을 위해 있는 것이다. 또 행여 있을지 모를 국가의 권력남용으로부터 국민의 자유를 보호받는 수단은 강력한 정부 건설이나 비판적인 언론에 재갈을 물리는 데 있는 것이 아니라 그 같은 정부를 언론이 얼마나 잘 감시하느냐에 달려 있다. 최근의 언론인 구속, 체포, 가택 압수수색, 국가인권위 축소 시도는 우려에 우려를 금할 수 없는 사안인데도 우리지역에서는 대구MBC만 기자보도로 비중 있게 다뤘고 여타 공중파 텔레비전 방송은 침묵했다. 안타까운 일이 아닐 수 없다.

살인적 노동, 이주노동자 과로사

외국인 노동자들의 열악한 근무환경과 살인적인 근무시간 때문에 잇따라 돌연사하고 있는 사실을 다룬 지난 25일 KBS대구의 ‘돈 벌러 왔다가…’ 보도는 비단 외국인 노동자뿐만 아니라 이 땅에서 힘없이 소수자로 살아가는 것이 얼마나 힘든 일인지 일깨웠다.

“최근 외국인 노동자가 늘고 있고, 불법 체류자도 늘고 있는 상황인데, 외국인 노동자들이 일하는 영세 사업장을 일일이 관리감독 하기 어렵다” 대구지방노동청 관계 공무원의 말이다. 공무원의 업무에 분명 한계는 있을 수 있다. 그러나 소수자의 작업환경에 노동자가 과로사할 만큼 구멍이 뚫려있다면 그것은 여간 큰 문제가 아닐 수 없다. ‘다음은 누구 차례인가?’ 이 보도는 시청자들에게 묻고 있는 것이다.






[평화뉴스 - 미디어 창 24]
여은경(대구경북민주언론시민협의회 사무처장. 전 대구일보 사회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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