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세대의 탐욕, 아픔 껴안은 낙동강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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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토에세이] 김동은 / '새마을 모자' 잘 어울리던 씨 뿌리던 할아버지는 지금...



아주머니의 익숙한 손놀림이 땅을 몇 번 긁자 도시 촌놈이 보기에 나무뿌리 같은 것이 수북 쌓인다. 귀한 ‘약초’라고 했다. 낙동강변의 땅이 비옥해 ‘약초’가 잘 된다고 했다. 이렇게 많은 이들이 강변에서 땀을 흘리고 있었다. 불과 14개월 전, 2009년 늦가을 낙동강 변에는...


황금 빛 나락이 영글어갈 무렵 큼직한 글씨의 팻말이 논두렁에 꽂혔다. 30년 동안 황무지를 옥토로 만들어 놨더니 강물 오염의 주범이라며 당장 떠나라고 했다. 그래도 할아버지는 밭에 씨를 뿌렸다. 설마했다.


2011년 첫 낙동강 순례를 떠난다고 했다. 나도 따라 나섰다. 대구 아침 기온이 영하 13.1도, 완전 무장을 하고 낙동강위에 섰다. 강에서 불어오는 바람은 칼날 같았다. 살을 엔다는 것이 이런 것인가? 입이 얼어서 아무도 말을 하지 못했다. 그리고 너무나 처참한 낙동강의 모습에 아무도 말을 못했다. 엄동설한에 굴착기로 얼음을 깨고 강바닥을 연신 퍼 올리고 있었다. 뭐가 그리도 급할까?


굴착기가 얼음을 깨는 소리가 강을 타고 흐른다. 강 허리를 자른 ‘보’는 이미 하늘 높이 솟아 있었다. 포크레인 삽날은 깊게 더 깊게 강바닥을 퍼 올린다. 목표는 깊이 ‘6미터’. ‘6미터의 비밀’을 듣지 못하게 국민들의 눈과 귀를 막아도 그 비밀을 모르는 사람은 바로 그들 뿐 이다.


‘해평습지’를 가로지르는 낙동강 ‘숭선대교’에 올랐다. 14개월 전만 해도 철새들의 보금자리인 해평 습지가 다리 상류와 하류에 펼쳐져 있었다. 그러나 이제는 완전히 발가벗겨져 황토빛 속살을 그대로 드러내고 있었다. 몇 마리 이름 모를 철새들만이 내려앉을 곳을 찾지 못해 공사장 위를 배회하고 있었다.


아직은 떠나지 못한 철새들도 있었다. 굴착기 기사들이 담배라도 한 대 피우는 것일까? 공사장의 소음이 잠시 멈추자 어디선가 큰고니 가족들과 오리들이 나타나 물위를 헤엄친다.  카메라 앵글에 잡힌 풍경은 14 개월 전 낙동강의 평화로운 모습 그대로이다. 배경에서 굴착기와 덤프트럭만 지운다면...


휴식 시간은 그리 길지 않았다. 강 건너편 공사 현장에서 큰 굉음이 들려오고 굴착기의 배기관에서 시커먼 연기가 피어오르자 ‘큰고니’들은 갑자기 물을 차고 날아 오른다. 오리들은 이미 사라지고 없었다. 수자원 공사는 이렇게 말한다. ‘낙동강의 대표적 철새인 큰 고니의 날개를 형상화한 30미터 높이의 함안보를 추위도 잊고 공정을 수행하여...’ 철새가 떠난 낙동강에서 콘크리트 보를 쳐다보며 아름다운 큰 고니의 날개를 추억하라는 것인가?   


또 하나의 ‘F-1 그랑프리 자동차 경주’가 겨울 낙동강에서 펼쳐진다. 다만 참가한 자동차가 ‘벤츠 슈퍼카’가 아니라 큰 덩치의 ‘덤프트럭’이다. 강에서 퍼올린 흙을 가득 실은 채 뿌연 먼지를 일으키며 엄청난 속도로 구불구불한 ‘낙동강 서킷’을 내달린다. 누구를 위한, 무엇을 위한 한겨울의 레이스인가?


‘덤프트럭’의 최종 목적지는 결승점이 아니라 강 주변의 비옥한 논이었다. 어릴 적 매서운 북서풍이 불어오면 마을입구의 논 배기는 ‘꽤 괜찮은 썰매장’이 되었다. 나무 궤짝으로 만든 썰매도 없었던 ‘추운 줄도 모르는 동네 꼬마 녀석들’은 ‘비료포대’를 타면서도 즐거워 깔깔 거렸다. 그러나 올겨울에는 아이들의 웃음소리를 들을 수 없다. 덤프트럭에 실려 온 갈 곳 없는 퇴적토가 논배미에 아이들 키 수십 배의 높이로 쌓였기 때문이다. ‘농경지 리모델링 사업’이란다.


그동안 너무 무심했었던 것 같아서 낙동강 순례에 따라 나섰다. 사실 14개월 전 낙동강 변에서 만났던 어르신들이 보고는 싶었지만 만날 수 있으리라는 기대는 별로 없었다. 그러나 순례를 마치면서 그들을 영원히 다시 만날 수 없으리라는 슬픈 ‘확신’이 생겼다. 이미 많은 것들이 낙동강을 떠났음을 알게 되었다. ‘새마을 모자’가 잘 어울리시던 씨 뿌리던 할아버지는 지금 어디에 계실까?


순례를 마치며 느낀 점은 바로 두려움이다. 수 만년 강을 따라 흐른 것은 눈에 보이는 강물뿐이 아닐 것이다. 한 많은 우리 조상들의 얼이 강을 따라 흘렀고, 뭇 생명들의 혼이 강을 따라 이어져 왔다. 강은 결코 오늘을 살아가는 우리들만의 소유가 아니다. 그런 강을 우리 세대에 우리들의 탐욕으로 이렇게 함부로 파 뒤집어도 되는 것인가? 
 
아픔을 껴안은 채 낙동강은 오늘도 아무런 내색 없이 말없이 흘러간다.
그 낙동강에 날이 저문다.






[포토에세이] 글.사진 / 김동은
의사. 이비인후과 전문의. 대구경북인도주의실천의사협의회 사무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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