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구 10월항쟁, 가창골 유해발굴 1차 종료...유족 "계속 발굴해야"

평화뉴스 정준민 수습기자
  • 입력 2023.06.14 19: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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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간인 학살지에서 3주간 유해발굴 작업
희생자 유골·유품 등 미발견→13일 결과보고
유족 "아쉽지만 이제 시작...진화위, 2차 발굴"


대구 10월항쟁 '민간인 학살지'인 가창골에서 1차 유해발굴 작업이 마무리됐다. 

3주 가량 발굴 작업을 벌였지만 유족들 바람과는 달리 이번 작업도중 희생자들의 유골과 유품은 나오지 않았다. 유족들은 정부가 계속해서 발굴작업을 해야 한다며 2차 유해발굴도 호소했다.

10월항쟁 민간인 학살 '유해 발굴을 위한 첫 삽'을 뜨고 있다.(2023.5.24) / 사진. 평화뉴스 정준민 수습기자
10월항쟁 민간인 학살 '유해 발굴을 위한 첫 삽'을 뜨고 있다.(2023.5.24) / 사진. 평화뉴스 정준민 수습기자


(사)10월항쟁유족회(이사장 채영희)와 한국선사문화연구원에 14일 확인한 결과, 한국전쟁 전후 민간인 희생자 유해 매장 추정지인 가창면 용계리 산 89-6번지에서 1차 유해발굴을 종료했다. 유족·제보자 증언으로 특정한 곳으로 당초 150㎡ 면적에 유해 30여구가 묻혔을 것으로 추정했다.

조사는 지난 5월 22일부터 6월 13일까지 진행했다. 유해 매장 추정지를 5개 구역으로 나눠 호미, 곡괭이 등을 이용해 땅을 판 후 흙을 채질하는 방식으로 진행했다. 

유해 매장 추정지에서 발굴 작업을 한 결과, 겨울용 의복과 단추, 장갑, 중장비 부품 등 물품 20여점이 나왔다. 하지만 민간인 학살 사건과는 관련이 없는 것으로 해석했다.

유족·제보자 증언을 바탕으로 특정한 유해 매장 추정지 / 사진.2기 진화위
유족·제보자 증언을 바탕으로 특정한 유해 매장 추정지 / 사진.2기 진화위


해당 부지가 앞서 경작지로 쓰인 적이 있어 농사를 지을 때 작업용으로 사용하다 버려졌거나, 지난 1980년대 가창댐 증축 공사 당시 동원된 중장비의 부속품들이라고 판단했다.

연구원은 지난 13일 발굴 대상지를 원래 상태로 돌려놓는 복토 작업을 끝으로 이곳에서의 발굴 작업을 끝냈다. 이어 1차 발굴을 토대로 결과보고서를 작성해 올해 안으로 진화위에 제출할 예정이다.

이들은 지난 13일 10월항쟁·한국전쟁전후민간인희생자 위령탑(가창면 용계리 133-1) 옆에 마련된 간이 사무실에서 '가창골 민간인 학살 유해 발굴 결과보고회'를 열고 1차 발굴 결과를 발표했다.

유족들은 멈추지 않고 계속해서 2차 유해발굴도 해야 한다고 요구했다. 2기 진실·화해를위한과거사정리위원회(진화위, 위원장 김광동)와 협의해 다른 유해 매장 추정지도 발굴해나가겠다는 입장이다.

"뼈 한 조각만이라도" 채영희 유족회 이사장이 호소하는 모습(2023.5.24) / 사진. 평화뉴스 정준민 수습기자
"뼈 한 조각만이라도" 채영희 유족회 이사장이 호소하는 모습(2023.5.24) / 사진. 평화뉴스 정준민 수습기자


채영희 (사)10월항쟁유족회 이사장은 14일 평화뉴스와 통화에서 "이번 유해 매장 추정지는 조사지 면적도 작고, 가창댐을 지으면서 발견된 희생자들 유해를 이장했다고 추정한 곳이라 당초 큰 기대는 없었다"고 말했다. 하지만 "막상 유해가 나오지 않은 건 아쉽다"고 토로했다.

이어 "이번 발굴을 시작으로 다른 매장 추정지인 가창면 상원리 발굴 작업도 해야 한다"면서 아직 예정된 유해 발굴 계획은 없지만 진화위에 발굴을 이어나갈 수 있도록 계속 요구하겠다"고 말했다.

진화위 조사보고서에 따르면, 한국 군인·경찰은 1950년 7~8월 대구형무소 재소자, 보도연맹원, 예비검속자들을 가창골·경산코발트광산·칠곡 신동재 등에서 학살했다. 희생자 추정치는 1,400여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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