벼랑 끝 사람들의 실낱같은 희망...현장에서 답을 찾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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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은주 칼럼]


며칠 동안 연이은 비보가 이어졌다.
8월21일 광주의 한 대학 강의동에서 보육원에서 나와 자립을 위해 노력하던 18세 청년이, 23일 수원에서 암투병 중이던 60대 어머니와 난치병과 정신질환을 각각 앓던 40대 두 딸이 숨진 채 발견되었고 “지병과 빚으로 생활이 어렵다”는 내용의 유서가 발견되었다.
 
사진. KBS뉴스 <'수원 세 모녀' 발인…"하늘에선 행복하길">(2022.8.26) 방송 캡처
사진. KBS뉴스 <'수원 세 모녀' 발인…"하늘에선 행복하길">(2022.8.26) 방송 캡처

24일에는 대구에서 30대 엄마가 자폐증을 앓고 있는 두 살배기 아들을 살해한 뒤 극단적인 선택을 하는 사건이 발생했다. 이런 죽음은 계속되고 있다. 지난 5월 서울 성동구에서 40대 여성이 발달장애가 있는 6살 아들과 아파트에서 투신해 사망했고, 인천에서도 60대 친모가 중증 장애가 있는 30대 자녀를 살해한 뒤 극단적 선택을 시도했다는 보도를 보았다.

이들의 죽음은 무엇을 말하는가.
보육원에서 나와 자립을 하기 위해 애쓰는 청년들을 지원하는 단체의 대표는 일주일에 몇 번씩 이런 연락을 받고 있다며 특별한 일이 아니라는 인터뷰 했다. 세 모녀의 비보는 2014년 송파 세모녀 사건 이후 정부가 사회복지시스템의 사각지대를 없애기 위한 정책을 발표하고 실행했음에도 발생하였다. 제도는 허점이 있는 것이 아니라 커다란 구멍이 있었다.

2020년 기초생활보장제도 신청자 중 인정된 것은 ‘전부 인정’은 2.7%에 불과하고, ‘일부 인정’ 79.4%, ‘미지급’ 비율은 17.9%이다.(출처: <한겨레> 2022년 8월 29일자, '수급자격 얻기까지 겹겹의 벽..."일 못하는 몸부터 증명해야") 일할 능력이 없다는 판정과 연락이 안되는 가족이라도 부양능력 없음이 확인되어야 하며 숫자로 다 설명될 수 없는 빚은 데이터로 기초생활보장을 하는 시스템에 오류를 불러온다.
 
<한겨레> 2022년 8월 29일자 8면(기획)
<한겨레> 2022년 8월 29일자 8면(기획)


계속되고 있는 장애가 있는 가족의 비극은 이제 애도를 넘어 분노가 되고 있다. 자녀가 발달장애 판정을 받았다는 사실만으로도 이런 선택을 하게 되는 이때 ‘사회’는 무엇을 하고 있는가.

30대 엄마가 극단적인 선택을 하던 날 우리나라 정부는 유엔장애인권리위원회에서 유엔장애인권리협약 국내 이행 상황을 심의받으며 ‘장애아동의 특별한 복지적 욕구에 적합한 지원을 통합적으로 제공하기 위해 『장애아동복지지원법』을 별도로 두고 있고’, ‘발달장애인지원사업 예산이 늘었으며 최중증 발달장애인에 대한 체계적인 지원과 국가 책임을 강화하기 위해 발달장애인법을 개정(ʹ22. 5월)했으며, 24시간 돌봄 시범사업(ʹ22~ʹ24년) 등을 실시하고 있다’고 보고하였다.(출처: 420장애인차별철폐대구투쟁연대 기자회견문(2022.8.26))
 
대구 달서구 발달장애인 가족 참사에 대한 대책마련 촉구 기자회견(2022.8.26) / 사진 제공. 평화뉴스 독자
대구 달서구 발달장애인 가족 참사에 대한 대책마련 촉구 기자회견(2022.8.26) / 사진 제공. 평화뉴스 독자

코로나 19 이후 ‘돌봄의 사회화’, ‘모두가 함께 돌보는 사회’에 대한 활발한 논의가 이어지고 있다. 그러나 말이나 글로만 이야기 했나 보다. 지난 7월 보건복지부가 발표한 'OECD 보건통계 2022'에 따르면 한국의 자살 사망률은 2019년 기준 인구 10만명당 25.4명으로 OECD 국가 중 가장 높았다. 이는 OECD 평균인 11명을 2배 이상이며 이를 환산하면 하루평균 자살한 사람의 숫자는 36명에 이른다. 정신과 진료를 꺼리고 우울증약 복용률이 낮은 것 등이 원인으로 이야기되고 있지만 근본적인 이유는 ‘행복하지 않으며’ 삶을 계속 살아가야 할 이유가 없는 것이 아닐까. 몇 가지 대책으로 이런 복합적인 문제를 해결할 수는 없을 것이며 근본적인 대책은 ‘정치’에서 마련되어야 한다. 홍수에도 퇴근하는 대통령과 사진 잘 나오게 비가 더 왔으면 좋겠다는 여당 국회의원은 그래서 시민 불행의 원인이기도 하다.

정치가 바뀌기에는 너무 시간이 오래 걸리니 실낱같은 희망을 개인에게 품어보고자 한다. 필자가 활동하고 있는 대구여성회는 직장내성희롱 성폭력 피해, 성매매피해 아동·청소년 지원 등 내담자를 지원한다. 그 과정에서 정말 걱정되는 내담자를 만나기도 한다. 현장에서 오래 활동한 활동가로서 필자는 믿음이 있다. 물론 확실한 근거를 댈 수는 없지만 ‘한사람’만 있으면 된다는 ‘믿음’이 그것이다. 나를 믿어주는 한 사람, 나를 걱정하고 좋아하는 한 사람만 있으면 사람은 다시 에너지를 만들 수 있다는 것을 여러 번 경험했다. 내담자를 지원하는 활동가들은 종종 그 한 사람의 역할을 한다. 그 한 사람이 벼랑 끝에 있는 사람의 힘듦을 오롯이 감당하기 힘드니 ‘우리’가 ‘공동체’가 필요한 것이 아니겠는가.

그러나 개인에게 미뤄둘 수는 없다. 정부와 지자체, 관련 기관은 ‘대책 발표’만 해서는 안된다.  데이터로만 대책을 실행할 것이 아니라 왜 수원 세모녀 같은 일이 발생하는지 현장에서 답을 찾아야 한다. 정부와 지자체는 사회가 할 일을 지금 당장 해야 한다.

 
 
 
 





 [남은주 칼럼 36]
 남은주 / 대구여성회 상임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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