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자체 복지까지 '손대는' 정부, '손놓은' 대구시

평화뉴스 김영화 기자
  • 입력 2015.11.17 15: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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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 빈곤층 지원 56개 사업 226억원 삭감 지침 / 대구시 "정부 지시라서..."


대구시 동구 율하동에 사는 천종렬씨는 1급 지체장애인이다. 하루의 반나절을 휠체어에서 보낸다. 곁에는 식사와 이동 등 일상생활을 돕는 활동보조가가 수족처럼 따라 다닌다. 그러나 하루 중 활동보조가와 함께 있는 시간은 10시간 남짓. 하루의 절반은 혼자 보내야 한다. 그러나 이 시간마저 더 줄어들 위기에 처했다. 정부가 지방자치단체가 지원하는 장애인 활동보조 사업을 중앙정부와 유사·중복 사회복지 사업으로 지정해 제도 폐기 또는 변경을 요구하는 지침을 각 지자체에 보냈기 때문이다.

천씨는 "활동보조가 없는 저녁에는 손도 마음대로 못 움직이고 물도 못 마시는데 이를 더 줄이겠다는 것 아니냐"며 "중증장애인인 나에게 나가 죽으라는 말"이라고 분통을 터뜨렸다. 특히 "박근혜 대통령은 대선 당시에는 중증장애인 활동보조 시간을 24시간으로 보장하겠다는 공약을 내걸었으면서 이제는 공약을 어기고 오히려 시간을 더 줄이려 한다"면서 "생존권을 침해하는 지침을 철회하라"고 호소했다.

'지역복지 축소반대' 피켓을 든 시민(2015.11.17.대구시의회) / 사진.평화뉴스 김영화 기자
'지역복지 축소반대' 피켓을 든 시민(2015.11.17.대구시의회) / 사진.평화뉴스 김영화 기자

장애인, 노숙인, 독거노인, 위안부 피해자, 한부모가정 등 사회적약자에 대해 지자체가 지원하는 사회복지예산을 정부가 축소하라고 지시해 논란이 일고 있다. 시민사회는 "생존권 말살"이라며 반발하고 있고, 전국 26개 기초자치단체장들과 기초의회는 "자치권 침해"라며 헌법재판소에 권한쟁의 심판을 청구했으며, 철회를 위한 결의안도 채택하고 있다. 그러나 대구시는 어떤 대책도 내놓지 않고 있어 비난을 사고 있다. 때문에 시민사회는 대책위를 꾸리고 권영진 대구시장에 "해결책 마련"을 촉구했다.

우리복지시민연합, 빈곤과차별에저항하는인권운동연대, 장애인지역공동체 등 29개 단체가 참여하는 '지역복지·지방자치 축소 반대 대구대책위원회'는 17일 대구시의회에서 기자회견을 갖고 "복지권리와 지방자치 보장을 위해 대책위를 꾸렸다"며 "정부의 사회보장사업 후퇴시도를 막을 것"이라고 밝혔다.

대구대책위는 "사회적약자에게 생사여탈의 권력을 마음대로 휘두르는 갑의 횡포"라며 "응하지 않는 지자체에 예산 불이익을 언급하는 것은 지방자치법과 가치를 포기하라는 협박"이라고 지적했다. 특히 "피해가 빈곤층에 집중될 것으로 보이는 상황에서 권 시장, 대구시의회, 각 구청장, 기초의회는 손을 놓고 침묵으로 일관해 우려스럽다"면서 "시민들의 생존권을 위해 시장과 의원들은 중앙정부에 지침 철회를 촉구하는 목소리를 내고 적극적 자세로 해결책 마련에 나서야 한다"고 주장했다.

지역복지.지방자치 축소반대 대구대책위 기자회견(2015.11.17) / 사진.평화뉴스 김영화 기자
지역복지.지방자치 축소반대 대구대책위 기자회견(2015.11.17) / 사진.평화뉴스 김영화 기자

은재식 대구대책위 공동집행위원은 "지방자치권과 사회적약자 생존권을 침해하고 있다"며 "대구시는 수수방관 말고 다른 지자체장들처럼 싸워야 한다"고 했다. 전근배 공동집행위원은 "그나마 있는 복지비마저 없애는 지침"이라며 "빈곤층 삶을 옥죄는 지침에 대구시가 해결책을 마련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에 대해 윤진원 대구시 복지정책관은 "변경이나 폐지가 확정된 사업은 아직 없다"며 "여러 유사·중복 사업을 가려내는 중"이라고 밝혔다. 또 "예산 사용 효율화를 위해 하는 작업"이라며 "최대한 여러 단체 입장을 수용해 결정하겠지만 중앙정부 지시기 때문에 따르지 않을 수 없다"고 설명했다.

국무조정실 산하 사회보장위원회(위원장 황교안 국무총리)는 지난 8월 지자체 사회보장 사업 5,891개 중 1,496개가 정부와 유사·중복이라며 '유사·중복 사회보장 사업 정비 추진 방안'을 발표했다. 보건복지부는 240여개 지자체에 정비 대상 복지사업을 통보했다. 그러나 피해 당사자들과 시민사회, 각 지자체장들이 반발해 논란이 일었다. 하지만 지난 11일 박 대통령 주재로 열린 사보위 회의에서 이번 지침 수용 여부를 '예산편성과 교부금에 연계한다'는 방침이 발표돼 각 지자체는 정비 사업 선별에 들어갔다. 11월 27일까지 1차 정비 계획안, 내년 1월 15일까지 2차 최종 결과를 제출해야 한다.

<정부가 지정한 대구광역시와 8개 구.군의 정비 대상 복지사업> (단위:천만원)
자료 제공.인권운동연대
자료 제공.인권운동연대

특히 정부가 지정한 대구시 정비 사업은 ▷대구시와 8개 구·군이 시행하는 29개 사업 예산 33억2,400만원 ▷대구시 자체 시행 8개 사업 11억4,800만원 ▷중앙정부와 예산을 매칭해 시행하는 19개 사업 예산 182억7,900만원으로, 모두 56개의 사회복지사업에서 227억원의 예산을 줄여야한다.

대구시의 경우는 노숙인 상담소, 다문화·새터민 정착, 유기·학대로 위기상황에 처한 가구·독거노인·노인부부·돌봄 가족 없는 중증장애인 긴급구호, 독거노인 돌봄서비스 운영, 독립유공자 및 유족 의료비, 발달장애인 자립, 보육교사 처우개선, 유아 보육료,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생활 안정, 1·2급 장애아동 수당, 저소득시민 국민건강보험료, 한부모가족 가계지원비 지원 등이 삭감 사업으로 지정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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