낙동강과 함께 한 시간, 그리고 '어떤 사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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⑦ 정수근 / "지금의 나부터 그 어떤 사랑을, 더 많은 강이 된 나를.."



2010년, 돌아보면 어떠신지요? 한 해를 보내며 대구의 8명에게 '소회'를 물었습니다. 조금은 특별한, 그리고 참 바쁘게 보냈을 '현장'의 사람들입니다. ▷헌 책방을 연 변홍철 '물레책방' 인문학연구실장 ▷새내기 기자로 첫 발을 내디딘 영남일보 김일우 기자 ▷창립 20년을 맞은 '예술마당 솔' 손병열 대표 ▷생존의 현장을 뛰어다닌 인권운동연대 서창호 상임활동가 ▷20년 주민운동에서 풀뿌리의회에 들어간 유병철 북구의원 ▷논란 속에 6.2지방선거 연대판에 선 대구시민단체연대회의 김동렬 운영위원장 ▷4대강 사업 현장의 절절한 목소리를 전해 온 '낙동대구' 정수근 카페지기 ▷포화 속 한반도에서 여전히 '통일'의 꿈을 찾아가는 6.15대경본부 오택진 사무처장입니다. 이 글은 '낙동대구' 정수근 카페지기의 2010년 소회입니다.


사랑

                      박형진

풀여치 한 마리 길을 가는데
내 옷에 앉아 함께 간다
어디서 날아왔는지 언제 왔는지
갑자기 그 파란 날개 숨결을 느끼면서
나는
모든 살아 있음의 제 자리를 생각했다
풀여치 앉은 나는 한 포기 풀잎
내가 풀잎이라고 생각할 때
그도 온전한 한 마리 풀여치
하늘은 맑고
들은 햇살로 물결치는 속 바람 속
나는 나를 잊고 한없이 걸었다
풀은 점점 작아져서
새가 되고 흐르는 물이 되고
다시 저 뛰노는 아이들이 되어서
비로소 나는
이 세상 속에서의 나를 알았다
어떤 사랑이어야 하는가를
오늘 알았다


앞산 그리고 '어떤 사랑'

때는 2008년 가을 무렵이었습니다. ‘앞산터널 반대’ 용두골 농성장에서 임박한 그곳의 아름드리나무들의 벌목공사를 막기 위해 ‘앞산꼭지(앞산을 꼭 지키려는 사람들의 모임)’라 불리는 사람들이 돌아가면서 밤 당번을 쓰던 그때, 그날도 농성은 계속되었고 홀로 농성장 밤 당번을 서고 있을 때였습니다. 잠이 오지 않는 늦은 밤 등산로를 따라 산책을 돌고 와서 농성텐트 바로 앞의 키가 큰 히말라야시다 옆에 접이의자를 펴고 앉아 가로등 불빛에 가만히 책을 읽고 있었습니다.

앞산터널 공사를 반대하는 시민들이 대구시 달서구 달비골 나무 위에서 공사 중단을 촉구하는 고공농성을 벌이고 있다(2008) / 사진제공. 앞산꼭지
앞산터널 공사를 반대하는 시민들이 대구시 달서구 달비골 나무 위에서 공사 중단을 촉구하는 고공농성을 벌이고 있다(2008) / 사진제공. 앞산꼭지

한참을 그렇게 앉아 책을 읽고 있는데 갑자기 내 왼쪽 어깨 위에 이상한 기운이 들면서 뭔가가 사뿐히 내려앉는 느낌이 들었습니다. 돌아보니 그것은 놀랍게도 한 마리 풀여치였습니다. 그 연두빛 낯선 생명체가 그렇게 나에게로 다가온 것이었습니다. 그 순간 어렴풋한 느낌이 왔습니다. 저 숲이, 저 앞산이 나를 받아주고 있는 것이 아닌가 하고 말입니다.

그날 그 사건 이후 나는 이전의 나와는 좀 달라진 것 같습니다. 저 풀여치가, 저 앞산이 나와 별개의 존재가 아니라 나와 밀접히 관계를 맺고 있구나란 것을 몸으로 체험을 했다고나 할까요? 그래서 저 변산의 농부시인이 “비로소 나는 이 세상 속에서의 나를 알았다”라고 노래한 것처럼 저 또한 존재의 자각을 하게 되었던 것입니다.   

그리고 바로 그때부터 내가 발을 딛고 있는 이 세상과 나는 결코 유리된 존재가 아니라 유기적으로 끈끈한 관계를 맺고 살아갈 수밖에 없는 것이란 것을 ‘머리’가 아닌 ‘몸’으로 체득하게 되었고, 그 “어떤 사랑”을 찾아 나설 수밖에 없는 것이었습니다.    

그날 이후 그렇게 저는 한 마리 풀여치로, 앞산으로 살았고, 이 대구 땅에서 ‘대구사람’으로 온전히 살아가기 위해 나름 노력했습니다. 그러나 대구에서 사는 힘겨움을 '역시나' 체험을 하면서 그러나 또한 그 가능성을 찾아가면서 우리지역 대구를 머리가 아닌 몸으로 알아가기 위해 그렇게 살았던 것입니다.

낙동강의 호명

물론 그 1년 반이란 시간은 그리 길지 않은 시간이었고, 그렇게 지난해를 살고 난 올해 초엔 자연스레 보다 ‘더 큰 대구’를 찾아 저의 촉수는 다시 낙동강으로 향했습니다. 그것은 연초부터 날아온 지율스님의 호명 때문이기도 했습니다만, 보다 정확히 말하면 낙동강과 그 안에 깃든 뭇 생명들의 호명으로 시작된 것이었습니다. 지난 1월 말의 ‘낙동강 숨결 느끼기 순례’는 낙동강이 왜 사람들을 불러 모으고 있는지를 알게 해주었습니다. 그 이틀의 기억은 아직도 생생합니다. 

'낙동강 숨결 느끼기 순례' 참여자가 추운 겨울임에도 불구하고 내성천에 발을 담그고 강을 느껴보려 하고 있다 / 사진. 정수근
'낙동강 숨결 느끼기 순례' 참여자가 추운 겨울임에도 불구하고 내성천에 발을 담그고 강을 느껴보려 하고 있다 / 사진. 정수근

강바닥을 낮게 드리우며 유유히 흘러가던 내성천의 그 아름다운 저녁 물길과 물안개가 소곤소곤 피어오르던 하회마을 앞의 반변천의 그 새벽 풍경을 어떻게 잊을 수 있을까요? 강물을 따라 걸으며 가만히 눈을 감고 강이 전하는 이야기에 귀를 기울이며, 그 강에 손과 발을 담그면서 잠시나마 강과 하나가 되어본 그 시간들을 잊을 수 없습니다.

강변에 점점이 박힌 왜가리, 물떼새, 고라니, 노루, 수달 등등의 그 수많은 생명의 발자국들과 그들의 몸속에서 나온 배설물들. 그랬습니다. 강은 생명의 자궁과도 같은 곳이었고, 모든 생명들을 품어 기르는 어미의 본성을 그대로 간직한 공간이었습니다.

낙동강 해평습지에서 지난 3월 만난 고니들의 유영. 굴착기 한 대의 삽질과 묘한 대조를 보이고 있다. 이렇듯 낙동강은 이들 야생동물의 공간이기도 한 것이다 / 사진. 정수근
낙동강 해평습지에서 지난 3월 만난 고니들의 유영. 굴착기 한 대의 삽질과 묘한 대조를 보이고 있다. 이렇듯 낙동강은 이들 야생동물의 공간이기도 한 것이다 / 사진. 정수근

그날 이후 저는 낙동강을 제 존재의 한 부분으로 받아들일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래서 그를 알아가기 위해서 낙동강에 나서는 시간이 많아졌고, 그에 따라 그가 지금 엄청난 고통을 당하고 있는 아픈 현장을 수도 없이 목격해야만 했습니다.

  '낙동대구'와 '대구생명평화미사'

대구 달성보에서 봉헌된 '4대강 사업 저지 대구생명평화미사'(2010.4.10)...원유술 신부(포항 죽도성당 주임)가 "4대강 사업 저지에 함께 나서달라"고 당부하고 있다. / 사진. 평화뉴스 공정옥 객원기자
대구 달성보에서 봉헌된 '4대강 사업 저지 대구생명평화미사'(2010.4.10)...원유술 신부(포항 죽도성당 주임)가 "4대강 사업 저지에 함께 나서달라"고 당부하고 있다. / 사진. 평화뉴스 공정옥 객원기자

그의 신음이 깊어질수록 마음이 다급해졌고, 그를 만나러 나서는 시간이 많아질수록 그를 위해서 뭔가를 해야만 했습니다. 그래서 비슷한 고민을 하는 분들과 만나 신음하는 낙동강을 위해서 “무엇이라도 하자” 해서 함께 결성한 것이 ‘낙동대구’(낙동강을 생각하는 대구사람들)란 모임이었습니다.

그들과 함께 과연 우리가 이 대구 땅에서 낙동강을 위해서 할 수 있는 일이 무엇일까 고민했고, 그 고민은 천주교 대구대교구 환경연대 신부님들과의 모색으로 이어져 대구생명평화미사로까지 이어졌습니다. 지난 4월 10일 달성보 건설현장방에서부터 시작된 생명평화미사는 지난 11월 8일 해평습지에서의 올해 마지막인 제10차 생명평화미사까지 이어졌습니다. 그렇게 낙동강과 뭇 생명들을 위한 기도의 장이 만들어지면서 4대강 토목사업의 찬성 여론이 월등한 이곳 대구에서도 진실을 향한 투쟁의 장이 열린 것입니다. 

4대강 사업 중단을 촉구하는 생명평화미사(2010.11.8 구미 해평성당)...이 미사는 해평성당 이성한 주임신부를 비롯해 천주교 대구대교구와 안동교구 사제 12명이 공동집전 했다 / 사진. 평화뉴스 박광일 기자
4대강 사업 중단을 촉구하는 생명평화미사(2010.11.8 구미 해평성당)...이 미사는 해평성당 이성한 주임신부를 비롯해 천주교 대구대교구와 안동교구 사제 12명이 공동집전 했다 / 사진. 평화뉴스 박광일 기자

이렇게 낙동대구는 한축은 낙동강의 4대강 삽질의 현장으로, 또 다른 한축은 시민 선전전을 지역의 여러 단체들과 함께하면서 단군 이래 최악의 토건사업으로 죽어가는 낙동강의 아픔을 시민들에게 널리 알려왔던 것입니다. 

강은 흘러야 한다는 그 평범한 진리


지율스님이 손수 만든 낙동강 물길 지도 사진. 마치 인체의 혈관을 보는 것과 같은 낙동강 물길의 모습이다.
지율스님이 손수 만든 낙동강 물길 지도 사진. 마치 인체의 혈관을 보는 것과 같은 낙동강 물길의 모습이다.
제겐 지금까지 또렷이 각인된 한 장의 사진이 있습니다. 그것은 지율 스님이 손수 만든 낙동강 1,300리 물길을 담은 낙동강 물길 지도 사진입니다. 그 지도는 마치 인체의 혈관과도 같이 이 땅을 감싸 흐르고 있는 낙동강의 물길을 생생히 증거하고 있습니다.

그 사진을 처음 봤을 때의 강렬한 느낌은 아직도 생생합니다. 그것을 보고 있으면 ‘강은 흘러야 한다’는 것은 상식중의 상식입니다. 강은 그렇게 이 땅을 어루만지면서 유유히 흘러가는 것입니다. 물길은 이리 저리 부딪히며 때론 범람을 하면서 때론 가물어 물줄기가 가늘어지면서 느릿느릿 그렇게 흘러가는 것입니다. 그러나 오직 한 가지 불변하는 진리는 어떠한 일이 있어도 강은 막히지 않고 ‘흘러야 한다’는 사실입니다.

그러나 혈관이 막히면 생명체가 죽듯이 강의 흐름을 막는다는 것은 생명의 본성을 거스르는 일이고 강을 죽이는 행위입니다. 이명박 정권은 지금 그 혈맥을 막아 세우고 콘크리트를 처발라 유유히 흘러가는 낙동강을 인공의 수로로 만들려 하고 있는 것입니다. 도산의 국토개조론까지 아전인수해가면서 삽질의 논리를 강변하고 있는 그는 지금 강을 죽이고 급기야 이 땅의 목숨마저 끊으려 하고 있는 것입니다.

4대강 사기극, 친수구역 특별법

그것은 지난 12월 8일 한나라당이 ‘도발한’ 국회 날치기를 보면 더욱 자명해집니다. 이명박과 한나라당은 ‘친수구역 특별법’을 날치기로 통과시켜 4대강 사업의 검은 속셈을 본격화했습니다. 수공에게 떠넘긴 8조원의 개발이익을 보상하기 위한 이 법안으로 대규모 토건사업을 불러올 것이 불을 보듯 뻔합니다.

낙동강 물길이 180도 회감아 흐르는 고령군 다산면의 모습. '친수구역 특별법'은 바로 이런 땅을 노리고 있다 / 사진. 정수근
낙동강 물길이 180도 회감아 흐르는 고령군 다산면의 모습. '친수구역 특별법'은 바로 이런 땅을 노리고 있다 / 사진. 정수근

토건사업의 이익이 10% 선이라고 하는데, 그 8조원의 개발이익을 보장하기 위해선 80조 이상의 토건사업을 벌일 수밖에 없습니다. 80조란 그 어마어마한 돈은 4대강 예산의 4배에 가깝습니다. 4대강 토건사업이란 이 미친 사업을 4번을 더 벌이겠다는 소리에 다름 아닌 것입니다. 만약 그리 된다면 4대강의 생태계는 완전히 전멸하겠지요.

대구 화원유원지 화원동산에 올라보면 저 성주에서부터 흘러온 물길이 고령 다산면을 180도 회감아 흘러가는 것을 목격할 수 있습니다. 그렇게 낙동강이 우리지역을 어루만지면서 유유히 흘러가는 모습을 목격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지금 그곳은 물길을 막아 세우고 강바닥을 들어내는 4대강사업이 한창입니다. 바로 이런 곳이 친수구역 특별법에 의하면 노른자위 땅이 되는 것입니다. 평화로운 농촌지역인 다산면과 이 일대에 어떤 개발광풍이 몰아칠지를 생각하면 아득해집니다. 벌써 지역의 한 여당 의원은 언감생심 크루즈선을 이용한 선상 카지노가 딸린 ‘에코-워터 폴리스’란 환상적인 개발구상안을 발의한 바도 있습니다.

낙동강과 금호강이 만나 빚어놓은 두물머리에 4대강 삽질이 한창이다. 친수구역 특별법은 이런 두물머리도 개발의 광풍으로 휩쓸어갈 것이다. 에코-워터 폴리스 개발구상안을 보면 바로 이곳에 크루즈선을 이용한 선상 카지노가 들어선다고 한다 / 사진. 정수근
낙동강과 금호강이 만나 빚어놓은 두물머리에 4대강 삽질이 한창이다. 친수구역 특별법은 이런 두물머리도 개발의 광풍으로 휩쓸어갈 것이다. 에코-워터 폴리스 개발구상안을 보면 바로 이곳에 크루즈선을 이용한 선상 카지노가 들어선다고 한다 / 사진. 정수근

‘강 살리기’란 거짓 이름으로 시작된 이명박 정권의 4대강사업은 이렇듯 대국민 사기극에 다름 아닙니다. 강 살리기가 아니라 강을 6미터 깊이의 인공수로로 만들어 강을 죽여 놓고, 그 주변에 대규모 위락단지를 만들어 막개발하겠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4대강사업의 숨은 속셈인 것이고, 국민을 상대로 사기를 치고 있는 것입니다.  

낙동강 살리기, 바로 '나'에서부터


2010년이 저물고 또 새로운 한해가 시작됩니다. 저에겐 2010년은 낙동강과 함께한 한해였습니다. 그러나 해가 바뀌어 다가올 2011년도 저에겐 별반 다를 것이 없을 것 같습니다. 4대강 삽질은 더욱 박차를 가할 것이고, 그로 인해 수많은 생명들의 신음소리는 도처에 더욱 낭자할 것이기 때문에 말입니다.

그렇습니다. 이들의 신음소리를 결코 외면할 수는 없습니다. 이들의 아픔은 결국 우리들에게로 되돌아올 아픔인 것이기에 말입니다. 물길이 막혀 생명의 본성을 잃어버린 강은 그대로 우리 국토의 혈관을 막아 대지의 본성을 앗아갈 것이고, 그것은 이 땅에서 나는 것들을 먹고, 이 대지 위에서 살아갈 수밖에 없는 우리들에게도 심각한 영향을 끼칠 것이 불을 보듯 뻔합니다. 

그래서입니다. 변산의 농부시인이 풀여치 한 마리를 통해 풀이 되고 새가 되고 아이들이 된 것처럼 내가 그리고 우리가 낙동강으로 나아가 물고기가 되고, 철새가 되고, 고라니가 되어야 할 차례인 것입니다. 

그러므로 다른 누구보다 지금의 나부터 그 ‘어떤 사랑’을 깨달아야 할 때인 것입니다. 2011년 새해가 곧 밝습니다. 토끼해인 새해엔 곳곳에서 보다 많은 강이 된 ‘나’, 그들이 토끼처럼 도처에서 툭툭 튀어나오기를 간절히 희망해봅니다. 그렇습니다. 강은 흘러야 합니다.






[2010 송년 ⑦] 정수근
낙동강을생각하는대구사람들(http://cafe.daum.net/nakdongdg) 까페지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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