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참히 파헤쳐진, 그 곳 낙동강 해평습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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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르포] "생태계 파괴, 무관심도 죄...단 1%라도 희망 있다면 4대강 사업 반드시 막아야"


해평으로 가는 길은 아름다웠다. 늦가을 오후 구름사이로 비친 햇살에 울긋불긋한 단풍들이 저마다 색을 뽐내고 있었다. 추수를 막 끝낸 들녘과 형형색색으로 물든 산의 모습이 잘 어우러져 가을의 정취를 실감케 했다.

그러나, 해평습지가 가까워질수록 조금 전 아름다웠던 풍경들이 점점 사라지고 논을 가득채운 토사들과 덤프트럭 행렬이 나타났다. 낙동강에서 파낸 모래들을 인근 농경지에 매립하는 농지 리모델링 작업이 한창 진행되고 있었다.

순간 눈앞의 상황을 의심했다. '이곳이 정말 내가 알고 있던 해평습지의 모습이 맞는가?'하는 생각이 들었다. 구미에서 태어나 26년간 줄곧 살아온 기자도 고향에서 이런 일이 벌어지고 있을 줄은 꿈에도 몰랐다. 무참히 파헤쳐진 낙동강의 모습에 비참하고 안타까운 심정이 동시에 밀려왔다.

해평습지로 가는 길...'농지 리모델링' 공사로 해평면 일대 논과 밭이 모두 파헤쳐져 있었다 / 사진. 평화뉴스 박광일 기자
해평습지로 가는 길...'농지 리모델링' 공사로 해평면 일대 논과 밭이 모두 파헤쳐져 있었다 / 사진. 평화뉴스 박광일 기자

11월 8일 오후, 4대강 개발 사업이 한창 진행 중인 구미시 해평면 일대를 찾았다. 이곳에서는  2010년의 마지막 '생명평화미사'와 '철새도래지 해평습지 순례'가 진행 될 예정이었다.

적잖은 충격을 받고 도착한 낙동강 해평취수장 옆 뚝방. 천주교 신자와 시민단체 회원을 비롯해 200여명이 이곳을 찾았다. 차에서 내려 뚝방 위로 올라가자 거센 모래바람이 불어왔다. 이 곳에서 열릴 예정이던 '생명평화미사'와 '문화공연'이 추운날씨와 모래바람 때문에 해평성당으로 장소가 바뀌었다.

참가자들이 뚝방 위에서 망원경으로 낙동강 건너 철새의 모습을 관찰하고 있다 / 사진. 평화뉴스 박광일 기자
참가자들이 뚝방 위에서 망원경으로 낙동강 건너 철새의 모습을 관찰하고 있다 / 사진. 평화뉴스 박광일 기자
해평취수장 옆 뚝방에서 바라본 4대강 사업 공사현장 / 사진. 평화뉴스 박광일 기자
해평취수장 옆 뚝방에서 바라본 4대강 사업 공사현장 / 사진. 평화뉴스 박광일 기자

당초 이날 마지막 순서로 예정된 '철새도래지 순례'도 미사 전 앞당겨 진행됐다. 뚝방 위 설치된 망원경으로 낙동강 철새들의 모습을 살펴본 뒤 강변을 따라 20여분 정도 걸었다. 공사가 한창 진행 중인 낙동강의 모습과 그 너머에서 잠시 쉬고 있는 철새들이 보였다. 얼마 남지 않은 모래톱과 시끄러운 중장비 사이에서 휴식을 취하고 있는 새들의 모습이 위태로워 보였다.

'습지와 새들의 친구' 김경철 사무국장은 "철새 두루미의 서식지로는 넒은 모래톱과 농경지가 최적인데, 4대강 공사로 모래톱이 줄어들어 새들이 편하게 쉴 수 없다"며 "정부에서 철새들을 위해 이곳에 모래톱 대신 자갈을 깔고 솟대를 세운다는 것은 잘못된 정책"이라고 말했다.

'습지와새들의친구' 김경철 사무국장이 해평취수장 옆 낙동강 뚝방에서 해평습지와 철새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오른쪽은 '낙동강을생각하는대구사람들' 임성무 회원) / 사진. 평화뉴스 박광일 기자
'습지와새들의친구' 김경철 사무국장이 해평취수장 옆 낙동강 뚝방에서 해평습지와 철새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오른쪽은 '낙동강을생각하는대구사람들' 임성무 회원) / 사진. 평화뉴스 박광일 기자

짧게나마 철새도래지 순례를 마치고 도착한 해평성당.
미사에 앞서 노래패 '내가그린', 대금연주가 여병동, 영천 산자연학교 학생들의 문화공연이 시작됐다. '내가그린'의 한 멤버는 공연에 앞서 "지금 임신 8개월 째"라며 "장차 태어날 아이들과 힘께 철새를 보고 싶은데, 그러지 못할 것 같아 안타깝다"는 심정을 밝혔다. 교사이자 대금연주가인 여병동 씨의 애절한 대금연주가 끝나자 곳곳에서 '앵콜'요청이 들어왔다. 여병동 선생이 앵콜곡으로 '아리랑'을 연주하자 참석자들이 함께 노래를 따라 부르며 '4대강사업 중단'를 염원했다. 영천 산자연학교 학생들의 합창공연에는 모두가 박수치며 즐거워했다.

이어 '4대강사업 중단을 촉구하는 10차 대구생명평화미사'가 봉헌됐다. 200여명의 천주교 신자와 시민단체회원, 시민들이 참석한 이날 미사는 해평성당 이성한 주임신부의 주례로 대구대교구 김영호 사목국장 신부, 경산 용성성당 권혁시 주임신부, 대현성당 한명석 주임신부, 안동교구 상주 개운동성당 김진조 주임신부, 문경 모전성당 정희완 주임신부를 비롯해 사제 12명이 공동 집전했다.

4대강 사업 중단을 촉구하는 생명평화미사(2010.11.8 구미 해평성당)...이 미사는 해평성당 이성한 주임신부를 비롯해 천주교 대구대교구와 안동교구 사제 12명이 공동집전 했다 / 사진. 평화뉴스 박광일 기자
4대강 사업 중단을 촉구하는 생명평화미사(2010.11.8 구미 해평성당)...이 미사는 해평성당 이성한 주임신부를 비롯해 천주교 대구대교구와 안동교구 사제 12명이 공동집전 했다 / 사진. 평화뉴스 박광일 기자

"단 1%의 희망이라도 남아있다면..."

이 미사의 강론은 ‘습지와 새들의 친구’ 김경철 사무국장이 맡았다.
김 사무국장은 "새는 우리 인간의 삶이 얼마나 풍요로운가를 나타내는 지표"라며 "새가 없는 땅에서 사람도 살 수 없다"고 주장했다. 또 "4대강 사업에 찬성하는 사람들이 '20조원의 예산 중 벌써 10조원이 투입돼 지금 그만두면 엄청난 손해'라고 주장한다"며 "그러나 나머지 10조원이 더 낭비되고 환경이 파괴되기 전에 단 1%의 희망이라도 남아있다면 4대강 사업을 반드시 막아야한다"고 말했다.

생명평화미사에서 강론하고 있는 '습지와 새들의 친구' 김경철 사무국장 / 사진. 평화뉴스 박광일 기자
생명평화미사에서 강론하고 있는 '습지와 새들의 친구' 김경철 사무국장 / 사진. 평화뉴스 박광일 기자

 "생태계 파괴, 무관심도 죄"

김영호 사목국장
김영호 사목국장
지난 4월부터 10차례의 '생명평화미사'를 이끌어 온 천주교 대구대교구 김영호 사목국장 신부는 '환경에 대한 한국천주교주교회의 지침서'를 인용해 "신앙인은 하느님이 창조하신 자연을 돌보고 가꿔야 할 책임이 있고, 이것은 교도권의 가르침이자 거절할 수 없는 하느님의 요청"이라며 "십계명을 어기는 것만이 죄가 아닌, 생태계 파괴에 동조하거나 참여하거나 무관심 한 것도 죄를 짓는 일"이라고 말했다.

또 "정의와 평화와 생명을 위해 일하라는 산상설교의 가르침을 받은 우리 교회와 신앙인들은 불의와 죄악과 맞서 싸워야한다"며 "4대강 토목공사에 대해 명백히 반대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한편, 천주교 정의구현사제단은 11월 8일부터 매일 저녁 7시 30분 서울 여의도 국회의사당 맞은편에서 '4대강 사업반대 매일미사'를 봉헌한다. 천주교 대구대교구 사제단은 22일 같은 장소에서 미사를 집전할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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