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바일보기

"뼈 한 조각이라도"...대구 10월항쟁 '민간인 학살' 유해발굴 첫 삽

평화뉴스 정준민 수습기자
  • 입력 2023.05.24 20:07
  • 수정 2024.05.22 11:44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위령탑 개토제, 진화위 25일부터 보름간 발굴 작업
가창댐 공사 당시 나온 유해, 야산 매장 30구 추정
유해 나올 경우 73년 만...세종 추모의 집 안치
채영희 "억울한 희생, 이제 세상으로 나오시길"


"억울하게 처형되고 몰래 파묻혀버린 님들이시여. 이제 세상으로 나오십시오" 

민간인 학살지 대구 달성군 가창골에서 73년 만인 24일 유해 발굴을 위한 첫 삽을 떴다. 채영희 (사)10월항쟁유족회 이사장과 유족들은 민간인 학살 피해자들을 위한 제사를 지냈다. 국가폭력에 의해 억울하게 희생된 아버지, 어머니를 생각하며 눈물을 훔치는 유족들도 있었다. 

채영희 이사장은 "우리에게 이런 날이 올까 싶었다"고 말하며 눈시울을 붉혔다. 이어 "세월이 오래 지났기 때문에 지형이 많이 변하고 발굴 면적도 좁아 유해가 나오는지에 대해서는 걱정이 되지만, 유족들은 뼈 한 조각이라도 나오기를 간절히 바라고 있다"고 염원했다.
 

일본군 '위안부' 피해 생존자인 이용수 할머니가 채영희 (사)10월항쟁유족회 이사장이 눈물을 흘리자 위로하고 있다.(2023.5.24.대구시 달성군 가창면 10월항쟁 희생자 위령탑 인근) / 사진. 평화뉴스 정준민 수습기자
일본군 '위안부' 피해 생존자인 이용수 할머니가 채영희 (사)10월항쟁유족회 이사장이 눈물을 흘리자 위로하고 있다.(2023.5.24.대구시 달성군 가창면 10월항쟁 희생자 위령탑 인근) / 사진. 평화뉴스 정준민 수습기자


2기 진실·화해를 위한 과거사정리위원회(진화위, 위원장 김광동)는 24일 오후 10월항쟁·한국전쟁전후민간인희생자 위령탑(가창면 용계리 133-1) 앞에서 '대구경북지역 형무소 재소자 희생사건 가창 유해 발굴 개토제'를 열었다. 개토제(開土祭)는 유해 발굴을 위해 땅을 파기 전 무사히 작업하게 해달라고 토지신에게 올리는 제사다. 

30분 동안 제례를 한 이후 진화위가 발주를 준 용역시행사 (재)한국선사문화연구원이 발굴 계획을 설명했다. 한국선사문화연구원은 10여명을 투입해 오는 25일부터 최대 보름간 유해 발굴 작업을 한다. 

유해 매장 추정지는 진화위 조사와 유족·제보자 증언을 통해 가창면 용계리 산 89-6번지로 특정했다. 150㎡ 면적에 유해 30여구 매장됐을 것으로 추정했다. 
 

10월항쟁 민간인 학살 '유해 발굴을 위한 첫 삽'을 뜨고 있다.(2023.5.24) / 사진. 평화뉴스 정준민 수습기자
10월항쟁 민간인 학살 '유해 발굴을 위한 첫 삽'을 뜨고 있다.(2023.5.24) / 사진. 평화뉴스 정준민 수습기자


만약 유해가 나온다면 73년 만에 처음으로 대구 10월항쟁 희생자 유해가 발견되는 것이다. 진화위는 유해가 나올 경우 나이, 성별, 신장 등을 파악한 이후 세종시에 있는 '추모의 집'에 안치할 예정이다.

유해 발굴은 '트렌치 조사' 방식이다. 매장 추정지에 긴 도랑을 파 토양 깊이와 유해가 있는지 없는지를 확인한 후, 인위적으로 사람을 매장한 흔적이 발견될 경우 흙을 전부 걷어내 조사하는 방식이다.

조사단장을 맡은 우종윤 한국선사문화연구원장은 "발굴 장소가 능선 비탈면에 경작지로 쓰여 유해가 얼마만큼 남아 있을지 모른다. 현지 여건이 좋지만은 않다"면서 "조사 면적이 좁고 장비가 올라가기 어려운 산 위에 있어 조사단이 직접 삽으로 파야 한다"고 설명했다. 
 

"뼈 한 조각만이라도" 채영희 유족회 이사장이 호소하는 모습(2023.5.24) / 사진. 평화뉴스 정준민 수습기자
"뼈 한 조각만이라도" 채영희 유족회 이사장이 호소하는 모습(2023.5.24) / 사진. 평화뉴스 정준민 수습기자


또 "산을 이루는 화강암이 풍화 작용을 거치면 산성이 강한 흙이 되는데, 그러면 유해 부식 정도가 심해진다"면서 "다만 희생자들이 걸쳤던 의복 조각이나 단추가 나올 가능성도 있다. 뼈 하나, 유품 하나라도 찾을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겠다"고 말했다.

진화위 조사보고서에 따르면 1950년 7~8월경 대구형무소 재소자, 보도연맹원, 예비검속자들이 경산 코발트광산·가창골·칠곡 신동재 등에서 경찰·군인에 의해 집단 사살됐다. 학살 피해 규모는 1,400여명으로 추정됐다. 이후 1950년대 가창댐 공사 당시 유해들이 발견됐으나 댐 인근 야산으로 옮겨져 묻혔다. 유족들은 그동안 개별적으로 발굴 작업을 한 적은 있지만, 국가에 의해 발굴이 시도되는 건 73년만에 처음이다.
 

개토제와 함께 진행된 제사에서 채 이사장이 술을 올리고 있다.(2023.5.24) / 사진. 평화뉴스 정준민 수습기자
개토제와 함께 진행된 제사에서 채 이사장이 술을 올리고 있다.(2023.5.24) / 사진. 평화뉴스 정준민 수습기자

저작권자 © 평화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 가치를 생각하는 대안언론, 평화뉴스 후원인이 되어 주세요. <후원 안내>
관련기사
개의 댓글
0 / 400
댓글 정렬
BEST댓글
BEST 댓글 답글과 추천수를 합산하여 자동으로 노출됩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수정
댓글 수정은 작성 후 1분내에만 가능합니다.
/ 400
내 댓글 모음
당신이 좋아할 만한 기사
지금 주목 받고 있어요
모바일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