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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교는 사회 문제에 침묵해야 하나?
[김윤상 칼럼] "정교분리는 불의를 외면하라는 원리가 아니다"
2011년 01월 17일 (월) 00:00:49 평화뉴스 pnnews@pn.or.kr

가톨릭 서울대교구장을 맡고 있는 정진석 추기경이 지난해 12월 '주교단에서는 4대강 사업이 자연 파괴와 난개발의 위험이 보인다고 했지 반대한 것은 아니다'라고 하자 원로 사제들이 사실과 다르다고 비판한 일이 있었다. 가톨릭은 엄격한 위계질서를 유지하는 교단이라고 알고 있던 일반인을 놀라게 한 사건이다.

서울대교구 환경사목위원회가 주최한 제3회 가톨릭 에코포럼을 평화방송에서 녹화하였는데 정홍규 신부의 강연 중 4대강 관련 내용이 편집되는 일도 있었다. 또 천주교정의구현 전국사제단의 대표인 전종훈 신부는, 안식년을 받을 해가 아닌 2008년에 안식년 발령을 받았고 그게 한 해도 아니고 3년간 이어지고 있다. 전 신부는 사제단 대표로서 2007년 김용철 변호사의 삼성 비자금 폭로를 주선했고, 2008년에는 촛불집회 시국미사에 나섰었다.

이런 일은 정진석 서울대교구장의 직간접적인 지시에 의해 일어났다고 한다. 정진석 추기경은 아마도 ‘정교분리’를 넓게 해석하여 종교 단체 또는 성직자가 특정 정책이나 사회 문제에 개입하는 것은 옳지 않다는 견해를 가지고 있는 듯하다.

   
▲ <조선일보> 2010년 12월 14일자 3면

정교분리의 참뜻은?

정교분리는 오늘날 대부분 현대 국가의 보편적 원칙이다. (일부 이슬람 국가는 예외로 보인다.) 우리 헌법에도 “국교는 인정되지 아니하며, 종교와 정치는 분리된다”고 되어 있다(제20조 제2항). 정교분리는 원래 국가가 특정 종교에 편향된 정책을 취해서는 안 된다는 뜻이었다. 이 표현을 처음 사용한 토마스 제퍼슨도 “입법부가 종교의 창설을 권장하거나 제한하는 법을 제정해서는 안 된다”고 하면서 “교회와 국가를 분리하는 담장을 두어야 한다”고 하였다.

이처럼 정교분리는 국가의 의무로 출발했지만, 오늘날에는 종교단체의 의무이기도 하다는 것이 통설이다. 종교단체가 본연의 임무와 무관한 정치활동, 예를 들면 직접 정당을 결성한다든지 선거에 개입하는 것은 금지된다. 그러나 정치와 종교는 겹치는 부분이 많다. 정치의 목표는 좋은 사회를 만드는 것이고, 종교 역시 가난하고 핍박받는 사람을 적극 배려해야 한다고 가르친다. 또 과거에는 종교에 많이 의존했던 구빈 또는 복지 업무를 정부가 떠맡아가고 있는 추세이기도 하다. 그래서 목표와 기능에서 중복이 없을 수 없다.

종교가 특정 정책에 대해 어느 정도까지 찬반 활동을 할 수 있는지 선을 긋기는 어려운 문제이지만, 적어도 종교가 지향하는 근본 가치에 역행하는 정책이나 정권에 대해서는 비판하고 반대하는 것이 당연하다. 나치 세력처럼 특정 부류의 인간을 말살하는 정치집단이 있다고 할 때 정교분리를 이유로 침묵한다면 이건 종교의 자기 부정과 다르지 않다.

맥글린 신부의 파문 그리고 레오 13세

사회 문제를 둘러싸고 벌어진 교단 내 갈등의 예로 100여 년 전 사례를 하나 소개한다. 미국의 사회개혁가 헨리 조지가 1879년 발간한 <진보와 빈곤>은 엄청난 반향을 일으켰다. 헨리 조지는 이 책에서, 토지 이익을 소수가 차지하도록 허용하는 토지사유제 때문에 극심한 빈곤이 발생한다고 진단하고 이를 해결하려면 토지 불로소득을 환수해야 한다고 하였다.

뉴욕의 사제였던 맥글린 신부도 이를 적극 지지하면서 빈민 구제 및 토지개혁 운동을 헨리 조지와 함께 펼쳤다. 그러나 당시 교단 내 보수파 실력자 코리건 대주교는 맥글린 신부에게 자제하라는 명령을 내렸고, 맥글린 신부는 명령에 불복하여 결국 파문되기에 이른다. 오늘 우리 가톨릭의 모습과 비슷하다.

그 직후 교황 레오 13세는 1891년에 회칙 <새로운 사태>(Rerum Novarum, 일명 <노동 헌장>)을 반포하였다. 회칙은 노동자를 빈곤의 늪에 몰아넣는 현실 자본주의의 잘못을 지적하는 동시에 사회주의 운동 역시 정답이 아니라고 비판하면서 교회적 해법을 제시한다. 회칙은 비참했던 노동자의 상태에 대해 가톨릭 교회의 공식 입장을 밝힘으로써 좁은 의미의 종교 문제를 넘는 사회 문제에 본격적인 발언을 시작한 기념비적 문건이다.

종교가 현세의 불의를 외면해서는 안 된다

회칙에서는 사회 문제에 대한 종교의 사명을 이렇게 표현하고 있다. “교회의 모든 배려가 지상의 현세적 삶에 속하는 것을 무시하면서까지 오로지 영혼의 구원에만 전적으로 쏠려 있다고 믿어서는 안 된다.” 그런데 회칙에는 토지 불로소득을 정당화하는 것으로 해석될 수 있는 내용이 있어 헨리 조지는 이 부분의 오류를 지적하는 <공개서한>을 발표한다. 그 몇 달 후 교황청은 재심을 거쳐 맥글린 신부를 복권시킨다.

필자는 (종교가 없으면서도) 종교의 임무에 대한 헨리 조지의 견해에 공감한다. 독자와 나누고 싶어 인용해 본다.

인간이 모든 생활에서 ― 교회에서만이 아니라 직장에서, 시장에서, 토론장에서, 의회에서 ― 지켜야 할 분명하고 확실한 정의의 규칙을 제시하지 않는다면 ..... 종교의 임무는 무엇이란 말입니까? ..... 내세에 대해서 무슨 약속을 하건 간에 현세의 불의를 방지하기 위해 아무 것도 할 수 없다면 종교가 무슨 소용이 있습니까? (출처: <공개서한>)

빈곤에서 생기는 고통과 야만성을 하나님의 불가사의한 섭리로 돌리거나, 두 손을 모으고 만물의 아버지 앞에 가서 대도시의 궁핍과 범죄의 책임을 회피한다면 형식상으로는 기도일지 모르나 실제로는 신성모독이다. 영원하신 존재를 폄하하는 행위이다. (출처: <진보와 빈곤>)


   





[김윤상 칼럼 35]
김윤상 / 경북대 행정학부 교수. 평화뉴스 칼럼니스트 yskim@knu.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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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기은
(122.XXX.XXX.226)
2011-01-17 12:09:08
제정일치,즉 종교는 정치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삶이라는 측면에서 보면 종교와 정치는 불가분
전체기사의견(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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